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로 『제국익문사 1, 2』, 『검은 땅에 빛나는』 이 있고, 작품집으로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 『금발의 제니』, 『언더 더 씨』가 있으며, 시 산문집 『가납사니의 따따 부따』 등을 펴냈다. 봉생문학상, 교산 허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연한 계기로 90여 년 전 한 신여성의 행적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짧지만 불꽃 같은 그의 삶을 소설로 옮겨 볼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녀의 삶이 내 원고지 위로 옮겨올 날을 기다렸지만 그는 내 가난한 필경(筆耕)에 좀체 응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부름이 있기를 오래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도서관을 찾아 그의 행적이 담긴 90년 전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뒤적였고 단편적으로 남은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뜯어볼수록 최영숙은 우리 근대사의 또 다른 유형의 지식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스물의 나이에 단신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낯설고 먼 스웨덴에까지 유학에 나선 것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영숙은 우리의 할머니이자, 우리의 누이, 딸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연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행적을 찾아 90년 전으로 한걸음씩 시간여행을 하면서 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이 도도한 여성은 처음엔 나의 데이트 신청에 냉담했지만 거듭된 구애(?)에 이윽고 조금씩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이 당차고 심지 굳은 여성에게 푹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여섯, 그녀의 짧은 삶은 도전과 자유, 그리고 민중에 대한 헌신에의 의지로 충일하다. 낡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던 그의 분투는 눈물겹기조차 하다. 만약 그녀에게 좀 더 긴 생애가 허락되었더라면 그녀는 우리 근대사의 숲을 지키는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