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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추천 eBook

  • 에세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임경선의 첫 글쓰기 에세이
    임경선 작가가 글쓰기를 둘러싼 진실과 고통, 몰입과 자기 검열, 의심과 영감을 풀어내며, 쓰고 고치는 반복 속에서 발견하는 정직한 기쁨을 보여준다.

  • 한국소설

    쥬디 할머니

    소설가 31명이 뽑은 박완서 명단편
    인간과 사회적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며, 허를 찌르는 반전과 강렬한 캐릭터로 시대를 뛰어넘는 박완서 명단편 10편을 선보인다.

  • 인문학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모든 것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그녀의 탄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 외국소설

    주인 노예 남편 아내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로 변장해 탈출한 크래프트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인종과 계급, 차별을 넘어 자유를 향해 나아간 대담한 여정을 그렸다.

  • 예술/대중문화

    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장면들
    존 버거와 장 모르가 50년 우정을 바탕으로 함께 완성한 사진 에세이의 고전. 글과 사진의 깊은 대화를 통해 인간 삶의 존엄을 성찰한다.

  • 인문학

    타인이라는 세계

    서울대 의대생들이 열광한 ‘마음이론’
    우리는 정말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착각하는가. 타인을 안다고 믿는 우리의 확신이 뇌의 편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짚어낸다.

독자가 권하는 책

제국의 어린이들

  책은 몹시 재미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린이들의 수필. 그것도 일제감정기 시절, 식민지조선에서 치뤄진 조선총동부 글짓기 경연대회에 나온 수필들을 다룬다. 책의 거의 서두 부분에 20세기는 어린이의 세기의 개막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물론이라고 다른 세계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긴 하지만 알기로는 작은 어른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별도의 어린이에 대한 교육관이 있었을리 없다. 하지만 어린이라는 개념이 발견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개성을 존중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그러는 가운데 어린이의 글짓기가 중요한 교육방식으로  다뤄지면서 일제강점기 후반 조선총독부 주최하는 글짓기경연대회가 열리게 되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물론, 총독부의 주요한 목표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존재했다. 식민정책의 선전도 있을 것이며,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지나며 총동원체제으로 이행된 일본의 전쟁에 대한 선전과 황국신민라는 정체성을 강요하고 그들의 전쟁에 적극 협조시키려는.  그렇기에 글의 소재들이 전쟁과 관련된 것들 또한 많았는데, 솔직히 그런 전쟁의 소재를 다룬 어린이들을 글을 보자니 역겨웠다. '아, 감사한 신이시여, 대일본제국에서 태어나게 된 것을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난 저는 천황폐하에게 바치는 생명입니다.', '천황폐하를 위해, 나라를 위해 힘쓰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지고 싶습니다' 등...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 것인지... 여튼, 책은 경연대회에 입선한 작품들을 싣고 있는데, 자연, 가족, 동물, 놀이, 일상, 학교, 그리고 전쟁들의 주제로 나누어 조선인 어린이와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을 담고 있는데,  어린이들 글이 몹시 천진난만하기도 하고 어린시절 지녔던 생각의 편린들과 유사해 피식 웃었던 글들도 있기도 했다.  초등학생 4학년 즈음인가 그때 아이들의 글을 문집으로 묶은 것들이 있는데, 같은 반의 급우가 쓴 글을 읽고 '이야, 정말 잘썼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제목은 '호박씨'였던 것 같고 가정 내에서의 일화를 적었었다. 자세한 내용은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글을 읽고 잘 썼다, 대단하다라고 감탄한 기억은 30여년이 지났는데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 한데 (그 친구도 아마 모를)심술궃은 행동을 한게 있는데, 그 탓에 더 기억하고 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들의 수필을 읽으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애들 같은 생각들이구나 싶은 것도 있고,  나의 어린시절 급우의 글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드는 글들도 있었다. 어린 동생을 먼저 보낸 글을 보며 같이 슬프기도 했고, 서울 구경에 신난 모습에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책 전체로 평을 하자면, 자료집 같은 느낌이라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료를 모아놓고 간단하게 해제만 남긴 꼴이라 조금 더 가공하여 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넷님

영화 <파반느> 이후, 다시 읽는 사랑의 본질

내가 박민규를 처음 만난 건 대부분의 독자가 그러했듯이 바로 ‘그’ 작품을 통해서였다. 제8회 한겨레문학상은 매우 신선하고 유쾌한 작품에게 돌아갔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2003년 혜성처럼 등장한 박민규는 한국 문단에 큰 충격이었다. 어느덧 그 충격은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그는 동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박민규가 되었다.​그를 지금에 있게 한 작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소위 ‘삼미’는 여느 소설가의 처녀작들보다 인상적이다. 독특한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로 술술 읽히면서도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박민규식의 이단아적인 텍스트는 그에게 ‘무규칙 이종 소설가’라는 별칭을 안겼다. 한때 김애란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미래’로 거론되던 그는 이제 그 수식어를 넘어 하나의 확고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발표했던 이 특별한 로맨스가 바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최근 OTT 영화 <파반느>의 공개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는 아직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화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이 다시 현재로 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 시대의 문제작으로 읽히던 소설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고, 또 다른 세대의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외모와 이미지의 가치가 더욱 노골적으로 소비되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당시보다 더 현재적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영화대로의 해석이 있겠지만 원작 소설이 품고 있는 내면의 밀도와 독백의 사유는 여전히 활자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살아 있다.​이 소설은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만을 조명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양산한 부조리적 산물을 소설 소재의 전면에 내세운다. 여성 권력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외모’라는 테마를 통해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이끌어낸다. 외형이 실존의 가치를 결정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은 소설이 발표되었던 당시보다도 지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소설 속 화자의 독백은 기존 박민규 문체의 특징이었던 유쾌함과는 다소 거리를 둔다. 술술 잘 읽히지만 이야기 전반에 걸쳐 흐르는 무게감 있는 독백 서술은 독자의 몰입도를 더욱 깊이 있게 이끈다.​작가는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갖고 있는 세 인물이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중반의 서울, 아버지로부터의 트라우마를 지닌 소설 속 화자 ‘나’와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못생긴 ‘그녀’, 그리고 ‘나’의 정신적 멘토 요한, 세 인물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녀’에 대한 ‘나’의 변함없는 사랑과 철학 강의하듯 ‘나’에게 자신의 사유들을 풀어놓는 요한의 멘토링이 화자 ‘나’의 독백적 서술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이 특이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 구도와 멀티 엔딩을 통한 반전 효과는 인상적이다. 독자의 주관으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해석이 가능하다. 소설의 뒷부분, 독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흐름이 바뀔 수 있게 한 박민규의 의도는 소설의 간절한 메시지를 고려해 볼 때 매우 적절하다. 400페이지가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의 독백 서사를 통과하면 마지막에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야기 구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 결말의 힘은 유효하다.​박민규는 마이너리티의 편에 서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와 아름다움의 권력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 있다. 작가는 미美가 곧 선善을 결정하는 세계, 외연의 미적 퀄리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하는 굴절된 세계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가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의 근원과 사랑의 본질마저도 왜곡시키는 미의 권력화가 우리 삶 곳곳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라고 박민규는 말한다. 이어 그는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벽을 넘지 못하고서는 인간은 근원적인 불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꼬집는다. 자기 행복의 절대적 가치 기준은 바로 자기 자신임이 분명한데 자본주의 시스템의 과도한 맹신은 종내 자아의 행복을 타자의 현재성에 견주는 오류를 양산한다. 부끄러워하면 할수록, 부러워하면 할수록 내 행복의 척도를 가늠하는 최저점의 마지노선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호도된 자아상에 대한 올바른 예방법은 부끄럽고 부러워해야 할 것들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박민규는 일깨운다. 그것들이 내 안에서 시시해질 때야 비로소 외연보다는 내면이, 비본질보다는 본질이 우선하는 진정한 행복의 세계의 문이 열릴 수 있다. 이 통찰은 시간이 흐른 지금 더욱 날카롭게 들린다.​박민규는 이를 사랑의 가치로까지 발전시킨다. 우주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단 하나의 절대선으로 축약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타협과 토론이 필요 없는 절대적 선善이다. 이 거대한 본질은 그 어떤 외형적 조건에 의해서도 변질될 수 없다. 이는 진리다. 작가 박민규는 거대하고도 오묘한 사랑의 카테고리 안에서 부富와 미美라는 외형성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인지를 간절한 메시지로 증거한다. 사랑을 통해서만 진정 인간은 아름다워지고 안정될 수 있다는 올곧은 진리를 설파한 소설의 메시지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영화 <파반느>가 이 작품을 다시 오늘로 불러냈다면, 소설은 여전히 더 깊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술술 잘 읽히면서도 녹록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유효하다. 역시 박민규다.​이 글을 처음 썼던 것도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과 자본주의, 부끄러움과 부러움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글을 꺼내 읽는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다른 자리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매번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읽는 이의 나이에 따라 다른 질문을 건네는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독후감을 고쳐 쓰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부러워하며,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다윗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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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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