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에 대하여> 김혜진 신작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상처 입은 삶에 스며드는, 미약할지라도 오래 남는 다정의 온기를 전한다.

자유의지라는 착각을 무너뜨리다
<행동>의 저자 로버트 새폴스키의 ‘자유의지 논쟁’ 결정판. 자유의지 없는 삶이 가져올 더 나은 사회의 가능성과 인류애 회복을 향한 지식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구매 4년만에 완독하였다. 물론 4년 전에는 1판 종이책을 샀으며, 완독은 밀리의서재 2판 전자책으로 했지만 말이다. 뭐랄까, 책에서도 프레데릭 제임슨을 인용하며, "모든 것이 유행과 미디어 이미지의 영속적인 변화에 종속된 상황에서 앞으로는 어떤 것도 더 이상 변화할 수 없다"고 밝혔듯 좌파이론 역시 해가 다르게 유행과 변화(그러나 진정으로 새롭지는 않은)를 거듭하기 때문에 2009년에 쓰인 이 책은 2026년의 독자가 보기에는 팜플렛으로서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없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올드하다고 해서 결코 구린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클래식하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싶다.타리크 고더드와 역자의 후기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피셔의 방대한 이론적 작업물의 서막 내지 디딤돌 역할 정도로만 기획되었었고, 이제 그 전체적인 기획 자체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가 제시한 개념적 작업은 단연 클래식으로 남은 것 같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닫힌, 대안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유토피아적 체제의 성질이자 실체. 그 반동의 회색 장막에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균열을 낼 수 있다는―거의 실존주의적으로 느껴질 정도의―호소는 실제로 당시 영국 학생운동 차원의 대항실천을 구축하기도 했고, 오늘날에도 대항의 몸짓을 추구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효한 지침이 되고 있는 것 같다.특히 책에서는 입론 수준으로만 논의되고 있는 정신질환과 관료제의 정치화라는 주제의 경우, 전자는 국내에서 『손절사회』(2026) 같은 시도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책도 뭔가 야심찬 태도로 일관되어 있는데, 피셔의 예의 그 호소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물론 실제로도 손절사회의 저자는 책에서 피셔를 중요하게 인용하고 있다). 자신의 기획을 미완으로 남기고 떠난 마크 피셔가 오늘날의 리버럴좌파 계열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매력을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의 문체는 별로 대중친화적이지 않고, 순전히 클래식이어서, 아니면 실천적 지침을 일부나마 제공해줘서 매력적이라는 건 불충분한 설명인 것 같다. 그럼에도 어쨌든 사람들은 마크 피셔를 찾는다. 물론 나도 4년만에 찾았고. 좌파이론으로서 『자본주의 리얼리즘』보다 우수한 책은 많겠지만, 어떤 반향력, 특히 이 절망적인 체제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 삶에 보편적으로 호소하는 반향력을 갖는 책은 드물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이다.
일랑일랑님
예전에 읽었던 소포(피체크)에 비해서도 많이 별로였다.여성 작가가 쓴 피카레스크스러운 여성들의 캣파이트로밖에 보이질 않는게 문제다. 미야베 미유키 같은 대작가와 구분되는 차이가 바로 이런 설정과 전개의 허접함이다. 그리고 가재가 노래하는.곳를 재평가하게 된다..0. 17살에 저지른 bully가 어렸단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는가? 뇌 전문의?라는 작가 역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듯 하다. 그럼 몇살까지는 촉법을 적용해야하는가? 촉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가. 촉법 나이에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인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나이가 중요한가. 옳지 못한 행위을 저지를 최소한의 능력이 생기는 나이가 중요한가. 그땐(범죄를 저지를 땐) 내가 너무 어렸어요. 같은 변명은 나이만 먹었을 뿐 여전히 애새끼인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대사회에선 더 공허한 고민 같다.1.이제는 슬슬 지겨워지는 판에 박힌듯한 서번트?아스퍼거 캐릭터 묘사와 그 장애를 작품 진행의 도구로만 쓰는듯한 부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지겹게 보던 고래에서 거북이로 변화를 줬을뿐이고.. 이런 아스퍼거?같이 분위기를 파악 못하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설정과 묘사는 후반부로 갈수록 미스터리 스릴러와 관계가 없기에 사라진다. 그저 아무도 날 사랑하질 않아 내 남자친구도 그럴거야 피해망상으로 보일 지경. 그나마 단순한 피해자로만 남기질 않은 점은 좋았다.2. 세스나 케일럽 같은 남성 캐릭터는 그야말로 편리한 도구로만 기능한다. 그들은 여성들이 뒤에서 벌이는 피카레스크스러운 캣파이트들을 영원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세스 이 멍청한놈은 금발이 너무해에 나올 법한 빡통여자가 회사에 저지른 횡령을 회계장부를 샅샅이 뒤지고도 찾질 못한다. 물론 서번트 증후군 회계사는 발견했지만. 세스가 개멍청한 지점장인걸까. 횡령범이 회계장부 조작할 때만큼은 멍청한 곰 같은 척하는 여우였던 걸까. 작품내내 빡통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는데. 타라 처리한것 보면 돈한테 케일럽의 허니트랩은 솔직히 전혀 필요없었을거 같은데 결국 돈이 NTR취향이 있었음밖에 증명하지 못했고...3. 솔직히 초반에 알리바이 필요하니 형사한테 거짓말해줘라고 남친한테 부탁하는 장면에서 뭐지 이건?금발이 너무해 스테레오타입의 빡통년이 주인공인가 싶어서 황당했다. 1인칭시점에서 서술되는 점에서 피체크의 소포를 읽을 때처럼 뭔가 이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져야하는데 몰입감을 상당히 해치는 부분이었다. 초반부터 믿을 수 없는 화자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점은 미스터리로서는 감점사유가 아닐까. 다만 두 명의 화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하지만 교차로 검증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스스로 밝히는 내용 말고는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점은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4.타이밍 좋게 등장한 제3의 얼굴이 뭉가진 여성 시체에 대한 설명 역시 대도시에선 여자들이 자주 죽어나가니 놀랄 일도 아니죠라며 눙치고 넘어가는 것 역시 출판사를 포함해 얼마나 피해망상에 사로잡혀서 작품을 집필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 (스포일러alert)심지어 이 살해는 남친 도움도 없이 여자 혼자 단독으로 완전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는데 이런 능력이 있는 여자가 다른 살해목표였던 화자는 왜 그렇게 힘들게 낑낑대면서 이 소설에 묘사된 사건을 벌였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 미스터리로서 심히 허술하다고 느껴졌다.5.솔직히 형사가 1부 이메일에 나오는 미아가 누군지 혹시 아세요?하고 돈의 엄마한테만 물어봤다면 작품 진행이 이렇게 될 리도 없을 뿐더러 구체적인 상대방이 누군지 특정되지도 않은 이메일?이 이렇게 중요한 정황적 증거로 수사에 활용된다고 가정하고 작품을 진행하는 것 역시 좀 너무 세상을 얕보는, 수사 한번 안해본 여경 같은 여성작가만이 할 수 있는 묘사처럼 느껴졌다.
활자읽는게좋아님
앤디 위어

세이노(SayNo)

김재우 지음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외 감수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