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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혜진

출생:1986년, 대한민국 대구

최근작
2025년 4월 <[세트] <퍼니 사이코 픽션> 도서 + 북토크>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1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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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문어의 삶을 알아가는 시간은 나와 다른 존재의 삶을 상상하는 일인 동시에 35년 동안의 내 인생을 압축해 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어떤 기억은 2년만 살아도 경험하고 싶었고 어떤 기억은 2년뿐이라면 버리고 싶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도 모른다. 그걸 규명하지 못해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글을 쓰며 알고자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동물이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다른 존재의 마음, 아더 마인즈는 우리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두 번째 선생님이다.
2.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고전의 자리에 오른 작품이다. 위대한 예술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핸디캡을 넘어설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바로 그 핸디캡으로 인해 고유한 아름다움을 얻는다. 인생도 그렇다. 패배하지 않는 삶이란 주어진 핸디캡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하며 스스로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삶이다. 약점으로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 나만의 고유한 색이 되듯 핸디캡을 삶의 조건으로 안으려는 도전과 시도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성취다. 이 책은 그런 삶의 진실을 '무성(無聲)'이라는 비유로 포착한다. 말하지 못한 상처,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망설임, 스치듯 지나간 순간들의 잔향… 이 묵음(?音)의 감정들은 언제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를 움직인다. 남들도 이렇게 흔들리고 후회하는지, 미세한 균열 속에서 조용히 견디며 살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잠시 머무르기 좋은 쉼의 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깊이 박힌 고백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누군가가 대신 말해 주고 있다는 안도 속에서 편히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언어로 붙잡히지 않는 감정들, 우리 삶의 무성한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선명한 진동을 남긴다. 가사 없는 멜로디처럼 말보다 앞서 도달하는 감정의 파동에 귀 기울이면 거기 우리 삶의 예술이 있는 것이다.
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17일 출고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말하는 작품은 삼류다. 삶이 곧 죽음이라고 말하는 작품은 이류다. 죽음을 체험케 하는 작품은 일류다. 『빛들의 환대』는 일류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당연한 소리를 반복하지도 않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관념적 진실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참여가 더 깊은 깨달음을 주는 법. […] 이렇게 정교한 죽음 체험 소설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4.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조작하고 싶은 한 남자의 집요하고 음산한 태도가 환기하는 것은 우선 관음증적 쾌락이다. 왜곡된 욕망과 병리적 집착, 폭력의 합리화 속에서 엉켜 버린 감정의 매듭이 어떻게 한 사람을 옥죄고 파괴해 가는지 지켜보는 일은 독자에게 묘한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쾌락만이 이 소설의 미덕은 아니다. 『블랙 먼데이』는 ‘통제’에 대한 소설이다. 타인을 통제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병적인 욕망은 오늘날 악의 새로운 얼굴이다. 이 소설은 그 얼굴이 짓고 있는 표정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이다.
5.
고통의 시공간을 살아나감에 있어 분명한 사실 하나는, 문이 벽으로 느껴질 때조차 벽 앞에서 좌절의 끝을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삶은 벽을 문이라고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런 얘기는 재미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비유가 식상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은 이 비유의 정직성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언정 문과 벽의 가변성을 기억한다면 벽이라는 문은 통로가 될 수 있다. 인생은 미로고, 미로를 통로로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의 선택과 의지다. 《파사주》는 그러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소설이다.
6.
“시추선의 깊이보다 쇄빙선의 파괴력에 더 가까운 이 소설은 친구라는 말이 사라진 시대에도 끝까지 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반도를 종횡무진 이동하는 과감한 움직임, 그 뒤로 퍼지는 매력적인 하울링, 생존해야 하지만 생존에만 함몰되지 않는 강력한 의지에서 ‘오늘’의 ‘작가’를 만난다.”
7.
고통의 시공간을 살아나감에 있어 분명한 사실 하나는, 문이 벽으로 느껴질 때조차 벽 앞에서 좌절의 끝을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삶은 벽을 문이라고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런 얘기는 재미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비유가 식상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은 이 비유의 정직성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언정 문과 벽의 가변성을 기억한다면 벽이라는 문은 통로가 될 수 있다. 인생은 미로고, 미로를 통로로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의 선택과 의지다. 《파사주》는 그러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소설이다.
8.
  • 코인 - 2025 딜런 토머스 상 수상작 
  • 야스민 자헤르 (지은이), 진영인 (옮긴이) | 민음사 | 2025년 9월
  • 17,000원 → 15,300원 (10%할인), 마일리지 850
  • 8.0 (2) | 세일즈포인트 : 677
에르메스 버킨백, 마르니 팬츠, 스텔라 매카트니 스웨터……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 집착하는 속물적인 캐릭터, 틈틈이 발각되는 상처와 트라우마, 도발적 반전이 안겨주는 충격적 결말. 『코인』은 속되면서 우아하고 순응하는 듯 전복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팔레스타인 출신 주인공에게 이런 옷들은 기실 사치품이라기보다 전투복이다. 명품이란 갑옷을 걸치고 청결이라는 방패를 든 채 뉴욕이라는 전쟁터에 매일 출격하는 주인공. 그러나 그는 어김없이 패잔병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으로도 안 되는 게 있음을 증명하는 ‘자본주의’의 수치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실수로 삼킨 뒤 행방이 묘연해진 동전처럼 순환을 멈춰 버린 돈의 속성과 그런 돈마저 이방인에겐 유통되지 않는 기만적 세계의 진상을 조용하게 폭로하는 『코인』은 인종, 계급, 젠더 등 날 때부터 주어진 실존의 브랜드를 집요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고장난 세상에 적응하느니 “망가지긴 했으나 거칠게 살아 있는” 편을 선택하며 모든 걸 탈의하고, 마침내 세상을 발가벗기고 수치를 세상에 돌려준다. 『코인』은 지금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이 세계의 품질을 평가하는 레어한 명품 소설이다.
9.
가족의 자살로 상징되는 해독 불가한 고통의 피해자는 민병훈의 문학적 페르소나다. 이 가면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 앞에 선 자의 결벽증적 태도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의 암호를 풀지 않고서는 다가올 어떤 삶도 믿지 못하는 이 ‘고통 근본주의자’의 병변은 과거에 시달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과거에 트라우마로서의 가정이 있다면 그의 현재엔 기대와 의심으로서의 가정이 있다. 그 사이에서 겪는 방황이 가리키는바, 작가 민병훈의 문학적 주제는 독립이다. 시간으로부터, 관계로부터. 오래 혼잣말하던 민병훈이 기나긴 독백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다. 이 소설은 그가 터널 속에서 쓴 최후의 소설이자 세상 속에서 쓴 최초의 소설이다. 정직한 불안과 적나라한 불화의 언어로 쓴 고백록이자 소설을 쓰듯 인생을 쓰고 인생을 살듯 소설을 사는 독자적 방법론으로 완성한 비망록이다. 변화를 발견할 때마다 반가웠고 의지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웠다. 작가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작가와의 첫 만남보다 더 가슴 뛰는 사건이다.
10.
시인 함기석은 현대의 사제도 아니고 현대의 영매도 아니다. 그는 차라리 고대의 의사처럼 철학과 의학을 기둥 삼아 메스와 석션 같은 문장으로 시대의 폐부를 도려내며 세상사 병든 곳에 ‘개입’한다. 몸속의 병든 장기들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듯 세상을 차갑고 정밀하게 들여다보며 정치적 종양을 제거하고 쇠락한 장기를 교체하며 인간 사회의 회복을 도모한다. ‘집도’라는 부제로 연결되는 시집은 구원을 구조로 ‘격하’시킴으로써 오히려 절망 속에서 희망의 생존 가능성을 격상시킨다. 이렇듯 객관화된 긍지의 시인과 한 시대를 함께하며 그가 찾아낸 단어와 문장의 수혜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11.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곳곳에서 카프카적인 것의 뿌리를 심고 있는 이들 작가야말로 카프카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의 이유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그들과 함께 계속되고 있다. …… 이 작품들은 카프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카프카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여전히 살아 있는 카프카를 읽는다.”
12.
읽는 것을 넘어, 손을 꼭 잡거나 꼭 끌어안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느낌 속에서 독자들도 덩달아 치유받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표면엔 저마다의 밀폐된 슬픔을 묘사하는 정확하고도 시적인 문장들이 있다. 그리고 심층엔 공적, 사적 고통으로 배척당하고 소외된 자들이 각자의 ‘맨 밑바닥’으로 서로의 결핍을 받쳐주는 바닥의 공동체가 있다. 상처의 쓸모와 슬픔의 힘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 소설은 낭만적이면서도 실천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신비롭다. 한겨울 혹한의 추위 속에서 두 팔 벌려 외로운 사람을 기다리는 따뜻한 프리허그 같은 이 작품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테라피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1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3월 17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12,240 보러 가기
지금 헤어지지만 다시 또 만날 수 있고, 만나지 않는 것이 사랑의 종말은 아니다. 사랑 안에 이별이 있듯 이별 안에도 사랑이 있으니까. 이제 두 사람은 학생이기를 졸업하고 사랑의 어른이 되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어떤 것도 묻고 싶지 않다. 그들의 침묵 속에서 이미 충분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고, 그 침묵의 풍선은 소설가 연소민이 세상에 불어넣은 강렬한 공백이자 여백의 상상력이다.
14.
강은교 식으로 말하면 삶은 깨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달콤하리라는 환상, 괜찮아질 거라는 환상, 한 번 더 살면 이렇게는 안 살 거라는 환상… 환상과 미래는 붙잡으려 할 수록 더 멀어진다. 손바닥을 펴 보면 그 위에는 깨진 환상, 깨진 미래, 깨진 낭만이 부서져 반짝일 뿐. 속절없는 파편의 무리들, 그러나 깨진 반짝임이야말로 “드넓은 여기 사랑하올 것들”이자 “우리들의 누추한 아름다움”인 줄 알 때, 이제 쓸쓸함을 아는 이, 이제 홀로임을 아는 이, 이제 울음을 아는 이, 그리하여 이제 늙음을 아는 이 강은교는 바야흐로 용서를 노래해도 섭섭지 않은 시인 중의 ‘시인’이다. ‘시인’은 전생의 허밍처럼 아득하게, 어젯밤 꿈결처럼 생생하게 서러움의 내력을 연주한다. “기-인” 바람결이 찬란하게 쓸쓸한 생의 노래를 거든다. 바람이 거든 노래가 돌멩이들의 막막한 웅크림을 쓰다듬고 우주의 흉터 같은 별들을 스치울 때, 멀리서 반짝이는 우리 “기-인” 상처가 아름다움을 시작한다.
15.
엄마는 자주 찐빵을 만들어주셨다. 그 안에는 팥소가 들어가는데, 삶아서 으깨놓은 팥을 야금야금 집어 먹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입안에 꽉 차는 그 고소한 단맛으로 향하는 손길을 멈추는 건 언제나 실패. 팥에 대한 내 오랜 끌림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주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그 실패의 불가피함을 전부 이해했다. 어두운 색감, 거친 질감, 팍팍한 식감…. 그러나 첫입에 온몸의 세포를 미소 짓게 하는 깊고 담백한 단맛 앞에서 이 모든 비주류적 특성은 팥의 신비이자 팥의 깊이로 승격된다. 그러고 보니 팥에 대한 이 사랑은 문학에 대한 내 사랑을 닮았다.
16.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자들 못지않게 유목민적인 우리에겐 진실을 보기 위한 시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모자이크화된 정보 이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서이제가 쓴 아홉 편의 소설은 새롭게 형성되는 문명의 구성체로서 우리가 우리의 시력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공인된 검사표이다. ‘너’의 의미도, 사랑과 가능성의 실재도 이젠 다 ‘사라짐’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은 모자이크 너머로부터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우리는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기다리는 동안 얼핏 보지 않는 ‘시력’을 무장한 채.
17.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 이 책에 대한 내 자유의지는 완전히 박탈당했다. 극적인 사건에 반하는 절제된 감정들, 세공된 표현에 더해진 빈틈없는 설계, 그에 따른 긴장감과 몰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간병노동의 사각지대에 고립된 주인공이 불법의 위험과 패륜에의 비난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결단과 실행이 마치, 자신이 따라야 할 것은 국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라며 왕명을 거슬러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안티고네의 상황만큼이나 절박하고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 각자도사. 각자 열심히 산 대가가 불행의 거미줄에 포박당한 채 범법자가 되거나 패륜아가 되는 일뿐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까 공동체의 실패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진창과 폐허에서도 설득력 있는 희망을 만들어 낸 이 소설이 인간 존엄과 사회 제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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