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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화진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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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큰글자도서] 나만 아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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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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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와카코가 술을 마시는 모습은 의연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밤 나에게 필요한 술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고심해서 고른다. 연어 소금구이를 안주로 시키고, 자신을 보고 같은 안주를 시킨 사람을 보며 흐뭇해하지만, 거기에 밥을 추가해서 그걸 반찬으로 먹는 것을 본 순간 실망감에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의연하지 않은가... 연어 소금구이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안주라고 주장하는 조용한 저항 정신.
2.
'가족에 대해 알기'란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미션일까? 이 소설의 화자 '나'는 가족에 대한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나간다.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들, 나름대로 이해한 것과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 그들의 기원과 유전, 고향과 언어, 그것이 미친 영향들을 더듬어가다보면, 우리는 다시금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발레를 배우는 일이 집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어 기뻤다고 말하는 소녀에게로. 시그리드 누네즈의 인물들은 모두 얼마간 "세상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세상에서 지워지는 일이 가능하"게 하는 예술의 가능성으로부터 희망을 얻고 자신을 갖게 되는 인물들이다. '나를 이룬 것'과 '내가 이룬 것'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잰 손놀림을 바삐 훔쳐보며 나는 이런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자신을 묶고 지탱해온 뿌리 같은 밧줄들 사이에서도, 그 밧줄이 팽팽해지거나 느슨해지는 사이사이마다 생겨나는 나 자신의 갈래, 나 자신의 목소리, 내 이야기 같은 것들을. "그건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거기에 힘을 얹어주는 신의 숨결 같은 것을.
3.
누군가와 깊이 안는 일, 안고도 모자라 푹 스미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임선우는 그곳의 대장이 될까? 묻고 나면 어쩐지 아니……라고 대답하게 되고 행동 대장도 안 어울려, 그렇다면 뭐가 될지…… 생각해보면 스파이가 될 것 같다. 기대고 껴안는 일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것 같지만 모두가 잠든 밤 실은 나는 떨어지고 혼자 되는 일을 생각해, 라고 은밀히 중얼거리는 묘한 얼굴의 한 사람. 그 사람은 안았던 팔이 풀린 사람들, 스몄다가 말라버린 사람들에게 소중한 뭔가를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을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임선우의 소설은 저승사자 같기도 하다. 나도 그런 저승사자가 되고 싶은데, 그 능력을 얻기 위해 그와 손가락을 잘라 붙일 순 없는 노릇이고, 손가락을 잘라 붙일 순 없지만 내 글을 그가 쓴 글에 접붙일 수는 있다. 책에 한 자락 자리를 얻는 일은 손가락을 거는 일과 같다. 임선우의 소설집에 내 손가락을 걸게 되어 기쁘다.
4.
박경리의 소설을 읽는 동안은 책장을 옆으로 옆으로 넘기는 수평의 시간이지만 과거의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소설을 읽으며 내가 사는 이 순간이 과거가 될 어느 미래를 상상한다. 그것은 마치 내가 떨어질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과거의 꼭대기인 현재로부터 조금 더 높이 날아오르는 일인 것만 같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소설가 박경리가 소설에 불어넣어 둔 양력 덕분인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가는 소설은 우리를 위로도 올려줄 수 있는 것이다.
5.
나는 아주 많은 날들을 내가 사는 곳이 이전에 조선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지낸다. 그러다 가끔 내가 딛고 선 곳이 과거에, 내가 없던 어느 때의 조선이었지 깨달을 때가 있는데, 박경리의 소설을 읽는 시간이 바로 그렇다. 같은 땅 위에 이전의 역사가, 역사를 이루는 과거가 쌓인 층층의 겹이 있고 지금 우리는 과거의 가장 꼭대기에 사는 거라면, 박경리의 소설을 읽는 동안은 책장을 옆으로 옆으로 넘기는 수평의 시간이지만 과거의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비상 먹고 죽은 숙정과 칼 맞아 죽은 사내의 혼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리하여 이 집안의 유구한 비극이 시작된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비극은 어떤 운이고 어떤 명 때문인지 궁금해진다. 훗날 언젠가, 과거의 새로운 꼭대기가 생기면 박경리만큼 원경을 가진 작가가 그걸 써낼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 이야기 안에서 그려질 여지가 있다면 나는 “사람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는 걸 아는 용빈에 가까운 인물로 그려지면 좋겠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소설을 읽으며 내가 사는 이 순간이 과거가 될 어느 미래를 상상한다. 그것은 마치 내가 떨어질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과거의 꼭대기인 현재로부터 조금 더 높이 날아오르는 일인 것만 같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소설가 박경리가 소설에 불어넣어 둔 양력 덕분인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가는 소설은 우리를 위로도 올려줄 수 있는 것이다.
6.
최미래는 언제나 내가 상상도 못하는 단어들을 꺼내 저글링을 하거나 한 줄로 꿰고 있다. 최미래의 손놀림대로, 흥미로운 리듬으로 튀어오르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단어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내가 가진 단어 주머니의 빈 공간이 떠오르고, 잠깐 시무룩해지는 마음을 지나, 그가 꺼내 보여준 단어들을 굴려보게 된다. 돼지 뒤에 사랑, 사랑 뒤에 꼬리, 사랑 뒤에 광대……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최미래가 보여준 것으로부터 각자가 본 것을 각자의 단어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키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지겹도록 지키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인생에 대해서, 흙덩어리와 항아리 사이의 무궁무진한 시간에 대해서, 울적함과 나락 사이의 한 뼘도 안 되는 듯한 높이에 대해서, 사랑 뒤에 니즈나 와일드가 따라오는 은근한 이유에 대해서.
7.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우리 마음에 끼어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두려움, 막막함, 벌써부터 싫음, 해 보고는 싶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모든 감정에 들러붙어 있거나 본령인 것은? 아마도 고립, 혼자 됨, 그런 감각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상태를 ‘혼맹’이라는 단어를 발견하여 다시 보려고 한다. 우리가 혼을 잃었을 때, 어느 부근부터 더듬거려야 하는지.
8.
지난해 <퍼스트 카우>를 보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인물에 대한 설명, 그들의 관계, 그들이 사는 시대, 인물들이 벌이게 되는 사건이 모두 예상 밖이어서. 모두 예상 밖인데 모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켈리 라이카트의 다른 영화 <올드 조이>를 보면서도 그랬는데, 이 놀라움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경제적’이 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하던 창작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9.
교제 폭력이라는 말을 어쩌다 이렇게 많이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가 하는 일이 여러 단어와 사귀어 가는 일이라면 그중에 이 단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은 아무리 가까워지려고 해 봐도 가까워질 수가 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몇 편씩 보는데도, 왜 누군가는 한 사람을 마음대로 하려다 죽게까지 만들고, 왜 누군가는 부단히 도망치고 싶어 하는데 죽게 되는지 모르겠다.
10.
  • 출판사*제작사 사정으로 제작 지연 또는 보류중이며, 출간 일정 미정입니다.
실제로 들은 적 없고 들을 수 없는 아그네스의 목소리를 상상해본다. 여리고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 주저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끝내 기뻐하는 목소리. 상상에 들뜨고 현실에 시무룩하지만 결국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 그런 목소리에 기대어 아그네스에게 중요한 것 역시 상상할 수 있다.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는 것, 남들이 들려주고 가르쳐주어 알게 되는 것 말고 실제로 맞닥뜨리고 통과하여 갖게 된 것, 경험과 믿음, 믿음이 깨어지며 남긴 삶의 우연성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질 수 있는 희망과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진실 같은 것. 집안의 어여쁘고 귀여운 막내딸로 남을 수 있지만, 그것도 좋지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진짜로 해내는 것. 아그네스는 슬프고 고독할 때마다 시를 찾았고, 시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았으며, 스스로 쓰기도 한다. 소설에는 그가 “고통과 경험의 유물들”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가 담겨 있다. 소설 속의 시와, 시가 담긴 소설에서 우리는 아그네스가 가장 눌러 썼을 문장을 추측해볼 수 있다. 정답일까 망설여진다면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이 문제는 아그네스가 낸 적이 없고, 그래서 틀려도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나는 이 문장을 골랐다. “이 마음은 나의 것이니.” _『아그네스 그레이』 추천의 글
11.
실제로 들은 적 없고 들을 수 없는 아그네스의 목소리를 상상해본다. 여리고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 주저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끝내 기뻐하는 목소리. 상상에 들뜨고 현실에 시무룩하지만 결국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 그런 목소리에 기대어 아그네스에게 중요한 것 역시 상상할 수 있다.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는 것, 남들이 들려주고 가르쳐주어 알게 되는 것 말고 실제로 맞닥뜨리고 통과하여 갖게 된 것, 경험과 믿음, 믿음이 깨어지며 남긴 삶의 우연성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질 수 있는 희망과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진실 같은 것. 집안의 어여쁘고 귀여운 막내딸로 남을 수 있지만, 그것도 좋지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진짜로 해내는 것.아그네스는 슬프고 고독할 때마다 시를 찾았고, 시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았으며, 스스로 쓰기도 한다. 소설에는 그가 “고통과 경험의 유물들”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가 담겨 있다. 소설 속의 시와, 시가 담긴 소설에서 우리는 아그네스가 가장 눌러 썼을 문장을 추측해볼 수 있다. 정답일까 망설여진다면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이 문제는 아그네스가 낸 적이 없고, 그래서 틀려도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나는 이 문장을 골랐다. “이 마음은 나의 것이니.”
12.
정이현의 소설에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화해를 추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한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대체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화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더 멀게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가끔 맞붙고 또 가끔 접붙는다. 그럴 때 드는 당혹감과 아연함에 대해 정이현만큼 민감한 작가가 있을까 생각한다.
13.
김혜진은 자주 ‘일work’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일의 얄궂음에 쉽게 마음 상하지 않고, 일의 곤란함을 일축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일이 사는 시간을 본다. 어쩌면 김혜진은 ‘자기 식’대로 보는 작가가 아니라 ‘당신 식’대로 보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김혜진이 관찰하는 ‘일’은 눈도 입도 없지만 작가가 비워준 자리만큼 자신이 품은 뭔가를 보여준다. 김혜진은 그것을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어쩐지 그에게 받아 적힌 ‘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작가 쪽으로 진심어린 묵례를 건넬 것 같다. 김혜진은 내게 언제나 최대한 물러나주는 작가이고, 나는 그가 물러난 자리에서 존중을 본다. 그의 묵묵한 물러남은 내게 어떤 부끄러움을 일게 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해준 작가에게 나는 속절없이, 깊은 묵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된다.
14.
박솔뫼의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간다. 모르는 건물의 입구로, 모르는 호텔 방으로, 모르는 식당으로.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이어진다. 그 사람은 우연한 이유로 내가 들어온 그 건물로 들어온 사람일 때도 있고 활자로만 친밀했던 작가일 때도 있다. 나는 두 가지가 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박솔뫼의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나는 가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 박솔뫼의 소설을 읽는다.
15.
사는 동안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가장 가엾게 여긴다. 다른 사람은 몰라, 너는 몰라,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는 일에 너무 몰두하다가, 정말로 가장 외롭고 슬픈 사람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헤어지는 사람이 된다.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식으로 말하자면, “있다가 없”는 사람이 된다. (……) 결국 우리가 더 이상 함께이지 않을 때, 있다가 없던 사람이 되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샴페인이 터지는 순간처럼 짧았던, 우리가 서로에게 가던 순간, 일루미네이션이 그리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서로의 사정과 마음을 물었던 순간이다. 샴페인이 터진 뒤 잠잠해져도, 일루미네이션이 빛을 뿌린 뒤 어두워져도, 그것은 있던 순간으로 남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으며 거품과 빛 사이를 걸어 나가겠지만, 걷는 동안 내가 자주 셈하는 것들이 가지 않았던 횟수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갔던 횟수이길, 묻지 않았던 횟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물었던 횟수이길 바란다. 더 이상 나 자신을 가장 가엾게 여기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 위해.
16.
와카코가 술을 마시는 모습은 의연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밤 나에게 필요한 술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고심해서 고른다. 연어 소금구이를 안주로 시키고, 자신을 보고 같은 안주를 시킨 사람을 보며 흐뭇해하지만, 거기에 밥을 추가해서 그걸 반찬으로 먹는 것을 본 순간 실망감에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의연하지 않은가... 연어 소금구이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안주라고 주장하는 조용한 저항 정신.
17.
동물의 마음은 정말로 잘 모르겠다. 가끔 알 것 같다고 느끼는, 확신에 가까운 순간이 있긴 하지만 그때마저 그 믿음의 끝자락에는 이건 네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지, 하는 쓸쓸함이 따라붙는다. 모르는 마음은 쓸쓸한 마음인 걸까? 이기호의 소설에는 개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과 사람 마음 몰라주는 개가 등장한다. 서로의 마음과 상황과 역사를 대부분 모르면서도 그들은 함께 산다. 우리가 누군가와 그러듯이. 그것을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 매번 무척 놀란다. 이기호의 소설은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이와 오래 살아왔고 더 오래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소설, 그러기 위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 푹 꺼진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읽으며 나도 함께 일어설 듯 숨을 참고 배에 힘을 줘본다. 힘을 주면 힘이 난다. 이기호의 소설은 마음 알 길 없는 이와 함께하려는 모두에게 “꼭 떨어져서 살 필요는 없죠? 그렇죠?”라고 물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살면서 어느새 오래 함께하게 된 이시봉 같은 개, 이시봉 같은 고양이, 이시봉 같은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그렇게 묻고 싶었다. 소설이 용기를 주자 비로소 용기가 났다.
18.
설레스트 잉의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린 아들이 사라진 엄마를 찾아가는 이야기. 인종차별이 합법인 세계에서 눈물이 고이고 이를 악문 채로 버티어 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크고 거세어 보이는 것들 아래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진, 핏줄처럼 흐르는 소중한 것들을 가만히 만져 보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겠다. "아가야. 엄마 이제 가."라고 말해야 했던 여자와 "아빠, 가족한테서 아이를 빼앗아가는 건 잘못된 거야. 알잖아."라고 말했던 소녀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아빠에게 알잖아, 라고 말한 소녀의 이름은 '마리'다. '위기' 이후 PACT라는 차별과 통제와 감시의 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마리는 마거릿의 시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나간다. 시위 중 마리는 사망하고, 죽은 소녀가 쥔 피켓에 쓰인 마거릿이 쓴 시구와 함께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폭발하는 공분의 이미지. 그 장면으로 마거릿은 영향력을 발휘한 시인이자 국가의 요주의대상이 된다. 시위 문구가 된 시구를 쓴 시인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것까지, 그녀가 그렇게 될 모든 조건이 갖춰진다. 그녀의 시집은 유명해졌으나 동시에 폐기당한다. 감시와 압박은 마거릿의 가족을 조여 오고, 결국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마거릿이 가족을 떠나 찾은 곳은 마리의 집이다. 그곳에서 마거릿은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 아이는 포스터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었다"는 마리 부모님의 말. 딸을 잃은 부모와 아들과 이별해야 하는 마거릿이 만나 다시, 마리의 말을 곱씹는다. 가족한테서 아이를 빼앗아가는 건 잘못된 거야. 한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 거대한 질문을 오래 붙드는 이야기. 설레스트 잉의 소설은 그런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만남에, 마거릿의 시가 있다. 한때 그가 무척이나 원했고 전부였던 몇 줄의 문장.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비웃음을 사다가도 한 번의 사건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 폭발력을 지니게 된 시라는 것. ‘위기’ 이전, "요즘 누가 시를 읽느냐"는 물음에 마거릿은 이렇게 생각한다. "상관없었다. 그때 그녀에게는 세상이 시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마음을 오래 생각한다. 세상이 자유로이 시끄러울 때 시는 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 같다. 세상이 두려움으로 고요할 때 시는 수많은 사람에게 심장을 일러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설레스트 잉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시와 손의 이야기. 자신에게만 중요한 것을 위해 아주 연약해 보이는 시 한 줄을 손에 쥔 채 그어진 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이 있는 사람은 중요한 것을 들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비춘다. 우리가 숨을 죽여야 할 때, 우리가 어두운 시절을 살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모를 때, 시는 심장도 되고 촛불도 되고 지도도 된다. 설레스트 잉은 그런 것을 알려주는 소설을 쓴다.
19.
나는 길다의 전전긍긍과 안달복달과 그 끝에 속수무책 흐르는 눈물을 알 것만 같다. 나는 이미 내가 세상살이에 꽝이란 걸 아는데, 그럼에도 사는 게 좋길 바라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흘리는 눈물이라면 말이다. 이 소설은 나를 다그치는 나의 목소리 때문에, 나를 못살게 구는 나의 심장박동 때문에 웅크린 적 있는 모두의 곁에 조용히 있어주는 친구 같은 소설이다(아, 조용히 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20.
오한기는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소설을 의심하려는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니까 이게 육아 소설집이 아니냐고, 나직하고도 은근하게 묻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 육아가 없어 그래서? 내 말이 다 뻥이야? 그렇게 물으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오한기를 믿지 않기로,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기로 한 나 같은 독자의 마음은 어이없게도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아 맞긴 하지…… 보육이 육아고 세 편의 글에서 모두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분명 눈앞에서 전우치를 봤는데 눈 깜짝할 사이 전우치는 간데없고 족자 속 그림이 움직이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는 탐관오리가 된 것 같은 기분. (……) 그러니까 다시 한번, 오한기를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21.
와카코가 술을 마시는 모습은 의연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밤 나에게 필요한 술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고심해서 고른다. 연어 소금구이를 안주로 시키고, 자신을 보고 같은 안주를 시킨 사람을 보며 흐뭇해하지만, 거기에 밥을 추가해서 그걸 반찬으로 먹는 것을 본 순간 실망감에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의연하지 않은가... 연어 소금구이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안주라고 주장하는 조용한 저항 정신.
22.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소설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를 살아야 했던 열네 살 소년 너새니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갑자기 사라지는지, 혹은 애초에 평범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지를 알게 한다. 뒤늦게 알게 된 진실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우리 등 뒤에 얼마나 많은 손이 있었는지.
23.
한가함과 지루함, 내가 늘 바라는 동시에 처해 있는 상태다.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짜증과 자책이다. 바쁠 땐 한가하기를 소망하다가 정작 한가해지면 지루해하거나 불안해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책 속에서는 ‘비참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비참한 인간일까? 어쩐지 그렇게 부르고 나니 속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24.
올 1월에는 처음으로 새해맞이 등산을 결심했다. 난이도가 낮은 얕은 산이지만 등산을 하기로 결심을 한 것부터, 예전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한 해가 시작될 때에는 왠지 안 하던 일을 하고 싶은 동시에, 내가 이제까지 해온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어지므로, 올 1월에도 역시 박완서의 글을 읽었다. 첫 장을 펴자마자 산에 갔다는 작가의 문장을 만나 우연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린 손자들은 흐르는 물에 돌 던지기를 좋아한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괜히 박완서의 눈으로 내 모습을 그리는 기회를 줘본다. ‘나는 바위에서 바위로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 어린 손자, 흐르는 물, 돌 던지기로 이루어진 문장의 다감하고 좋은 느낌을 이길 수는 없지만 박완서의 문장을 따라 걸어보는 느낌만은 무척 좋다. 영원히 앞서 걷는 작가를 가지는 기분은 배낭에 주먹밥을 넣고 걷는 산행처럼 든든한 것이다.
25.
  • 미안해 널 미워해 - 『정년이』 원작자가 쓴 유난한 사랑의 목록 
  • 서이레 (지은이) | 마음산책 | 2024년 11월
  • 16,800원 → 15,120원 (10%할인), 마일리지 840
  • 9.3 (3) | 세일즈포인트 : 409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9월 22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10,530 보러 가기
서이레의 산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유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이상한 눈물. 그와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각자 쓴 글에 대해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한 적도 있다. 서이레는 내가 호쾌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는 자주 외롭고 종종 우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미안해 널 미워해』를 통해 너무 늦게 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운다. 『정년이』보다 서이레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산문집이 가닿길 바란다. 서이레가 자신이 만든 이름과 삶을 언제나 터질 듯 좋아하길 바란다. 나에게 너무 늦은 이 만남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서이레와의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알맞은 만남이길 바라며 작은 진심을 보낸다. 늦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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