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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장석남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대한민국 인천 덕적 (사자자리)

직업:시인 대학교수

최근작
2023년 10월 <매일, 시 한 잔 :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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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라고, 한 젊은 시인이 ‘문창과’의 어떤 ‘시간’을 쓰고 있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기는 거’라고? 다행히도, 시는 ‘이기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빠져나간다. 덜덜 떨며 난방 안 된 대극장 구석 의자에 앉아서 문창과 학생으로 시작하던 날이 생각난다. “문에 창호지 바르는 학과니?”라는 질문이 사실이었던 때다. “예, 술 하는 학과입니다.”라는 말은 농답(弄答)이었다. 문창과는 참담한 꽃밭이었다가 찬란한 꽃밭이었다가, 비 맞는 일이었다가 노래하는 것이었다가, 바닷속 같았다가 먼 데를 바라보는 봉우리 같았다(그러나 나는 이 책의 필자에서 배제되었다).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면 문창과는 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학과다.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른 춘삼월 매화 피는 것처럼 기특할 뿐이다.
2.
거의 모든 시들이 현재 진행형인 까닭을 생각해 보았는데 답이 쉽지 않다. 모든 생은 결코 끝나지 않는, 끝낼 수 없는 여행이라는 뜻일까? 모든 시들이 살아온 내용들로, 감상 섞인 단어를 쓰자면 ‘추억’으로 이루어졌음에도(모든 시는 그럴 수밖에 없고!) 문장은 늦가을 냇물처럼 흘러만 간다. 투명하게 살아 진행한다. 문장 아래에는 오롯이 씻긴 풍경과 소소한 사건들이 넘실거린다. 한 모서리도 훼손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시공(時空)에 그러나 아무나 볼 수 없는 무늬가 있으니 백숙현 시인의 탁월한 안목이 발견해낸 무늬일 것이다. 여행자로서 그의 발길은 세계 전체로 열려 있으나 그 발자국은 내 울타리 안의 그것과 같이 실감 있다. “사막을 오래 걸어온 얼굴”(「한밤의 초코케이크」)을 알아채고 “구름을 공부하면” “더 좋은 생활을 하게 될 것 같”(「구름을 공부하면」)다는 그의 조용한 고백을 따라서 독자는 ‘구름 공부’를 해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시는 ‘밤 기차’와 같아서 그는 원주에 내리지만 기차는 원주 지나 ‘좋은 곳’도 지나 ‘천년 숲’을 가로질러 갈 것이다. 이승과 환상과 음표들, 겨울과 울음과 사원들 위를 오가는 소금쟁이의 발자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시를 그 소금쟁이의 발자국에 비유해 본다.
3.
자연은, 자연의 모든 문양들은 마음이 그리로 가서 만들어진다. 아니 마음은 그것들로부터의 무늬다. 그렇듯 ‘너’와 ‘나’는 무엇이 먼저인지 따질 수 없어서 그저 웃지요라고 답한 선인들이 있었다. 여기 바닷가 시인의 마음의 무늬들이 글자를 입고 쏟아져 나왔으니 성큼성큼 나아가 쿡쿡 짚어 대는, 쳐들어 저편 허공을 가리키는 지팡이를 닮았다. 잠언풍의 시들이 지팡이에 핀 꽃 같다. 선인들의 그 웃음 같다.
4.
‘오배이골’에서 새를 불러낸다는 이가 보고 싶다. 또 그 옆에서 감탄 어린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인 친구’도 보고 싶다! ‘솔찬히!’ 책을 접하며 사는 업이지만 이렇게 삶의 맨살을, 아니 생살을 느끼게 하는 글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 안에 숙어져 있던 짓이겨진 ’쑥향’이 살아난다. 사는 일과 무관한 수많은 ‘문학들’에 속아주기도 지치던 차에 두 사람의, 뭇 생명들을 참여시킨 생명 찬양의 ‘베틀’은 불볕 하늘을 지나는 소란한 소나기와도 같고 고뇌를 씻어주던 새벽 새소리와도 같아서 나는 그들의 만남에 넌지시 청려장으로라도 참여해 보리라 다짐 아닌 다짐을 한다.
5.
일찍이 강지이의 등단작 「수술」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폐허’가 과연 그의 것인가 할 정도로 놀랐고 그 조숙한 ‘아이’의 정체가 내내 궁금했었다. 첫 시집을 일람해보니 알 듯했다. 그는 유년기에 ‘동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를 친구로 사귄 이래 멈출 수 없는 폐허론자였으리라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가 “보석 안쪽으로 서둘러 사라지는/물고기의 꼬리를 본다”(「Turquoise」)고 독백할 때 그 폐허의 매혹은 우리가 해설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지이의 시는 설치 작가의 설계도를 방불케 할 정도의 참신한 공간을 무심한 듯, 심드렁하게 구성한다. 관객인 우리는 그가 해석하여 넌지시 제시하는 공간을 따라가면서 그가 설치해둔 ‘벽’과 ‘창’을 통해 처음 보는 ‘여름들’을 만끽한다. 여름이란 무섭게 자라나는 ‘폐허’가 아니던가. 그의 시는 우리 생애의 여름이 우리가 아는 그 성장이 아니라 ‘무성해지는 폐허’는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너무 밝은 것은 함께 갈 수 없다”(「궤도 연습 3」)는 선언이 아름답다.
6.
  • 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Choice
  • 전군표 (지은이) | 난다 | 2021년 6월
  • 16,000원 → 14,400원 (10%할인), 마일리지 800
  • 9.7 (20) | 세일즈포인트 : 501
성삼문成三問이란 인물과 그 시대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호출한 작가의 뜻부터 헤아린다. 그리고 한 가닥 빛처럼 떠 있는 이름, ‘효옥’에게 집중한다. 성삼문의 유일한 핏줄, 효옥. 영특한 그 빛의 행적을 상상하는 일은 비극이지만 해원에의 기도로도 읽힌다. 억압된 현실에서의 마음의 날개를 붙잡은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작가는 이 소설의 장면과 문장들을 매만지며 흩어졌던 마음의 빛을 다시 모아 쌓아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멸문당한 의로움이라니!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마음 가다듬어 둘러볼 일이다. 한 귀퉁이 일개 독자의 마음도 효옥의 행적을 좇아 동행할 때 해방의 기운이 오는 것을 느꼈다. 빛이 비록 가냘픈 것일지라도 짙은 어둠 속에서라면 하늘의 별빛과 다를 수 없다. 붙잡을 수 없으나 외려 그러해서 길잡이 빛이 되는 것 말이다. 하늘에서 ‘나왔느냐’고 세 번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삼문三問’이란 이름이 되었다 하니 과연 하늘의 질문에 값한 삶이 절절하고 또 절절하다.
7.
지극한 평범의 아름다운 무늬 지금, 봄입니다. 엊저녁에는 비가 왔습니다. 모든 봄비는 ‘좋은 생각’입니다. 한번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꽃이 오고 초록은 짙어집니다. 모두 ‘겨울에서 걸어 나오는 이야기’(「걸어 나오기를」 중에서)의 싱싱한 문장들로 읽습니다. 반복해 읽을수록 속임 없는 마술입니다! ‘얼음에서 걸어 나오는 시냇물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반짝이겠으나 순하고 낮고 지극히 아픈 소리이기도 합니다. 얼음에서 걸어 나오는 이야기라니요! 이 시선집을 저는 그 ‘이야기’의 일관된 변주들로 읽었습니다. 얼음에서 걸어 나오는 이야기, 굳은 생각을 뚫고 나오는 새 사색의 이야기, ‘누더기’를 풀어 짓는 새 옷의 이야기……로 읽습니다. 혹은 평범한 잠언으로도 혹은 번득이는 지혜의 언어로도 읽힙니다. “작은 것들은 모여라/느린 것들은 모여라/약한 것들도 모여라/서툰 것들도 모여라/우리 함께 가자//우리 천천히 걷자/각자의 노래를 부르자/발을 맞추지 말자/대오를 흩트리자/길가의 작고 느린 것들이/우리에게 박수를 보낸다”(「소풍」 전문) 의표를 찌르는 반전과 통찰의 여운은 근래의 관습화된 ‘소풍’에 대하여 그리고 그 기원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명편(名篇)입니다. 범상한 듯한 미소를 이끌어 낸 후 ‘발을 맞추지 말자/대오를 흩트리자’는 엇박자의 청유가 폭풍 같은 의미의 회오리를 이룹니다. 통쾌합니다. 그저 앞사람을 쫓는 나들이가, 소풍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닐 겁니다. ‘길가의 작고 느린 것들’이 일러 주는 지혜, 주변의 평범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그 진실된 ‘모습’에서 건져 올린 사색의 시편들이 차가운 시냇물을 건너가는 징검돌 같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시 때문에 저는 이제 죽기까지 세상 현관의 모든 신발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현관에 벗어 둔 신발이/뒤집어지고 흩어져 있습니다./집이 좋다는 신호이지요.”(「행복 신호」 중에서). 시는 그러한 것이니까요.
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4일 출고 
갈림길이 있다. 마가리가 있는 산길이 있고 읍내 쪽, 밥벌이 길이 있다. 양편 다 살아갈 방향이고 소중하다. 산길로 가다 보니 별만 너무 빛나서 겁이 난다. 석유 내 나는 읍내 쪽 신작로로 부지런히 가자니 것도 인생 한번인데 아니다 싶다. 어느 길이 더 좋은가? 옛날 프로스트 할아버지가 점잖게 아쉬워한 ‘가지 않은 길’도 별거 아니라는 걸 눈치챈 김에 양쪽 다 가지 않는 방법도 있다. 『바람분교』가 그 갈림길 앞에 있는 학교였다. 선생도 학생도 바람. 홀로 소멸을 견디는 ‘독서하는 석고 소녀상’이 그의 시적 자화상(나는 그 소녀를 짝사랑하게 되었다)이었는데 그 소녀가 이번에는 벌떡 일어서서 춤을…… 그의 시를 읽어가는 까닭이다.
9.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연금술이라 하면 나의 꿈이었고 그저 꿈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감 있는 꿈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연금술은 저 사전적 의미의 그것은 아니고, 어릴 적 납을 녹여서 낚시용 납봉을 만들듯이 뭔가를 녹여서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내 사업인 ‘시’도 뭐, 그러한 일의 일부이기도 한데, <푸른 연금술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주의 호흡과 만나는 철강의 쓰임새와 그 작업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녹인다! 이처럼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 달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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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안미옥의 시에는 우선 ‘체온’이 강하게 느껴졌다. “말에도 체온이 있다면 / 온몸에 꽉 채우고 싶은 말이 있다”(「론도」) 같은 구절에서, “왜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을까 // 귤을 만지작거리면 / 껍질의 두께를 알 수 있듯이 // (……) // 붉어진 두 눈엔 이유가 없고 / 나의 혼자는 자꾸 사람들과 있었다”(「지정석」) 같은 구절에서 체온은 드러난다. 자신의 삶을 오래 매만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오래 바라보고 삭힌 마음이 간단하고 명징한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점은 ‘안미옥스럽다’고 할 만했다.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고 싶다.
11.
안개가 언덕을 먹어가듯 시 속을 가노라니 어느덧 한껏 눅눅하고 얼룩덜 룩하고 서글픈 만다라 속이다. 번쩍 정신 차리니 이미 만다라 속에 시는 나를 꼭꼭 숨겨 놓았다. 나는 이미 그 속에 스며서 어딘가로 흐르고 고이고 먹힌다. 추전에 간 사티, 화전에 간 사티, 그리고 아현동 산동네에도 간 사티, 는 삶이 이상한 월식 같은 것이라고 멜로디로 말하다 죽었다. 남긴 것은 5억 8000만 년 된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12.
  •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 이병철 (지은이) | 북레시피 | 2018년 8월
  • 14,000원 → 12,600원 (10%할인), 마일리지 700
  • 10.0 (1) | 세일즈포인트 : 5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4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8,820 보러 가기
“이병철 시인은 원래 헤밍웨이였다. 그가 시를 선택한 것은 실수다. 낚시를 더 즐기기 위해 선택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의 글바다에 낚싯줄을 던진다.”
1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4일 출고 
머리 위에는 시퍼런 ‘세 겹 돛’이 펄럭이고 발에는 검고 ‘낡은 구두’를 신은 한 사무원을 알고 있다. 돛을 펴서는 시베리아니 그린란드니 무슨 사막이니 하는 데를 종횡으로 누비고 낡은 구두로는 부동산과 통장 잔고를 논하는 소시민을 알고 있다. 그는 오래도록 ‘불타는 시를 세상에 뿌려 사람들을 불태우고 싶은’, 두보의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꿈보다 격렬한 꿈을 꾼 사람이었다. 그의 연민은 시간 건너의 제 고향(제주) 역사의 비극에서부터 아내의 자궁을 나서는 아이의 서글픔에까지 뜨겁다. 그의 내면은 태풍 몰아치는 때의 제주 산간 삼나무의 휘어짐과 같다. 그 소리에 나는 사라졌던 총기가 살아남을 느낀다. 그는 오광석이라는 마흔 너머 첫 시집을 내는 밤바람 같은 시인이다.
14.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이란이라는 현재의, 영롱한 이름을 가진 나라의 시들이 우리 동방의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니 그 또한 물방울의 껴안음 같은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두 나라의 시들이 소개되었으면 한다. 두 시의 나라가 교류하여 서로의 정신을 부비고 나눈다면 그 불꽃은 인류의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을 믿으며.
15.
신달자 시인이 시인협회장 임기가 지나고 북촌 언저리에 순수 한식의 겸양한 작은 집을 짓고 오신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감흥이 컸던지 가라앉기 전에 부지런히 시로 옮기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옛날의 지리와 옛 사람의 향기와 옛날의 문장과 시 위에 지금의 풍경과 지금의 향기와 지금 사람의 느낌이 또 한층 아로새겨지는 일은 얼마나 뜻깊은 일이겠는가. 옛 역사에 되비쳐 제 사는 장소를 사랑하고 제 사는 시간을 성찰하고 제 사는 숨결을 노래하는 것이 시인이라는 것을 새삼 되비쳐 주는 시집이 아니겠는가.
16.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시의 성찬 앞에 나는 앉아 있습니다.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고요한 불을 뒤적이듯이 시를 뒤적입니다. 불이 그렇듯 시의 따스한 온기와 빛과 그들의 스러짐과 깨어남을 느낍니다. 불빛 속에서 나는 그 시들과 어깨동무라도 한 듯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우주를 맴도는 원무(圓舞)를 추는 듯한 흥겨움에 젖습니다. 시란 과연 이런 것이었지. 그랬지……. 눈에 익은 시들과 함께 처음 만나는 시들도 하나같이 베이다오가 고백하듯이 나의 마음속 ‘횃불에 불을 당기는 것 같은’ 전율로 변합니다. 탁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 아득한 배음(背音)에는 고금(古今)의 이러한 노래들이 있어서,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서 지혜와 위안의 양식으로 삼았음을 새삼 생각합니다. 우주와 진리의 맥박에 관한 크고 고운 교과서라 할 만합니다. 가방에 한 권의 시집을 넣어야 할 때 나는 이 책을 넣을까 합니다.
17.
내가 발견한 모든 ‘좋은 첫 시집’의 공통점은 거기에 ‘운명’이 어른댄다는 점이다. 안주철의 첫 시집에는 간절히 감추고 싶었을 그것이 ‘돌아보면 슬쩍 숨는’ 얼굴로 도처에 어른대고 있으니 읽는 이의 눈에 머물지 않고 가슴에 낮게 스며들 시집임에 확실하다. 마치 첫 경험처럼. 망설이다가 그냥 인용하기로 한다. “물이 식는 속도를 센다./(…)물고기가 더이상 도망가지 않을 때까지//엄마의 발가락을 감고 있던 붕대가 풀리자/피가 쏟아진다. 엄마는 등을 돌린다. 나는/저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대야에 붉은 꽃잎이 한장 두장/오래도록 펼쳐진다. 한송이가 될 때까지//(…)거울 속에 다시 노을이 끓는다.//나는 내 살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나는 못됐다! 그러나 가파른 언덕을 넘듯 이 시를 ‘읽어 넘어’야 했는데 힘겹고 아름다웠다. 타고난 것에 대한 무한한 저항과 사랑의 균형점에서 시는 솟고, 그의 시가 꼭 그랬다. 궁극에서는 만들어진 시를 버리고 솟아난 시를 택하지 않던가. ‘운명’과 ‘운명을 바라보는 눈’이 시의 자기장 안에서 깊게 빛난다.
18.
비단의 능선으로 된 나라가 있었지요. 어느 순간, 그 능선 위에서 살고자 한 사람이 석경 선생인가 합니다. 놀랍죠. 혈혈단신 젊은 날 천축국 기행의 모범이 되었던 선생의 진정한 귀향이 신라라. 유행따라 대충 흉내나 내다 마는 인도 언저리 여행객들의 모범으로는 먼 분이겠죠. 내세에는 나도 석경 선생을 따라 기러기 울듯 신라, 그 고대의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19.
잠이 깨어 살펴본 시간이 아직 심야였고 잠이 아주 깨어버려 문득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런 일 같다. 이번 전동균 형의 시집을 읽는 일은. 눈으로 읽어지는 게 아니고 만져지고 삼켜진다. ‘서쪽으로 다섯걸음’ 더 가서 낮아진 젊음과 깊어진 시선을 따라가자니 먼 데까지 펼쳐진 능선을 보는 듯하다. 책을 덮으며 또 한번 얼굴을 어루만진다.
20.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여정이 있는 시가 좋은 이유는 나 같은 게으른 독자를 일으켜 세워 끌고 가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일상인에게 모든 시는 자신의 ‘맨얼굴’을 반추하게 하고 ‘맨얼굴’의 여정을 제시한다. 홍은택의 시는 상처로 출발한다. 그 상처는 아픔의 상처라기보다는 부수는 의미의 상처다. 가면을 깨는 상처 말이다. 상처가 아물면 흉터가 되듯이 홍은택의 일련의 기행시는 일상의 상처를 아물리는 여정인데 그 여정은 자연스레 폐허에 닿는다. 왜 홍은택의 화자들은 폐허의 시간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아마도 그곳이 인생과 사랑과 아픔의 궁극적 풍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폐허를 선험한 사람이 결국은 ‘한 소식’을 찾아 떠나는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나는 이 시집의 화자들이 지향하여 간 풍경을 왜 ‘폐허의 풍경’이라고 인식한 걸까? 끝내 가면을 벗지 못한 채 시를 읽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러 이국 고도(古都)의 공기 속에서 느끼려 했던 화자의 살([肉])이 되지 않고는 나는 온전히 이 시집의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갖지 못할 것인데, 그럼에도 저 멀리 앞서간 화자를, 시인 홍은택의 심성을 쫓는 일을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나도 타박타박 이 시집의 행간 속으로 간다, 간다, 간다! 가는 것이다.
2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4일 출고 
선생님의 시는 우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던 시절이 여러 편에 걸쳐 눈물겹게 반추됩니다. 그러나 그 유년의 노래는 단순히 시적인 세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사를 노래할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감상적 설움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시에는 깊은 슬픔 가운데에도 유머가 배어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22.
  • 여기와 거기 -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 장우철 (지은이) | 난다 | 2012년 10월
  • 15,000원 → 13,500원 (10%할인), 마일리지 750
  • 7.5 (15) | 세일즈포인트 : 321
불경하게도 교정지를 보다가 몇 장을 군불 지피는 데 불쏘시개로 구겨 썼는데 푸른 불꽃을 이루어 삭정이들이 잘 붙는다. 손바닥을 펼쳐 온기를 쬐었다. 이 사람의 문장이 그러해서 옛것, 지금 것, 바다 건너 것, 이웃 것 모두 한데 어울려서 매사 식어버린 마음 아래 밑불을 이루어준다. 청하여 풋것들이나 내놓고 조용히 한 보시기 하고 싶다.
23.
나는 살을 건너는 법을 알지 못한다. 법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건너갈 뿐이다. 살에는 죄도 있어서 괴롭지만 살에는 간지럼도 있어서 순간순간 즐겁다. 나는 살의 깊이를 모른다. 다만 살을 헤쳐 건너간다. 나의 살을 건너가는 그대여. 그대의 살을 건너가는 나여. 우리는 살 위에서만 삶이리. 살 위에서만 꽃이리. 살 위에서만 진리이고 살 위에서만 구원이리. 그곳까지 살을 타고 가는 방법 이외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대답해주는 이는 없으리. 살의 말은 혀를 거쳐 귀로 오는, 소리를 입은 말보다 진하고 깊고 아름답다. 살은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고 늘 속삭이고 헐떡거리며 오열한다. 살의 말은 침묵의 우레와 같다. 소나기와 같고 번개와 같다. 살을 건너가면서 수없이 침몰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다시 피투성이 돛을 달아주는 것이 또한 그것이다.
24.
안개가 언덕을 먹어가듯 시 속을 가노라니 어느덧 한껏 눅눅하고 얼룩덜룩하고 서글픈 만다라 속이다. 번쩍 정신 차리니 이미 만다라 속에 시는 나를 꼭꼭 숨겨놓았다. 나는 이미 그 속에 스며서 어딘가로 흐르고 고이고 먹힌다. 추천에 간 사티, 화전에 간 사티, 그리고 아현동 산동네에도 간 사티, 는 삶이 이상한 월식 같은 것이라고 멜로디로 말하다 죽었다. 남긴 것은 5억 8000만 년 된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25.
  • 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 
  • 고은 (지은이) | 창비 | 2011년 7월
  • 9,500원 → 8,550원 (10%할인), 마일리지 470
  • 9.7 (7) | 세일즈포인트 : 544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3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5,990 보러 가기
우리는 간혹 사랑의 만경벌을 갑니다만 그중 단 한번쯤은 너무 깊이 들어가게 마련이지요. 뒤돌아보면 흐릿흐릿 젖은 발자국만 보이지요. 이어져온 그 단순한 발자취의 곡선은 누선(淚腺)을 닮았지요. 동무 하나 없어야만 하는 사랑이라는 운명의 꼼짝없는 회고와 꼼짝없는 전망, 사랑의 독도입니다. 고은 선생님! 까마득 진화에서 까마득 멸망까지가 사랑의 온몸이라네요. 그토록은 커야 안 슬퍼요. 너무 커 멸망까지가 다 품 안에 있습니다. 영혼 술술 뿌려 절여놓은 사랑 그리고 그것들의 호흡. 때로는 너무 격해 건너뛰기도 하는 비문(碑文)의 아름다운 징검돌 사이, 나는 한 떼의 햇송사리떼입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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