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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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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시절과 형식>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4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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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80년 5월의 전설과 함께 시를 시작했으니 고희를 맞은 지금까지도 그가 세계와 화해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3부의 시들이 그 증거다. 5·18, 4·3, 세월호 참사, 용산역 참사 같은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 그는 여전히 분노하고 자조한다. 그런데 시집 곳곳에서 반짝이는 저 수많은 꽃과 나무와 별과 달과 숲들은 무엇일까? 그것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노승이 남기는 사리는 누적된 참선의 결정(結晶)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나는 나종영의 시 속에서 빛나는 저것들이 꼭 사리인 것만 같다. 시력 전체를 거쳐 지속된 그른 세계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그의 시를 단단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그것들을 삭여 어떤 결정들을 만든다. 그러니까 나종영의 시집 곳곳에서 반짝이는 저 수많은 것들은 일종의 사리다. 물론 그것은 오래 묵고 벼린 말[言]로 된 사리다.
2.
난해한 형식실험을 즐기는 작가가 아님에도, 이화경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이것은 소설 장르의 경계에 대한 실험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서사와 ‘천변만화’란 수사에 걸맞은 문체 때문이다. 저 먼 고려시대 어린 기생의 이야기를 쓸 때, 그의 문체는 쌍화점의 가락을 닮는다. 연인과 정사(情死)한 실존 극작가의 아내 이야기를 쓸 때, 그의 문체는 개화기 한국어의 복원장이 된다. 알코올중독자를 주인공으로 삼을 때 그의 문장에서는 술냄새가 진동하고, 이상의 ‘오감도’를 인유할 때 그의 문장은 미로와 흡사하다. 비유컨대 이화경은 복화술에 아주 능한 이야기꾼의 자격으로, 소설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갱신코자 항상 분투하는 작가다.
3.
  • 방학 -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Choice
  • 최설 (지은이) | 마시멜로 | 2022년 3월
  • 13,800원 → 12,420원 (10%할인), 마일리지 690
  • 9.4 (16) | 세일즈포인트 : 114
이 책은 주어진 시련을 겪고 어린 주인공이 어른들의 세계에 입사하는 그런 흔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문학사에서 몇 안 되는, 참으로 흠잡을 데 없는 마키아벨리적 주체인 주인공 건수는 상당히 냉소적일 뿐, 작중에 등장하는 그 어떤 어른들보다도 ‘믿을 만한 화자’다. 《방학》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이 점 때문이다.
4.
그들은 완전히 우발적으로 그 시간 그곳에 모여 우연의 여섯 면 입방체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청년 실업자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기관사, 아내를 잃고 생을 비관한 빈곤층 노인이 거기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얼마간 필연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이런 식으로 우발적인 것들의 마주침에 작용하는 필연의 위력을 기입한다. 추리할 수 없을 만큼 우발적인 사건들의 저변에서 그 우연들을 결정하는 최종심으로서의 ‘사회적인 것’ 말이다.
5.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그녀가 배운 ‘어느 시작법’은 “윤기와 물기를 잊지 말거라”…… 그래서 그녀가 꽃이나 구름이나 사랑을 노래할 때, 그것들은 마치 윤슬처럼 젖은 채로 빛난다. 뜨겁게 반짝이는 시어들, 그러나 그 아래 고여 있는 깊고 어두운 물의 낌새…… 물론 시집에 가득한 이름들도 윤슬이다. 40년 된 기억 속에서 빛바래 가는 이름들을 그녀가 소환한다. 손옥례, 김선옥, 선종철, 김옥희, 차명숙, 윤청자, 박영근, 강용주, 전재수, 김남주, 허철선, 김영철, 박용준, 전태일, 이소선, 김윤덕, 이옥분…… 고영서의 시집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은 정말이지 연어처럼 돌아오는 저 이름들이 만들어 내는 찬란하고도 슬픈 윤슬과 같다.
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3일 출고 
“흔히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에 ‘말의 형식’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바로 ‘문학’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5·18을 여전히 앓고 있는 이들의 입을 대신해 그 고통에 말의 형식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런 시도를 일컬어 우리는 ‘오월 문학’이라 불러왔고, 소설의 경우 임철우·송기숙·최윤·한강·공선옥·김경욱·정찬 같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빛나는 성좌를 일종의 문학적 계보로서 확보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작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를 읽어 보니 손병현 작가가 하고 있는 작업도 바로 그와 같다. 나는 이 작가가 부디 오래오래 5·18에 대해, 아니 5·18에 ‘대해서만’ 쓰는 작가로 남아 주었으면 싶다.”
7.
그 속에서 독자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바, 그 시선이 구체적인 사회적 모순과의 긴장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것도 이 작가의 독특한 능력으로 평가된다.
8.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천희란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작가는 단순하게 단죄하지 않고, 단순하게 면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들의 온도로부터 견디기 버거울 만큼 뜨거운 통증이 전해져 온다.
9.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꿈은 살아가게 될 삶의 연습인가(작가는 그렇게 말한다),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보상(나는 그렇게도 읽는다)인가? _ 우다영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10.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3일 출고 
기억의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이 어찌되었건 미련이 없게 되는 상태……. 타인이 내게 상처를 주었으나, 그 상처를 방어막 삼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니 “이제 유년의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 바로 그 상태……. 김경희의 주인공들에게 무의식은 이런 방식으로 해결된다. 사랑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증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증상에서 ‘증상의 원인되기’로의 힘겨운 이행.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만연한 작금의 우리 현실에 대한 작가의 평범하지만 견고한 지혜를 이 작품들 안에서 읽지 못한다면, 『켄타우로스, 날다』를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11.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일상의 안온함이 여성의 ‘몸’과 욕망의 포기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 집은 폐허다. 그러나 이 단편의 결말은 말한다. 집은 곧 새로 지어질 것이라는 걸. -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1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2일 출고 
그와 나의 브로맨스 원고를 읽으면서 다시 고마웠다. 100편이 넘은 영화를 하루 만에 다 본 느낌이랄까? 그답게 문장에 수사나 과장은 없었다. 건조하고 무뚝뚝한 필치로 단번에 영화의 핵심에 도달한 짤막한 글들이었다. 특별히 6장에 모아놓은 ‘5월 광주’에 대한 영화들이 고마웠다. 그러나 가장 고마웠던 것은 이런 문장들이었다. “친구들에게 자본이 고르게 분배된 후, 이들이 행하는 장례식 집단 율동은 꾸며진 이데올로기를 감추기 위한 푸닥거리였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써니> …<중략> 나는 저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그 옆에 ‘ㅋㅋㅋ’라고 표시해두었다. 그 표시는 내가 조대영의 영화읽기에 바치는 ‘오마주’다. 젊은 날 우리는 항상 키득거리는 B급 정서를 편애했고, 또 편해 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삐딱하게 영화를 보면서 이른바 영화 속의 ‘정치적 무의식’(제임슨)을 읽어내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 책 전체에 두루 퍼져 있는 저와 같은 문장들은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조대영이란 사실, 홍안의 청년이던 시절이나 백발이 듬성듬성한 중년이 돼 버린 지금이나 하나같이 조대영 바로 그 자란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 점이 나는 참 고맙다.
13.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지연의 형식 ‘속에서’, 혹은 그 형식을 ‘통해’ 이인성의 인물들은 역설적인 눌변으로 말한다. ‘그들’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실재와 대면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 내 말과 욕망과 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눌변의 언어와 지연의 형식은 이인성이 소설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전략이다.
14.
‘그들’의 언어와 다른 언어로 실재와 대면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 내 말과 욕망과 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눌변의 언어와 지연의 형식은 이인성이 소설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전략이다.
15.
  • 탐욕 - 사랑은 모든 걸 삼킨다 
  • 이화경 (지은이) | 문학들 | 2018년 3월
  • 13,000원 → 13,000원, 마일리지 650
  • 10.0 (12) | 세일즈포인트 : 192
소설 속 무명의 체험은 성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다. 무명은 쾌 너머의 쾌, 곧 타자적 향유에 성큼 다가 서 있는 여성 주체다. 매골승 말로末老는 '말로末路'다. 모든 욕망이 내 속의 금잠과 같아서 그 욕망이 삶을 파먹고 평생을 허덕이게 하고 조바심치게 하고 타자를 향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자, 오로지 죽음만이 그 모든 일들의 말로라고 말하는 자다. 공주의 마지막 말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것을 잃었다"는 바로 그가 전한 깨달음의 정수를 요약한다. 가져 보지 못한 채 잃은 것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우리 모두는 마치 공주가 살던 초원의 겨울 늑대와도 같아서 욕망에 사로잡힌 채 평생 자신의 피를 핥다 죽어 간다는 사실을 『탐욕 - 사랑은 모든 걸 삼킨다』는 깨닫게 한다.
16.
떠나지 못할 영원한 여행을 활자로 대신할 때, 서효인의 시들이 탄생한다. 이번 시집에는 우울 속에서도 발칙함을 잃지 않았던 소년 파르티잔들의 일탈도 없고, 전 지구적인 죽음의 연대 같은 비장함도 없다. 수많은 지명들로 이루어진 『여수』에서 서효인은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를 중첩시켜 공간을 시간적으로 입체화한다. 그가 스쳐간 지역들은 객관적 ‘공간’이기를 멈추고 기억과 감각과 정념에 의해 재의미화된 유일무이한 ‘장소’가 된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들, 역사가 공간화된 장소들, 우리들이 거쳐오고 살아낸 시간들은 우리도 모르는 채로 얼마나 많은 장소들에서 마주치고 겹쳤던 것일까?
17.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1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7,560 보러 가기
조수경의 인물들은 꿈들이 고지하는 진실을 부인함으로써 가까스로 현실의 삶을 유지한다. 혹은 불쾌하게도 현실의 삶이 실은 살 만한 것으로 ‘상상’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꾸 알려주려 애쓰는 꿈과 사투를 벌이며,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조수경 소설 속에서 꿈은 실재를 향해 나 있는 문이고, 그것을 돌파하려는 지난한 노력이 이 작가의 글쓰기를 윤리적이게 한다.
1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2일 출고 
이수진의 소설관은 명확해 보인다.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인물, 파괴되는 작가의 설정, 작가의 의도대로 맺어지지 않는 결말, 그러니까 인물도 사건도 설정도 결국엔 문장들의 불수의적 연동운동에 의해 점령당하고 마는 장르, 그것이 소설이다. 이때, (정말이지 내키지 않지만 굳이 정의해야 한다면) 작가란 ‘내장의 연동운동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괄약근’ 정도가 될 것이고, 작품이란 ‘연동운동의 조절에 실패한 작가가 싸질러놓은 똥’쯤 되겠다. 물론 인물은 내장의 연동운동 그 자체일 것이다. 그 운동이 행위와 사건을 낳을(싸지를)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간에, 이토록 기발한 소설론을 나는 여태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
19.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1일 출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 김치수가 최초로 출간한 개인 비평집이 『한국소설의 공간』이다. 엄혹했던 1970년대 한복판에서 세상에 얼굴을 내민 이 책에는 문학을 통해 역사와 자유를 숙고하려는 김치수의 비평적 고뇌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역사와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4·19 이후의 한국 문학을 재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각별한 공감 속에서 당대에 산출되고 있는 문학적 성과들을 의미화하고 긴 안목의 한국 문학사 속에 편입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김치수가 다루고 있는 작가와 작품의 범위는 방대하다. 시기적으로는 멀리 식민지시대의 작가들에서 동시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인호에 이르기까지, 그 경향에 있어서는 한국 관념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던 장용학·신상웅에서 갓 등장한 신예 리얼리스트 황석영·이문구에 이르기까지, 그는 역사화하고 해석하고 개입하고 무엇보다도 ‘공감’한다. 이른바 그 넉넉하면서도 단단한 “공감의 비평”이 시작되는 장면이다.
20.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13일 출고 
사회가 《재자연화》되어 가고 있다. 먹고 번식하는 일이 지상 명령이 되어 버린 세계, 태어남의 우연이 이후의 모든 생을 결정해 버리는 운명론의 세계는 흡사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를 닮아 간다. 아도르노의 말마따나 문명화되었다는 근대는 그 끝에서 오히려 참혹한 야만을 만났다. 그럴 때 기필코 자연주의적 감수성은 되돌아온다. 이대로라면 아마도 한국 소설 속에서 인간 세계는 동물의 왕국으로 그려지고, 운명론은 세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가장 주요한 방식이 될 것이다. 박이수의 소설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씁쓸한 진실이 그와 같다. 박이수의 소설들은 그런 의미에서 날로 자연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의 징후인 셈이다.
21.
이화경의 인도 구경은 자못 멀고 깊어서 인도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의 문장을 통해 인도의 가장 먼 데까지를 본다. 그는 이 여행 산문집을 통해 자신이 탁월한 구경꾼이자, 성찰하는 자이며, 풍경의 기록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것도 때론 유머러스하고 때론 비극적이며, 때론 장엄한 문장들을 통해 증명한다.
22.
많은 작가들이 작금의 시대를 지옥으로 묘사하곤 한다. 재난, 전쟁, 테러, 가난……, 이런 것들이 그 지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어떤가? 주말, 출근, 산책, 주말, 출근, 산책, (가끔 술), 주말, 출근, 산책……. 이 소설 속에 다른 것은 없다. 빨래를 하거나 하지 않는 주말, 그리고 똑같은 출근과 점심과 퇴근, 약간 다른 안주에 마시는 몇잔의 술, 매일 보는 동료들과의 무의미한 대화, 그러면 다시 빨래를 하거나 하지 못하는 주말, 출근, 퇴근, 술, 산책, 다시 주말……. 이것이 이 소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전체다. 재앙이나 재난마저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 ‘애증?복수?권태?폭력?불합리’마저도 감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기억하거나 의미화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가치’ 그 자체인 세계……. 말하자면 김엄지식 지옥이다. 전혀 차이나지 않는 반복, 그 악무한의 무의미 속을 발목 잘린 비둘기처럼 견디며, 실은 견딘다는 의식마저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인간-동물’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되묻고 싶다. 남의 이야기 같으십니까?
23.
최은미가 그려내는 세계는 전도된 마법의 세계이다. 이 작가는 동화와 설화의 형식을 즐겨 차용하되, 마법과 주술로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대신 그것들을 원재료 삼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알레고리로 만든다. [……] 작가는 매 소설이 시작될 때마다 온순하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묻는다. ‘준비되었나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그러나 그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도 이 지옥을 겪는 일은 충격적이다.
24.
김연수는 아무리 어려운 얘기를 해도 ‘소설적’으로 한다. 이번 소설의 경우 다소 해학적이면서도 따뜻한 웃음이 광수와 진우의 현학과 지리멸렬함을 감싸 숨긴다. 그리하여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재미있고 지적인 ‘사랑론’ 하나를 소설로 만들어놓는다. (…) 김연수는 이제는 다소 촌스러워진 엄숙성, 결벽성, 계몽주의에 대해 부채감을 느끼지 않는 작가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이 그의 소설에 웃음과 진지함, 아날로그 글쓰기와 디지털 글쓰기, 좌뇌와 우뇌가 어느 하나에 폭력적으로 통합됨 없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풍경이 연출될 수 있도록 해준다.
25.
나는 이토록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과감하고 아름답고 비루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만약 사랑에도 ‘극한’이란 것이 있다면, 《주름》의 문장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름》은 극한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기형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주름》은 한 가장이, 한국적 모더니티가 앗아간 자신의 오랜 꿈 하나를 다시 회수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며, ‘시간의 주름’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라 할 만하다. 《주름》을 읽는다는 것은, 수천 수만 년을 읽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겠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독자 입장에서 《주름》은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충격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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