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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영광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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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살 것만 같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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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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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모호하지만 신비롭고 어지럽되 또 고요하다. 만상의 배후에 어떤 높은 존재가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은 그이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시인은 가족사의 얼룩진 갈피들에서나 세상 오지의 폐허에서나 늘 상처의 자리를 곱씹고 매만지는데, 그것은 고통을 매번 새것으로 앓는 일이어서, 크고 깊은 당신의 힘에 기대어 수행해야 하는 자기 치유이자 세상 치유이다. 인간의 아픔을 온몸이 상처인 연약한 “괴물”에 견주는 이 책에서, 당신은 치유의 시간을 선사하고는 멀리 물러나곤 한다. 그러나 큰 없음은 작은 있음들의 존재 근거이고 시인의 떠남과 방황에조차 길을 내주는 영혼의 유구한 빛이다. 당신은 “빈들에 가득한” “전 세계”이고 하나님인 것이다. 시인이 영접한 ‘혁명보다 아름다운 구원’의 삶은, 그의 작은 몸에 하나님의 눈을 심어 넣어 준다. 그 눈을 두 손에 쥐고 세상 가득한 고통을 만지는 행위는 그래서 “내가 네 통곡을 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통증과 울음 너머에 드리운 정화와 나음의 길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의 만나이자 사랑의 계시인 “물”은 시인의 눈에 고였다가 신음과도 같은 시의 말로 녹아 흘러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포성과 선혈에 젖은 “난민”들이다. 그러나 당신 없는 세상에 난민 아닌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 모든 어둠의 “이야기”들을 “수술”하고 “치료”하고 “편집”해서, 사랑으로 다시 쓰는 이야기. “들녘에 뒹구는 여름날의 가을 잎들”을 본래의 푸른빛으로 되돌리려는 노래. 이 첫 시집은, 정결하고 뜨거운 기도서 같다.
2.
이문재는 지구를 걱정한다. 지구는 크다. 직경 12,756킬로미터, 질량 6조×10억 톤의 몸집을 가지고 초속 30킬로미터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는, 어마어마한 돌덩이다. 맨눈으로 지구를 본 인간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문재는 지구 걱정을 한다. 지구는 작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 프록시마는 4.3광년 거리에 있다. 멀다. 태양계를 식탁 위의 과일 쟁반만큼 줄여도 프록시마는 십리 밖에 있다. 쟁반 속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문재는 하염없이, 지구를 걱정한다. 커서 안 보여도 걱정, 작아서 안 보여도 걱정…… 기실, 이게 진짜 걱정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근심하던 옛날 기나라 사람 같다. 그런데 ‘기인지우’의 신경쇠약 뒤엔 대전란의 화염과 비명이 있었다. 지구 걱정은 인간 걱정이다. 인간은 문명 폭주와 기후위기라는 대재앙 속에 제 발로 들어섰다. 이문재는 잘 안 보이는 그걸 미리 보고서 자신과 세계, 인간과 자연 사이에 광야를 짓고, 거길 떠돌며 외쳐왔다. 그 외침의 이름은 ‘기도’인데, 그에게 기도는 시 이전이고 ‘오래된 미래’이다. 지구가 인간을 위해 결코 기도하지 않는 곳, 그의 뜨거운 시는 다 여기서 나온다. 시 이전의 시. 미래에서 온 시.
3.
젊어서는 남양주에서 이웃으로 살았다. 장현리와 퇴계원의 선술집들 생각난다. 외로움을 잔에 나누면 즐거워졌다. 교수가 되었다가 학교에서 밀려나 그대는 목수가 되었지. “살림집”과 “귀신집”을 지었다. 가난한 시인을 그리 밀어내는 곳은 살 만한 곳이 아닐 거다. 내가 남으로 떠났다가 다시 가 만났을 땐 큰 병과 싸우고 있었지. 시집은, 아픈 몸의 음악이 흐르는 착란의 무대 같다. 맹렬하고 섬세한 심금이 울고 있다. 그대는 현대의 무당, 타는 피의 광기로 존재와 세계에 뚫린 구멍에 맞선다. 어긋나고 방향 없는 무의식의 말들은, 천지간의 환상을 횡단해 윤회의 피 묻은 시간 운동을 끊고 다른 시간을 만나 새로 태어나는 중이다. 귀신과 귀신 소리들을 다 불러 모아 텅 비어 충만한 “공(의)책” 속으로, “눈물의 마니보석이 둥둥 떠다니는” 화엄 세상에 닿으려는가. 잘 못 보고, 잘 못 듣고, 잘 걷지 못하는 몸. 그러나 다른 곳을 보고, 다른 것을 들으며, 어딘가로 가는 시의 몸이 여기 있다. “희망이 있다고도/없다고도/말해선 안 된다” 중얼거리며, 그 몸은 우리 몰래 울고 웃는 중일 거다. 그대는 모두를 대신해 앓아 온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대와 함께 나을 차례이겠다.
4.
가난과 마음 가난이 자아내는 허기는 이 시인의 인생 표정인데 여기에 궁기와 한탄이 없다는 것이 전부터 놀라웠다. 허기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는 배고픔이다. 이 시집은 그 절실한 배고픔과 고독을 전보다 더 따뜻한 어둠에서 더 막막히 신문해 얻은 진술서이다. 따뜻하다는 건 함께한다는 것이고 막막하다는 건 맞선다는 뜻이다. 그는 여전히 길과 집과 꿈속에서 밥과 사랑과 공포를 마주한다. 무대는 더 외로워졌고 시인은 더 강해졌다. 그의 상대들이 세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잃은 것들이 떠날 줄 모르고 쉼 없이 되돌아오는 내면의 사태와 관계가 깊다. 방법적 착란의 기미가 비치는 여러 시편들에서 그는 이별 없는 이별의 고통에 기꺼이 시달린다. 죽음을 보내면서 또 불러들이고, 죽은 이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은 이가 되어 말하는 장면들. 말을 침처럼 흘리며 걸어야 하는 이 증세가 힘에 부쳐 그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이”인 누군가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방심의 순간이 있어 “닫힌 문” 안에 불현듯 온기가 돈다. 사랑의 ‘불을 끄려면 불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애틋한 역설, 슬픔이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힘차고 서글픈 반어는 다 사랑하는 싸움의 고된 결실이 아닐지. 시가 죽음에 손을 내미는 건 체념의 힘을 빌려 바로 생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 무대에 그가 그릴 다른 윤리의 얼굴을 기대하게 된다. 곤한 인생파 시인이 더 곤한 투시파 시인이 되어가나보다.
5.
모든 게 다 현실이고, 모든 게 다 소설이다 모든 게 다 무정하고, 모든 게 다 유정하다 국가가 개인의 사랑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장길도의 신념은 결국 좌절에 이른다. 나는 소설을 덮고 장길도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늙은 그들의 젊음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장길도는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젊은 당신들의 늙음은 어디 있나? 아니, 젊음은? 이 소설은, 영원히 목에 남은 아담의 사과 같은 ‘사과 두 알의 사랑’을 대답으로 들려준다. 작가의 대답은 읽는 이들에겐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의 방식으로 스며들 것이다.
6.
백석은 나라 없는 시대의 혼란 속에 살며, 이 혼란을 견디게 해줄 근원적 질서가 민족의 삶에 내재하고 있었음을 시로써 보여주었다. 아이의 눈과 심성을 빌려 도달한 기억의 고향에서, 그는 고독과 가난을 수습하고 포용해내는 원초적 사랑을 발견하였다.
7.
내가 아는 이범근은 사람이 좋다. 앓지도 방황하지도 않는 인간성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좋은 사람이 좋은 시를 쓴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그의 정신을 사로잡는 이들은 아픈 사람이거나 갇힌 사람, 심지어 없는 사람들이다. “머릿속에 살던”(「백색왜성」) 이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으나 우리가 모르는 이들이다. 늙은 어머니나 어린 고아나 떠난 연인은 그러나, 모두 산 사람들이다. 산 자는 고통 속에 있다. 이 고통을 어떻게 앓을까. 아니, 이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을 부르는 게 아니라 ‘나’의 고통이 이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 ‘나’의 고통과 남의 고통은 “얼굴”과 “얼굴의 반”(「십일월처럼」)처럼, 다시없을 “혜”와의 ‘뒹굶’(「수메르」)처럼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이 혼란과 신열의 지점에서 시집의 말들은 자주 몽유(夢遊)의 기록이 되거나, “혼자 우는 모임”(「혼자 우는 모임」)의 모순어법이 그렇듯 실어증의 중얼거림을 닮는다. 상상은 쾌속으로 움직이고 변화무쌍한 이미지들은 도처에서 야광처럼 빛난다. 하지만 엉킴과 비약은 문득 질서에 닿고, 멀었던 행간에는 어느새 징검돌이 놓여 있다. 시집 전체를 배후에서 지탱하는 안 보이는 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앓으면서 방황해 온 사람의 보행 자체라는 점에 이 시집의 감동이 있는 듯하다. 이 걸음걸이로 그도 시의 포구에 왔다. 하지만 이곳엔 영구히 출항이 있을 뿐 귀환이 없다. 그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되어, 미지와 심연과 싸우다가는 난바다에 쓰러질 것이다. 그러한 첫 출항을 축하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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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다해 사는데도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게 요즘 우리의 모습이다. 악착을 떨수록 삶은 어쩐지 부스러기를 닮아가는 것이다. 고생 끝에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루어 자식들을 키우다 고단해진 사오십 대의 인생은 지금 어느 길모퉁이에 서 있는 걸까. 쉬 답할 수 없는 이라면 이 책을 펼쳐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한 중년 남자의 저지름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스무 해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대책 없이 그만두었고, 한국 땅을 떠돌다 먼 외국으로 떠났고, '돌아온 탕아'나 된 듯 홀로 귀향해 늙은 부모와 한 세월을 살기도 하였다. 저질렀다는 건 아무나 그렇게 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느 날 인생이 이렇게 물어 오자, 이 사람의 바쁜 걸음은 문득 멈추었다. 멈춤은 바로 그 인생을 생각하게 해주었고, 생각은 그에게 다른 보행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니까 그의 계획 없는 발걸음은 결국 '나'를 찾는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 여행의 백미는 "엄마"와의 진짜 여행이다. 어머니는 모든 탕아들의 끝없는 애인이다. 낡은 스포티지에 어머니를 모시고 적은 짐 넘치는 대화로 즐거이 떠도는 아들의 모습은, 노모를 등에 업고 산천 구경을 다니던 옛 이야기 속의 어느 효자를 닮았다. 그는 이렇게 생활을 저지르고 가족을 저질러서 드디어 자기 자신을 바꾸었다. 책을 읽던 그는 이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저지름은 곧 찾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가 저질렀다는 것은 우리도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다.
9.
언젠가 그녀의 남편과 통화하다가,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씩 섞여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소리는 묻고 답하고 달래고 웃는다는 느낌으로, 귓가에 울렸다. 용건과 사무의 대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들. 그 말들이 웅성거리는 곳에, 책을 읽고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상념에 시달리며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온갖 감각이 얽혀 있는 곳인데도 이상스레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에 불현듯 틈이 나고 파문이 일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그 말들이 그녀의 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는 읽는 이를 홀리면서도 제 얼굴을 숨긴다. 내가 수화기 너머의 들릴 듯 말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세웠듯이, 시를 쓰는 수화기 너머의 그녀 또한 어떤 알 듯 모를 듯한 목소리에 사로잡혀 지낸 것 같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 시집에 그려진 나날의 삶이 기실 얼마나 메마르고 외롭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명이자 침묵이다. 꽃 같은 ‘땡땡이 팬티가 저만치 버려진’(「산유화」) 몽환적인 시간의 갈피에 ‘피바다를 건너는’(「내 마음은 피바다를 건넌다」) 사람의 절박한 마음이 있고, 죽음의 흔적과 예감에 몸 떠는 인간의 상태가 있고, 무엇보다도 “빗줄기 속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말”(「나의 소원」)이 있다. 내가 훔쳐 들었던 목소리가 이근화의 시라면, 시인 이근화가 그곳에서 힘을 다해 듣고 있는 미지의 말들은 그냥 시라고 불러도 되는 어떤 것이 아닐까.
10.
글 모르던 시골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 시 모음집을 엮었다고 해서 호기심에 읽어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것은 시집일 뿐 아니라, 아주 빼어난 시집이다. 이 책의 시편들에는 뭐랄까, 시 이전의 느낌이 있다. 읽을수록, 시는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시는 인생 희로애락에 대한 특별한 감흥과 발견을 담아야 하지만, 온갖 상상력과 기교를 가진 전문 문인들에게도 그건 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편들은 그걸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생활의 말에 녹여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시인으로 태어나지만, 살아가며 제 안의 시인을 잃어버리고 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원래 들어 있던, 그 시인이라는 심성과 감정과 가락을 꺼내어, 이분들은 기교 없이도 삶을 시로 썩 잘 바꾸어낸다. 이 시집의 제재를 간추리면 시집살이와 농사일이 될 것이고, 달리 말하면 '참고 살았다'와 '일만 하고 살았다'가 될 것이다. 고생스런 삶도 살 만한 게 되려면, 말은 하게 해야 하고, 고단한 몸은 또 쉬게 해야 한다. 긴 시간이 흘러, 그 말과 쉼이 하나로 합쳐져 눈물겨운 시의 꽃밭으로 피어났다. 마을 '회관'에 모여 '화토'를 치는 나날은 이 나라 농촌의 흔한 풍경이지만, 전라도 곡성 땅에선 이런 아름다운 노래가 다 나오는구나. 간난신고의 세월 끝에'잘 살았다, 잘 견뎠다'고 나직이 읊조리는, 할머니들의 두 번째 '詩집살이'가 놀랍고 감동스럽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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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오래 공들여 어렵게 펴낸 이 시집은, 먼 곳에 출가한 누님이 해를 넘겨 보내온 첫 편지 같다. 단정하고 의젓하게 조율된 목소리 사이사이로 젊은 날의 조신했던 모습이 얼비치어 따사롭지만, 이 서신엔 사실 세세한 가정사의 주름이나 일상의 감상적인 푸념들이 들어 있지 않다. 우리가 통상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애잔히 반음 낮춘 목소리나 반음 높아 수선스러운 다변이 없다. 인생 고독의 답답한 샛길들을 헤쳐 온 마음의 자취가 곳곳에 선연하고, 서정적이되 진중한 문장들에는 현실에 대한 근심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묻어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메마르고 현기증 나는 문명의 도심을 자벌레처럼 오체투지로 기어가는 중이다. 도시의 황량한 거리들을 익명의 개인으로 거닐거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도무지 불분명한 디지털 사막을 그가 부유할 때, 우리는 이 서신이 우리 모두에 대한 염려였음을 문득 알게 된다. 풍요를 손에 쥐고도 폐허에 몸을 빠뜨리고 사는 이의 어두운 귀에, 폐허가 풍요가 되는 역설을 읽어주고 있으니, 아- 누님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곳에 출가했구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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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둑에서 고개 들어 산과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우선 띈다. 그는 꽃과 나무와 풀, 물결과 바람의 흔적까지 깊이 더듬는다. 자연은 곁에 있다. 그것은 담장과 골목을 넘나들며 인간의 소유를 교란하고, 애초에 제 땅이 없으므로 모든 걸 차지한다. 그것은 무위이면서, 위무의 장소이기도 하다. 체제의 난민으로서 그는 숲속에 “나무 예배당” 같은 걸 지어 슬픔이라는 심장 출혈을 말려보려 한다. 다음으로, 고개 돌려 이웃의 노년을 보듬는 젖은 눈길이 있다. 이곳의 노인들은 밭이 아프니까 병세가 더 나빠지고, 수몰된 고향을 꿈인 듯 떠올리고, 산 식구와 죽은 식구가 걸음마다 비쳐오는 “흙바닥 거울”에 쪼그려 쉼 없이 절하는 중이다. 늙은 자연 늙은 농촌 늙은 인간의 곁에 그는 처연히 서 있다. 경계와 구획을 불허하는 자연의 “푸른 셈법”은 인간사 곳곳을 겨누기도 쓰다듬기도 한다. 약한 것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너지는 세상에서 늙고 병들고 버림받은 목숨, 혈육을 비명에 보낸 인생에 도농 구분이 있으랴. 내 가슴을 유독 찔러오는 것은, 놓을 수 없는 것을 놓아버렸거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려는 듯한 인간의 상태랄까, 시집의 낮은 톤을 배후에서 받쳐주는 더 깊은 목소리이다. 그것의 이름은 “허무”인 것 같다. 마음의 “잿더미”에 와 덮이는 “솜이불” 같은 허무는 여기서 처음 본다. 허무는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어떻게든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허무하게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13.
김이듬 「호명」 외 5편 김이듬의 시에는 천(千)의 얼굴이 들어 있는 듯하다. 작품의 주연들만 해도 어린 소녀, 임신한 여자, 사랑에 빠진 여자(남자), 사실상 죽은 사람 등이지만, 개별 작품들 안에서도 다중인격의 내부가 그렇듯 음색과 층위가 다른 목소리들이 경쟁한다. 그래서일까, 김이듬의 시는 서정적 풍경이 없지 않은 채로 어림잡기 어려울 만큼 까다로울 때가 많다. 거친 말과 비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념의 질주를 보이기도 한다. 이 시인은 세련된 표현이나 안온한 서정, 그리고 그것으로 얻어지는 시의 안정된 형식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착란의 기미가 배어나는 히스테리컬한 다변, 격렬하되 몽롱한 구어와 대화, 행간의 비약들을 방법적 정신분열이라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화자라 알려진 인물의 통상적인 목소리를 중지시키고 어떤 낯선 목소리들이 얼굴을 드러낼 때 작품의 시적 긴장이 높아지는 듯하다.
14.
김이듬 「호명」 외 5편 김이듬의 시에는 천(千)의 얼굴이 들어 있는 듯하다. 작품의 주연들만 해도 어린 소녀, 임신한 여자, 사랑에 빠진 여자(남자), 사실상 죽은 사람 등이지만, 개별 작품들 안에서도 다중인격의 내부가 그렇듯 음색과 층위가 다른 목소리들이 경쟁한다. 그래서일까, 김이듬의 시는 서정적 풍경이 없지 않은 채로 어림잡기 어려울 만큼 까다로울 때가 많다. 거친 말과 비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념의 질주를 보이기도 한다. 이 시인은 세련된 표현이나 안온한 서정, 그리고 그것으로 얻어지는 시의 안정된 형식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착란의 기미가 배어나는 히스테리컬한 다변, 격렬하되 몽롱한 구어와 대화, 행간의 비약들을 방법적 정신분열이라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화자라 알려진 인물의 통상적인 목소리를 중지시키고 어떤 낯선 목소리들이 얼굴을 드러낼 때 작품의 시적 긴장이 높아지는 듯하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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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전시와 관념의 조립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는 예민한 의식이 이 시집의 곳곳을 빛나게 한다. 사랑은 “미완성의 지속”이고 시는 “언어를 갖지 못한 설렘”인 것이다. ‘꽃 지니 잎 나고 바람 부니 다시 바람 부는’ 인간의 텅 빈 시간을 그가 마음에 받을 때, ‘사람이 새보다 더 높은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하’고 ‘굳센 합법이 가녀린 불법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기막힌 현실을 몸을 뒤틀며 말할 때, 우리는 이 호학 시인의 정신의 상태가 사유의 생산적 혼란을 얻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엎은 자리에서의 논공행상을 부정하고 “엎고 엎고 계속 엎자”는 어떤 ‘이행’의 정신, 요컨대 삶과 시의 영구혁명론에 다가선다. 우리 모두는 나날의 노동과 인생 번민과 쓴 소주에 시든 삭신을 일으켜 살기 위해 매일 싸우러 나간다. 답답한 우리는 때로 역설에 기대어, 때로 역설의 역설에 기대어 살려 하지만 이 논리적 비논리의 지대에 분명한 이정표가 있으랴?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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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와 벌 나비의 공방에 “바람”의 공장(工匠)이 산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낡은 자연과 더불어 그는 백 리 밖으로, 혹은 제 마음의 백 리 깊이로 물러나 있다.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섬섬옥수를 쥔 이 ‘쟁이’는, 문명의 뒤켠에서 주워 모은 조수충어(鳥獸蟲魚)들을 지극정성으로 매만진다. 그래서 속절 무성한 현실의 백 리 허를, ‘늑대의 꼬리가 몸을 저어 가듯’ 오가며 무수히 바람의 붓질로 물들여 놓는다. 그가 낯익은 유추를 거부하므로 우리는 오래된 관념들이 더 오래된 사물들과 자리를 바꾸고, 인간과 자연이 기이하게 한 몸이 되는 이종교배의 현장을 보게 되는 것. 이 현란한 상상력의 비거리들 안에는 이미지의 돌연한 결합과 통사의 생산적 혼란이 속출한다. “몇 개의 단장이 지나간 흔적” 둘레에 가시 울을 치고, 위리안치 속에서 바깥의 모진 “악필의 문장”들을 견뎌야 하는 박해람 공방의 전언은 그러나, 심중하되 비근한 마음의 안부이다. ‘오십 리를 기다리다 오십 리를 마중 나가는’ 발걸음이 그러하고, 이편에선 ‘가는 길을 지우고’ 저편에선 ‘오는 길을 지워야’ 하는 쓰라린 단념 역시 그러하다. 이것은 우리가 줄곧 다른 말로, 그리움이라 불러 오던 것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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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피와 뼈로 된 몸에 깃든 정신이 “고장” 나 착란에 처하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이 사람의 전신은 불타고 있고, 돌로 굳어 있고, 그의 눈앞엔 모래 먼지 뿌연 “환(幻)”의 사막이 펼쳐져 있다. 뱀과 승냥이들이, 온갖 “짐승”들이 스며들었다가는 진저리를 남기고 사라지는 곳, 쉼 없는 환청이 맴돌고 찔러 오는 곳, 현실과 꿈의 구분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도 불분명한 이곳은 생의 지옥이다. 불은 화이자 광증이고 돌은 “죽은 아이”이자 산 어미이다. 젖은 솜을 지고 가는 나귀처럼 제 영혼의 오지에 절며 귀양 가야 하는 “사마리아 여인”이 여기 있다. 그 길은 “당신이 할 수 없는 말을 내가 들을 수 있을 때까지”(?큰 돌이 작은 돌에 기대?) 끝나지 않을 터여서 죽은 자식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괴로운 신음이 전편을 덮고 있지만, 슬픈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집의 말들이 어떻게 해서 희망의 암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걸까. 실성한 이 사람이 아귀처럼 자기를 문초하여 목숨의 고난에 대해 어떤 ‘최대한의 말’을 뱉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팅(hurting)이야말로 힐링(healing)이다. 아니, 힐링은 본래 허팅이다.
18.
시인이자 활동가인 그는 늘 사람과 삶의 가치를 시의 근본 되는 자리에 두어왔지만, 이번의 여러 시편들에는 시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을 능가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시인이 된 시인은 어떻게 ‘더’ 시인이 되는가에 대한 대답의 하나로 이 시집을 읽었다. 존재하나 우리가 몰랐던 것에 대한 앎의 의지가 계몽이라면, 시는 이 계몽의 소산을 다시 의문과 당혹 앞에 세우는 모름이 되어야 한다. 대답으로써 시가 되는 사례와 물음으로써 더욱 시가 되는 사례의 차이를 이 시집은 날카롭게 보여준다. 벌 나비와 달리, 한 사랑에 집착하여 “향기와 날개”를 잃은 인간의 처지는 비판받으면서 시가 되고, 옹호되면서 ‘더’ 시가 된다. “심장”과 “심장혈”의 아픈 유추가 시라면, “마음”과 “마음의 혈”의 유추는 홀연 시에 한발 더 나아간다. 이 지점들에서 그는 예외 없이, 자신 없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있게 모르는 사람으로서 쓴다.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물신의 세계에서 시인의 가장 큰 적은 시인 자신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제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어딘가에서 견디면서, 그러나 불현듯 인간의 전부에 대해 말한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는 사태는 모든 인간들이 언제나 두려워하는 바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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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향정신史”는 마치 향정신성 물질을 투여받은 듯 미묘하고 역동적인 중얼거림으로 가득하다. 감각에 괴로운 착란을 조성하고 의식을 비틀고 허물면서 도달해야 할 미지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알면서도 모르는 “선험”지대거나 존재와 삶의 저편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무한하고 미정형인 시간의 감옥 안에서 적어도 어떤 존재의 역사를 써나가는 것 같다. 마음 깊은 곳, 기억의 어두운 밑자리를 파헤치던 그의 손이 “왼손이 왼손을 옮겨 적”듯 감각 자체를 쓰고 있는 것 같을 때, 그래서 손 없이 그린 그림 같을 때, 나이면서 내가 모르는 “얼굴”(「슈거블루스」)들이 태어난다.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말과 말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에 솟아난 말들은 예외 없이 낯설고 강력하다. 말할 수 없는 “그것을 위해 지금껏 말을 잃지 않은 것처럼”(「본질범」) 그가 말하기 때문이다. 시가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는 때는 없지만 모든 시인들이 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시가 시인보다 더 크고 깊은 것임을 그의 비범한 몰입의 기록에서 확인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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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는 인생의 뭇 시름들 속을 유연하게 몸 바꾸며 흘러간다. ‘그러므로’처럼 명확하지 않고 ‘그러나’처럼 단호하지 않지만, 쉽게 끝내지도 성마르게 대립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은 우리 삶의 결여와 비뚤어짐과 어긋남을 쉼 없이 들추어낸다. 시름과 더 오래 씨름하기 위해 채택한 태도라는 점에서 이 유연에는 뼈가 들어 있다. 어떻게도 손쓰기 어렵고 회피도 외면도 안 되는 현실이 늘 시의 상대이다. 그의 세계는 어지럽고 그는 난감하다. 그래서 ‘그런데’는 ‘-는데’와 ‘-건데’와 ‘-인데’ 들을 거느리고 지리멸렬해서 꿈인 듯 생시인 듯한 천 하룻밤의 “아라비안나이트”를 혼곤히 건너간다. 어딘가에 닿아야 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가야 할 때 ‘그런데’는 꼭 필요하다. 다채로운 인유의 갈피마다 그의 전매특허인 기지와 풍자가 여전하지만, 이제 쉰 고개에 다가선 남자의 웃는 목소리는 자주 비에 젖거나 술에 젖어 있다. 시는 편편이 치장 없이도 공교로운데 그와 우리의 현실엔 오늘도 답이 없다. 하지만 말문이 막히고 더 나아갈 곳이 보이지 않는 데서 우리는 늘 이렇게 입을 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21.
고영민 「반음계」 외 5편 고영민의 시만큼 서정시의 문법에 정통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새와 나무와 꽃, 인간과 짐승과 물건들을 두루 어루만지고 끌어안는 정감 어린 목소리에서, 이러한 재료들을 빌려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유효한 어떤 가치를 문득 낯선 것으로 빚어 내놓는 데서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가 더 크고 깊게 울리는 것은 이 서정의 테두리에 금이 가고 어떤 미지의 감각이 얼굴을 드러내는 때인 것 같다. 그는 어쩌면 그가 집 지어 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거머쥐고 움직여가는 어둡고 낯선 힘에 자주 포획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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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반음계」 외 5편 고영민의 시만큼 서정시의 문법에 정통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새와 나무와 꽃, 인간과 짐승과 물건들을 두루 어루만지고 끌어안는 정감 어린 목소리에서, 이러한 재료들을 빌려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유효한 어떤 가치를 문득 낯선 것으로 빚어 내놓는 데서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가 더 크고 깊게 울리는 것은 이 서정의 테두리에 금이 가고 어떤 미지의 감각이 얼굴을 드러내는 때인 것 같다. 그는 어쩌면 그가 집 지어 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거머쥐고 움직여가는 어둡고 낯선 힘에 자주 포획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23.
우리 시대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무언가를 견디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는 도처에서 중얼거리면서,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문득 정신을 잃어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면 그래야 할 것이다. 그는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먼 곳에 닿아 서성이고, 여기 없는 소리들을 음악보다 더 생생히 듣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없음으로 존재하는 “당신” 또는 “사랑”의 기억에 연루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의 존재 곳곳에 이미 모르는 구멍들이 뚫려 있다. 그래서 어긋나고 부서지고 흩날리는 감각의 편린들이 시집 속에 가득하지만, 나는 “이번 세상과는 아무 관계도 나누지 않는” 운명에 무언가 관계를 걸어보려는 골똘한 몰두의 기록으로 이 시집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가도 가도 모르는 길 말고 우리에게 어떤 삶의 길이 있을 것인가. 그의 목소리는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제 몸에 새겨진 리듬을 따라 부르는 취한 노래를 닮았다. 조금은 늦게 도착한, 하지만 오래 벼린 출발 하나를 마음에 담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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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슬픔”의 맞은편 마음 밑자리는 고요히 아프고, 한숨을 푹푹 쉬는 “일요일의 다리미”는 우릴 웃기다 울린다. “빅뱅”의 자식들은 멀어져갈 운명이니 “지금 당장 이웃을 사귀어야” 한다는 엄살은 기꺼운 몸살 같다. 젖었지만 여민 목소리로, 그의 시편들은 우리 삶이 웃음과 울음 사이를 오가는 건널 만한 ‘한 백 년’이라고 귀띔해주는 것 같다. 그는 전에 쓸쓸하고 다정하게 말했으나 이제 다정하고 쓸쓸하게 말한다. 깊어졌는데, 밝아졌다. 솟아난 말과 빚은 말을 한데 엮고 일상을 모아 인생을 쓰는데, 한 자리를 오래 천착해 얻은 작은 발견들은 반전의 의외성에 거두어져 홀연 흡족한 완결에 이르는 것 같다. 부분을 정성으로 매만진 사람은 저도 몰래 전체를 돌보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이 책에선 버릴 말을 찾기가 어렵다. 한 권의 시집은 한 편의 시 같고, 한 편들은 어쩌면 격렬한 정신의 ‘헬스’를 거친 한 줄들 같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강산이 변하도록, 얼마나 많은 말들을 품었다가는 내려놓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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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여전히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그의 세계 해석은 듣는 정신을 충격에 빠뜨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소외 아닌 것이 없고, 착취와 살육이 그칠 줄 모르는 이 무섭고 낯선 세계는, 바로 그와 우리가 함께 발디딘 단 하나의 세계이다. 시인이 보기에, 우리 모두는 미친 탐욕과 아픈 절규로 응고된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니 시간을 흐르게 하라. 시인이 느끼기에, 우리 모두는 자멸을 향해 가는 “괴물”의 뱃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다. 그러니 이 지옥의 “바깥”을 발명하라.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의 변혁과 확장과 탈환을 위해 그는 아득한 자연사의 시간 속을 더듬기도 하고, 태양계 너머 성간우주를 꿈꾸는가 하면, 불교의 섬세한 직관과 인연법에 홀린 듯 귀 기울이기도 한다. 그 모든 곳에서 그는 다시 “태어나”려 한다. 그리하여 영겁을 흘러와 현재를 사는 “물”처럼, 거죽이 바뀌어도 제 안에 굳건히 들어앉아 바로 “내가 계절”인 사람처럼, “춤”과 “축제”의 갈망에 떠는 몸이 되어 인간의 대지를 또 걸어가려 한다. 해방을 향한 쉼 없는 도정에서, 구보리(求菩提)와 화중생(化衆生)이 둘이 아닌 곳으로 그의 유물론적 보살행이 나날이 깊어간다. 어느 결에 머리가 세고 등이 굽어가는 가형의 뒤를 따라 걸을 때처럼, 나는 문득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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