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제 속을 보여주지 않고 한없이 낯설고도 낯익은 어떤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얼굴은 이주혜였다가 민애니였다가 정윤심이었다가 최수호였다가 정윤수였다. 그리고 언제나 시옷이었다. 작년 계간지에 이 소설을 연재할 때부터 나의 잔인함과 가혹함을 묵묵히 견뎌준 시옷이었다. 열차 출입문이 열리고 젊은 연인이 내렸다. 시옷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자 출입문 유리창에 시옷이 다시 나타났다. 문득 시옷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차가 다음 역에 정차하면 또 시옷이 잠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갑자기 다급해졌다. 시옷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전에 말을 걸고 싶었다. 아니, 그전에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2023년 가을
내 책상에서 보이는 작은 산에는 몇년 전 태풍을 맞고 꺾여버린 큰 가지를 아슬아슬하게 매달고 있는 아까시나무가 있다. 가지는 완전히 끊어져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새잎을 내지도 않고 그렇게 매달려만 있다. 바람이 유난스러운 날이면 창가를 오래 서성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응아. 오늘은 해지는 방향으로 연희동 골목을 걷다가 벽돌담을 악착같이 기어오른 능소화 덩굴을 보았어.
기역아. 지금도 보길도엔 동백이 다글다글 피었다가 목숨처럼 툭 지고 있을까?
치읓님. 손 내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읒씨.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좋아요.
아직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어서 다행이다.
쓸 날이 없지 않고, 쓸 힘은 내가 마련할 몫이다.
같이 불러주면 좋겠다. 다정하게. 이름을. 안부를.
2020년 여름
밤은 제 속을 보여주지 않고 한없이 낯설고도 낯익은 어떤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얼굴은 이주혜였다가 민애니였다가 정윤심이었다가 최수호였다가 정윤수였다. 그리고 언제나 시옷이었다. 작년 계간지에 이 소설을 연재할 때부터 나의 잔인함과 가혹함을 묵묵히 견뎌준 시옷이었다. 열차 출입문이 열리고 젊은 연인이 내렸다. 시옷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자 출입문 유리창에 시옷이 다시 나타났다. 문득 시옷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차가 다음 역에 정차하면 또 시옷이 잠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갑자기 다급해졌다. 시옷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전에 말을 걸고 싶었다. 아니, 그전에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2023년 가을
내게 닿은 최초의 이야기들은 늙은 여자들에게서 왔다. 그들은 어린 내 몸을 토닥이며 개울에 떠내려온 복숭아 이야기를, 큼직한 연꽃이 열리며 여자아이가 나타난 이야기를, 밤이면 다락에 숨어들어 살강살강 알밤을 갉아 먹는 새앙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이야기의 틈이 벌어지며 또다른 이야기가 굴러 나왔고, 같은 듯한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며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했다. (…) 실을 자아내듯 이야기를 자아냈던 그 늙은 여자들 자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을 때 그들은 이미 내 곁에 없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소설 곳곳에 내가 숨어 있는 걸 발견했다.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어온 줄 알았는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구나, 깨달았을 땐 어딘가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싶었다. 여전히 어리석고 비겁한 내가 문장 뒤에 숨어 있었다. 눈만 가려놓고 온몸을 감췄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웅크린 내 옆에는 나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이야기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주었다. 미숙한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를 만나 우리의 이야기로 단단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말하려면 우선 들어야 하고 들으려면 일단 말을 걸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고 나는 웃었던가. 그랬다면 아마 부끄러운 웃음이었을 것이다. 아직 멀었다. 부끄러우면 웃을 게 아니라 정색을 했어야지. 나는 얼굴을 고치고 묘지를 떠났다. 여행은 거기서 끝이 났지만 어쩐지 새로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 「누군가 향을 피웠다, 아니 불부터 붙였던가?」 중에서
책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책만 읽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은 흙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뒹굴거나 풀벌레를 무서워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학교에 가도 집에 돌아와도 독서해라, 놀 시간 있으면 책이나 읽어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일방적인 강요만으로 책을 읽게 할 수 없습니다. 자칫 이런 식의 책읽기 강요는 평생 책과 멀어지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책읽기가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저절로 책장을 넘기게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총 13권 26편 시리즈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장 즐겨 읽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클래식 소설을 흥미롭게 극화로 꾸민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무한한 감동과 재미를 느끼고, 우리 삶의 큰 양식이 되는 책읽기에 보다 편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책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책만 읽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은 흙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뒹굴거나 풀벌레를 무서워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학교에 가도 집에 돌아와도 독서해라, 놀 시간 있으면 책이나 읽어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일방적인 강요만으로 책을 읽게 할 수 없습니다. 자칫 이런 식의 책읽기 강요는 평생 책과 멀어지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책읽기가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저절로 책장을 넘기게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총 13권 26편 시리즈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장 즐겨 읽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클래식 소설을 흥미롭게 극화로 꾸민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무한한 감동과 재미를 느끼고, 우리 삶의 큰 양식이 되는 책읽기에 보다 편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페르소나의 발견은 고닉의 쓰기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명료한 문장을 통해 글의 명징함(clarity)을 추구하고자 했던 고닉의 쓰기 열망은 화자의 진실한 목소리, 즉 적합한 페르소나 찾기라는 읽기의 관점으로 확장된다.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문장을 찾을 때까지 오래 머무르며 기다리는 사람이 된 고닉은(문장이 말해야 할 것을 말할 때까지 붙잡고 있다가 문장이 완성되는 때를 아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을 때도 또 통증을 겪는 세계를 읽을 때도 존중할 수 있는 ‘본질적 감수성’, 즉 화자의 진정한 관점을 찾아 문장 사이를 세심하게 더듬는다. 논쟁적 저널리즘에서 진짜 비평으로 옮겨가면서 정치적 관점을 위해 문학적 고려를 희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고닉은 자신의 비판적 페르소나를 통해 타인의 글을 이끌어가는 페르소나를 찾아내고 두 진술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인칭 개인 비평’이라는 포괄적인 관점을 성취해낸다.
-이주혜 번역가
레이 브래드버리 표 선물 상자를 풀고 31편의 단편을 꺼내 손끝으로 줄거리를 더듬고 혀끝으로 문장을 맛보고 귀 기울여 행간을 엿듣다 보면 어느새 브래드버리가 뿌리는 소나기에 흠뻑 젖어 자꾸만 밤하늘의 화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붉은 행성을. (한때 그는 자신의 유해가 토마토 수프 깡통에 담겨 화성에 묻히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모든 이야기를 천천히 되감아 보면 불현듯 깨달아진다. 손을 들어 저 멀리 화성을 가리켰던 브래드버리는 사실 이 쓸쓸한 지구와 못난 지구인을 퍽 깊이 사랑했음을.
레이 브래드버리 표 선물 상자를 풀고 31편의 단편을 꺼내 손끝으로 줄거리를 더듬고 혀끝으로 문장을 맛보고 귀 기울여 행간을 엿듣다 보면 어느새 브래드버리가 뿌리는 소나기에 흠뻑 젖어 자꾸만 밤하늘의 화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붉은 행성을. (한때 그는 자신의 유해가 토마토 수프 깡통에 담겨 화성에 묻히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모든 이야기를 천천히 되감아 보면 불현듯 깨달아진다. 손을 들어 저 멀리 화성을 가리켰던 브래드버리는 사실 이 쓸쓸한 지구와 못난 지구인을 퍽 깊이 사랑했음을.
내 책상에서 보이는 작은 산에는 몇년 전 태풍을 맞고 꺾여버린 큰 가지를 아슬아슬하게 매달고 있는 아까시나무가 있다. 가지는 완전히 끊어져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새잎을 내지도 않고 그렇게 매달려만 있다. 바람이 유난스러운 날이면 창가를 오래 서성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응아. 오늘은 해지는 방향으로 연희동 골목을 걷다가 벽돌담을 악착같이 기어오른 능소화 덩굴을 보았어.
기역아. 지금도 보길도엔 동백이 다글다글 피었다가 목숨처럼 툭 지고 있을까?
치읓님. 손 내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읒씨.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좋아요.
아직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어서 다행이다.
쓸 날이 없지 않고, 쓸 힘은 내가 마련할 몫이다.
같이 불러주면 좋겠다. 다정하게. 이름을. 안부를.
2020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