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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강동수

출생:1961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6년 2월 <백탑의 달>

검은 땅에 빛나는

우연한 계기로 90여 년 전 한 신여성의 행적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짧지만 불꽃 같은 그의 삶을 소설로 옮겨 볼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녀의 삶이 내 원고지 위로 옮겨올 날을 기다렸지만 그는 내 가난한 필경(筆耕)에 좀체 응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부름이 있기를 오래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도서관을 찾아 그의 행적이 담긴 90년 전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뒤적였고 단편적으로 남은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뜯어볼수록 최영숙은 우리 근대사의 또 다른 유형의 지식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스물의 나이에 단신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낯설고 먼 스웨덴에까지 유학에 나선 것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영숙은 우리의 할머니이자, 우리의 누이, 딸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연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행적을 찾아 90년 전으로 한걸음씩 시간여행을 하면서 이 매력적인 여성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이 도도한 여성은 처음엔 나의 데이트 신청에 냉담했지만 거듭된 구애(?)에 이윽고 조금씩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이 당차고 심지 굳은 여성에게 푹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여섯, 그녀의 짧은 삶은 도전과 자유, 그리고 민중에 대한 헌신에의 의지로 충일하다. 낡은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던 그의 분투는 눈물겹기조차 하다. 만약 그녀에게 좀 더 긴 생애가 허락되었더라면 그녀는 우리 근대사의 숲을 지키는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됐을 것이다.

백탑의 달

내가 영조 때 일어났던 ‘명기집략’ 옥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이었다. 어떤 계기에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 사건이 눈에 띄었는데, 무심코 그 대목을 찾아 읽다가 소설쟁이로서의 촉이 발동했다.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니 관련 논문이 두어 편 눈에 띄었을 뿐 일반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다. 장편소설로 써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손에 닿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틈나는 대로 읽긴 했지만 쉽게 착수하지는 못했다. 사건 자체야 복잡한 건 아니었지만 그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당대의 권력 지형도와 부수적인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업과 이런저런 일에 밀려다니느라 그동안 긴 글을 쓸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은 것은 재작년이었다. 머리 한 귀퉁이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이 이야깃감을 가둬두기만 해선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던 거다. 두어 달 동안 자료를 체계적으로 다시 읽고 보충하면서 머릿속에서 소설의 얼개를 짰고, 여름 내내 전남 해남의 작은 방에 틀어박혀 초고를 썼다. 방대한 자료의 숲을 헤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즐거운 노역이었음을 고백한다.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벽에 붙여 놓고 궁궐과 관아, 도로를 골목골목까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당대 한성의 풍경을 상상하기도 했다. ‘명기집략’ 사건이 작가로서의 내 촉수를 건드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일컬어진 영조 시대에 일어난 이 책화 사건은 정조 때의 문체반정(文體反正)과 더불어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야말로 근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 아닌가.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최근까지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굴레가 씌워졌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완전히 보장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나. 그렇게 보면 영조 말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 자체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팩션 소설이 단순한 스토리텔링에 머물지 않고, 당대의 권력 지형도, 북학파들의 사상적 동향, 그리고 왕조 질서를 떠받치는 성리학적 사상 체계를 모은 인문적 읽을거리가 될 수 있도록 쓰고 싶었다. 나름대로 실록의 내용을 충실히 옮겼으며, 요즘 독자들에게 난삽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문장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본래의 의도가 제대로 실현됐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혹시 있을 수 있는 오류는 전적으로 작가의 무지 때문이라고 해량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소설이 직간접적으로 인용한 자료가 적지 않아 일일이 들기는 어렵다. 그래도 특히 신세 진 몇 권의 자료는 밝히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영조실록』과 『정조실록』, 박제가의 『정유각집(貞蕤閣集)』,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을 저본으로 삼았고, 정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 공화국』, 이덕일 『당쟁으로 읽는 조선 역사』 등 단행본도 참고했다. 이밖에 정길수 「이희천론-18세기 후반 노론청류 지식인의 운명」, 장민영 「영조대 명기집략 사건의 정치적 성격」 등 논문도 참조했다. 자료를 찾아 읽고 이야기를 꾸미며 초고를 쓰고 고친 지난 2년은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집필 공간을 마련해준 해남의 백련재와 이 난삽한 작업을 잘 마무리해 준 실천문학사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6 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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