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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26
  • 근접한 세계
    김연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은이), 최고은 (옮긴이) | 북다 | 2026년 3월 "김연수, 히라노 게이치로, 크로스"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의 두 거장이 소설에 대한 믿음으로 공명하는 '크로스' 시리즈의 첫 책이다. '윤리적 딜레마'라는 주제로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김연수와 <일식>의 히라노 게이치로가 참여했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의 화자인 기자는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된 인물 ‘손동하’를 인터뷰한다. 손동하의 어떤 선택은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고, 파산과 구속을 각오하고 폭로에 나선 손동하는 죽음을 종용하는 문자를 받고 있다. 이야기 바깥의 우리는 인터뷰 내용을 소설로 적은 기자의 눈으로만 이 사건을 파악하게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론을 경유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지적인 소설이다. 미즈마키 가스미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회고전을 앞두고 그의 아틀리에에서 존재해선 안 될 사진목록을 발견한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168쪽) 너무도 인간적인, 부도덕할 수 있는 후회를 하면서도 가스미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나아간다. 이 보고서를 받아든 우리에게 무엇을 용서할 수 없는지, 어떤 것을 캔슬해야 할지 질문이 남는다.

    김연수의 소설이 인용한 도덕경의 구문,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가 유독 마음을 파고드는 날이 있다. 인간은 춘추전국시대에도 무력했고 AI의 습격에도 대안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도 '짚으로 만든 개'인 존재들도 문학에서만큼은 '매 순간 어떤 인간이 될지 선택'(198쪽)할 수 있는 자유를 소설 속에서 누릴 수 있다. 삶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독자를 초대하는 시리즈. '크로스'와 독자의 크로스를 기대한다.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윌리엄 D. 하텅, 벤 프리먼 (지은이), 백우진 (옮긴이) | 부키 | 2026년 2월 "누가, 어떻게, 왜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가"

    미국이 이란을 공격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2월 27일 오후 3시 38분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로 명명한 대이란 군사작전 개시를 승인했고, 이튿날 이란 현지 시간 오전 9시 45분 공격이 시작됐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6)의 사망이 공식 확인되었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사일과 드론을 활용해 이스라엘과 중동 내 미군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단행했다. 새해 벽두부터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현직 대통령을 체포한 지 채 두 달이 지나기 전에 이루어진 이와 같은 군사작전은 분명 충격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이란,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분쟁과 무력 개입을 벌여왔다. 미국은 왜, 끝없이 분쟁과 무력 개입을 이어가는가.

    이 책은 이미 1조~1.5조 달러에 달하고 곧 2조 달러로 폭증할 미국 군산복합체의 규모, 작동 방식, 역사, 세력 구도와 영향력, 미래 전망까지 전모를 파헤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유세에서 전쟁을 끝내고 군산복합체를 청산할 것을 호언장담했지만, 당선 이후 2025년 4월 국방부 예산을 1조 달러(약 1,400조 원)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뒤이어 2025년 9월에는 '전쟁부'를 국방부 보조 명칭으로 사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2026년 1월에는 항공기 150대를 동원해 베네수엘라를 전격 침공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트럼프가 청산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미국 군산복합체가 실제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으며, 앞으로 더 큰 영향력과 정치권력을 누리기 위해 폭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국방 정책과 안보 전략이 수립되는 과정이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미국과 세계 각국의 권력, 자본, 비즈니스, 야망이 첨예하게 뒤얽힌 역학 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냉엄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

  • 스카이다이빙
    문경민 (지은이) | 문학동네 | 2026년 2월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윤아의 동생 민아는 자폐성 장애인이다. 윤아의 엄마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근무하던 사립학교 재단의 비리를 신고한 대가로 이사장 아들의 술수에 휘말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일 이후 아빠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 민아의 활동지원사마저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서, 윤아는 동생을 돌보는 동시에 이사장 아들과 맞서야 한다. 게다가 특수학교 설립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구청장 후보와 토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삶이라는 중력이 윤아를 유난히 세게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윤아는 되뇌인다.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이 책의 제목 <스카이다이빙>은 어쩔 수 없는 삶의 고단함이 무겁게 끌어당겨도 스카이다이빙처럼 즐길 수 있다는 작은 희망과 유머를 내포한다. 민아의 학교 친구들이 만든 장애 형제가 있는 비장애인 형제 모임의 이름 '구덩이'도 같은 맥락이다. 인생이 "구덩이에 빠진 상태로 시작 했지만, 구덩이 파고 씨앗도 심고 나무도 심을 수 있고 또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만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꿋꿋하게 나아가는 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실로 탄탄하고 빛이 나서 감탄할 수밖에 없다.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과 제14회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하며 청소년 독자들의 지지를 받아 온 문경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지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만의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를 희망한다.

  • 서랍 정리하는 날
    서선정 (지은이) | 봄볕 | 2026년 1월 "서랍 속에 담긴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

    이사를 앞두고 옷장 서랍을 열어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날. 네 살 때 아이가 좋아했던 반짝이 공주 원피스부터, 넘어져 생긴 무릎의 구멍 위에 할머니가 예쁜 천을 덧대준 멜빵바지, 봄빛을 머금은 꽃무늬 원피스, 한여름의 바다가 어른거리는 파랗고 하얀 줄무늬 티셔츠까지. “그때 조개껍데기 주우러 다니느라 까맣게 타는 줄도 몰랐잖아.” 엄마와 아이가 깔깔거리며 옷마다 스며 있는 가족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본다.

    쌀쌀한 날이면 포근한 구름처럼 아이를 감싸 깊은 잠을 재워준 잠옷, 할머니가 떠준 뜨개옷과 목도리에는 다정한 마음이 수놓여 있다. 고운 보자기 속에는 엄마와 아이의 배냇저고리가 소중히 싸여 있고, 서랍 속 할머니의 반짇고리와 실패, 단추들은 아이의 눈에 알록달록한 마법의 보물상자처럼 빛난다.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서 여러 차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서선정 작가가 “손수 지은 옷으로 내 어린 날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주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한다. 색연필로만 완성한 섬세한 일러스트가 켜켜이 쌓인 추억의 결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3.62026
  • 쓰는 만큼 내가 된다
    리니 (지은이) | 더퀘스트 | 2026년 3월 "내일의 나를 선명하게 할 오늘의 한 줄"

    <기록이라는 세계>로 많은 이들에게 기록 습관을 설파했던 리니가 이번에는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돌아왔다. 전작이 기록 습관의 중요성과 이를 잘 활용하는 법을 담은 ‘기록 가이드북’이었다면, 이번 책은 기록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감정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 한 줄이라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곰곰이, 차분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의 기록은 거창한 성찰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의 기분 하나, 문득 스친 불안 하나를 붙잡아 적어두는 일만으로도 마음은 제 자리를 찾는다. 그렇게 적힌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취향과 기준, 상처와 바람을 또렷이 드러내며 ‘지금의 나’를 증명한다. 기록은 기억을 남기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일깨운다. 쓰는 만큼 내가 된다는 말은 그래서 다짐이 아니라 다정한 약속에 가깝다. 오늘의 한 줄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건네는 책이다.

  • 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지은이), 김나연 (옮긴이) | 은행나무 | 2026년 3월 "부디 읽기를 멈추지 말아주길"

    '엡스타인 파일'이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는 큰 파장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빌 클린턴 등 미국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MS 창업자 빌 게이츠, 영국 앤드루 왕자 등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남성들이 제프리 엡스타인과 얽힌 가해자와 동조자로 지목되면서, 언론은 앞다투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엡스타인 파일에 언급되었는지 보도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엡스타인의 범죄를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기획 보도가 쏟아져 나왔음에도, 2019년 제프리 엡스타인 본인이 수감 중 사망했음에도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폭로와 진실 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연루된 공범과 동조자들 그 누구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피해자들과 그 연대자들은 강대한 영향력을 지닌 권력자들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엡스타인의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자 사건의 핵심 증인 버지니아 주프레의 회고록이다. 1부는 어머니의 방관 속에 친부와 그 친구에게 상습 성폭행을 당하던 유년기, 2부는 제프리 엡스타인의 연인이자 공범인 맥스웰의 눈에 띄어 엡스타인 소굴에 끌려 들어간 10대 후반기, 3부와 4부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가정을 꾸리고 세 자녀를 기르던 저자가 평화로운 생활을 뒤로하고 가해자들을 단죄하고자 범행을 폭로하고 법정 투쟁을 펼치는 과정을 담았다.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기 반년 전 세상을 떠난 저자는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내용은 꼭 세상에 전해져야 합니다. (중략) 이 비극적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이 정의와 인식 개선을 위해서 꼭 다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해자와 공모자의 사회적 유명세에 눈이 가려져 정작 눈여겨 보지 못했던 피해자의 이야기. 부디 읽기를 멈추지 말아주길.

  • 마나의 편지
    나이 (지은이) | 창비 | 2026년 2월 "제3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밝은 햇살이 기분 좋은 아침. 고래섬에 살고 있는 마나가 대문을 열자 복숭아 한 알이 데굴데굴 굴러온다. 따라가 보니 복숭아 나무 밑에 여섯 알의 복숭아가 떨어져 있다. 수북이 모자에 주워 담아 맛을 보려고 입을 크게 벌리는 찰나, 복숭아들이 덜덜 떨기 시작하고 한 복숭아는 눈물까지 흘린다. 자세히 보니 복숭아들이 참 귀엽다. "너는 깨숭아. 너희는 먹숭아와 털숭아. 옆 친구는 눈물이 많으니 울숭아. 너는 이 상황에서도 쿨쿨 잘 자는구나. 잠숭아로 하자. 조금 전의 일로 아직도 토라진 거야? 너는 아무래도 삐숭아가 어울리겠다."

    이름을 불러주자 숭아들의 머리에서 귀가 쫑긋 솟고,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손과 발이 쑥 나오고, 머리를 쓰다듬자 보들보들 머리카락이 자라난다. 아장아장 마나의 뒤를 따라 걸어오는 숭아들. 마나는 양말을 잘라 숭아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혀 주고 함께 살기로 한다. 거북섬까지 헤엄쳐 해초 주스를 마시며 쉬고, 구름을 조물조물 뭉쳐 탈것을 만들고, 얼음꽃 봉오리 안에 숨은 눈송이를 찾아내기도 하고, 마시멜로를 넣은 따뜻한 코코아를 나눠마시며 보내는 고래섬의 사계절. 서로를 꼭 안아 주고, 때로는 토라지고, 다시 웃으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 마나와 앙증맞은 숭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다정하고 포근해, 지켜보는 입가에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지게 된다.

  • [세트] 세종의 나라 1~2 세트 - 전2권 (양장)
    김진명 (지은이) | 이타북스 | 2026년 1월 "김진명의 조선 역사 스릴러"

    <직지>, <황태자비 납치사건> 김진명이 조선 초기의 문자혁명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바탕으로 '훈민정음'의 탄생 비화 너머를 소설의 힘을 빌려 상상해본다. '백성을 섬기지 않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는 신념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자신의 마음을 고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문자를 선사하고 싶은 세종의 결의와 그를 도운 이름 모를 이들의 분투가 궁궐의 경계와 국경을 넘나드는 일종의 스릴러 소설로 재탄생했다.

    세종의 밀명을 받아 죽은 스승의 흔적을 쫓는 금부도사 한석리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국과 사랑을 지키려 했던 여인 권숙현은 금서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명나라와 조선을 오가며 진실을 찾아 헤맨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인 흥미 장치를 더해 외세의 압력과 내부의 갈등을 뚫고 신념을 향해 나아간 인물들의 결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김진명다운 소설이다.

3.102026
  • 정답은 있다
    이정효 (지은이) | 다산북스 | 2026년 2월 "승부의 세계에서 찾은 삶의 해답"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 광주 FC를 거쳐 2026년 1월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신임 감독이 된 이정효의 일과 사람, 그리고 승부 철학을 담은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지난 2월 28일,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끈 그는 여세를 몰아 이번 시즌을 승리의 해로,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펼쳐 보이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려 한다. 여기, 그가 걸어온 발자취와 수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정답’이 담겨 있다.

    축구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경기장 위에서 벌어지는 단 한 번의 선택, 단 한 번의 교체 카드가 흐름을 뒤집듯, 그의 이야기는 매 순간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의 기록에 가깝기 때문이다. 승부의 긴장과 현장의 속도감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다. 그 치열한 과정은 결국 축구를 넘어 우리의 일과 삶을 닮아 있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끝내 답을 찾으려는 사람의 이야기,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축구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생생하게 읽히는 에세이다.

  • 만화의 원리
    오바 와타루, 모리 카오루, 이리에 아키 (지은이)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2월 "만화라는 예술"

    19세기 말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만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한 시선이 얽힌 분야다. 히피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급진과 혁명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가 유해매체의 대표로 오해받기도 했다. 만화를 읽는다고 하면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취미로 자리 잡혔다. 더불어 만화를 그리고 싶은 창작자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만화 분야의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하루타> 창간 편집장 오바 와타루, <신부 이야기>의 모리 카오루, <북북서로 구름과 함께 가라>의 이리에 아키가 만화를 애정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본격 안내서를 출간하였다. 웹툰이 보편화되면서 출판만화의 문법이 다소 희미해진 때에 컷 분할과 시선 유도의 원리, 말풍선과 대사의 원리 등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실제 연재 작품을 예로 들어 작가가 의도한 만큼 구현할 수 있는 테크닉을 설명해주고 있어 이해가 쉬우며 오래도록 만화를 읽어온 독자들에도 좀 더 풍부한 읽기의 재미를 선사한다.

    만화란 무릇 그리면서 즐겁고 읽으면서 즐거우면 된다는 모리 카오루의 문장은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즐겁고 행복한 창작과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이 책은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 나도 상처 받지 않고 친구도 상처 받지 않는 감정 표현 연습
    한혜원 (지은이), 보람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2월 "현직 상담 선생님이 알려 주는 마음 표현법"

    '좋은 일이 계속되면 그다음엔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왜 자꾸 OO를 나쁘게 말하지? 지금 OO의 편을 들면 이상할까?' '마음이 복잡해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마음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감정 표현 연습>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안내한다.

    각 장은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짧은 만화로 문을 연다. 이어 초등학교 전문 상담 교사인 저자의 명료하면서도 다정한 문체로 상황 속 감정을 설명하고, 감정어 풀이와 마음 상태 점검 코너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책에 담긴 사례와 조언은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 온 교사의 현장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것들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러 자꾸만 속으로 삼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런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 시간관리국
    캘리앤 브래들리 (지은이), 장성주 (옮긴이) | 비채 | 2026년 3월 "19세기 해군 장교와 21세기 공무원의 SF 활극"

    영국 국방부 언어 담당 부서 소속 공무원인 ‘나’는 소속 부서도, 직위도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하지만 현재 급여의 세 배를 보장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의 일자리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응급처치 자격증 시험과 취약계층 보호사 자격증 시험, 영국 내무부 인증 영주권 취득 시험에서 흠잡을 데 없는 성적을 거둔 ‘나’는 앞으로 지위가 높고 특수한 방식의 도움이 필요한 하나 또는 여러 명의 ‘난민’과 긴밀하게 일하게 되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합격이 확정된 이후 알게 된 사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국 정부가 시간 여행 장치를 발견했으며, 과거 인간을 현대로 데려오는 극비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라는 것. ‘나’는 시간 여행 난민(공식 명칭 ‘이주자’)을 밀착 감시하고 교육하는 ‘가교Bridge’ 직위를 부여받고, 1845년 빅토리아 시대에서 온 해군 장교 ‘그레이엄 고어’와 일 년간의 합숙 생활에 돌입한다. 현대식 가전제품에 경악하고, 여성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보수적인 신사 고어 대위. 하지만 뭔가 이 남자…신경 쓰인다!

    캄보디아계 영국인 작가 캘리앤 브래들리가 SF와 블랙코미디, 로맨스, 스파이 스릴러를 망라하며 그려낸 대활극. 휴고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6부작 드라마로 영상화 진행 중이다. 시간 여행자의 좌충우돌 현대 적응기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을 잇달아 만나며 분위기의 대반전을 맞이한다. 관리국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의심의 화살은 내부를 향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의 정체에 얽힌 반전과 시간 여행에 숨겨진 정부의 음모가 드러나며 소설은 마지막까지 읽는 이를 압도한다.

3.132026
  • 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은이), 김명남 (옮긴이) | 열린책들 | 2026년 2월 "소유에 대한 고찰"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끝물에서 '소유'라는 개념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점점 더 큰 블랙홀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이토록 각 개인이 가진 것에 집착한 시대가 있었나? 내가 가진 것, 조금만 더 행운이 따르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런 것들에 대해 스스로 천박하다고 느끼는 욕심을 내려놓으려 애쓰다가도 이러다가 정말로 모든 기회를 놓치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별안간 불안이 몰려온다.

    사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계급과 소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주체로서 '백인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은 다소 리스크가 있다. 안온한 둔덕 위에서 외치는 위기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 가득한, 아니꼬운 시선을 먼저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라 비스는 안전한 주제로 도피하는 대신 솔직함을 장착한 채 이 주제에 정면으로 마주하길 선택한다. 그는 자신의 계급과 특권을 예민하게 인지한 상태로 소유, 계급, 일, 경제·사회적 시스템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소유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숙고해 볼 지점이 많음을 깨닫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상태와 경험 또한 무시로 겹쳐 생각해 보게 된다. 이론이나 개념으로 설명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는 주제들을 그의 일상 속 고찰로 풀어내니 더 선명히 와닿는 부분이 있다. 한 편 한 편 짧은 에세이들을 따라가며 휙휙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소유라는 이 시대의 문제에 깊숙이 들어와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다.

  • 잠과 영혼
    그렉 이건 (지은이), 김상훈 (옮긴이) | 허블 | 2026년 3월 SF 거장 그렉 이건 최신 중단편 선집

    잠을 자는 것을 영혼의 부재로 간주하는 기묘한 기독교 교리가 뿌리 박힌 19세기 미국 평행세계. 기독교인들은 잠을 자지 않으며, 잠을 자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비인간으로 취급하고 그들을 노예로 부린다. 철도 노동자 제시는 업무 중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지고, 가족들은 교리에 따라 그가 죽었다고 믿고 그를 매장한다. 며칠 뒤 관 속에서 눈을 뜬 제시는 천신만고 끝에 무덤을 뚫고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그를 악마가 깃든 괴물로 취급하는 부모와 고향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제시는 마을을 떠나 이름을 바꾸고 뉴욕으로 옮겨 새 일자리를 얻지만, 그가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악마가 빙의한 움직이는 시체’에 대한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집단 린치를 피해 몸을 숨긴다. 이후 제시는 의사이자 의식을 잃는 것이 영혼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전국 순회강연을 다니는 한편, 그 자신도 의식이 단절된 이전과 이후의 자신이 서로 동일한 존재인지에 대해 고뇌에 빠지게 되는데…

    현대 하드 SF의 거장 그렉 이건이 21세기에 발표한 작품 중 스스로 “특히 애착을 느낀다”고 밝힌 주요작과 2020년대에 발표한 최신작을 수록한 특별 선집. 전작 <내가 행복한 이유>, <대여금고>를 비롯하여 그가 20세기에 발표한 중단편들이 인간의 뇌 내부로 파고들어 ‘나’의 정체성을 파헤쳤다면, <잠과 영혼>을 비롯한 최근 중단편들은 우주라는 거대한 물리 세계로 도약하여 ‘나’의 존재를 확장한다.?과학적 엄밀함과 문학적 서사가 결합된 21세기 그렉 이건의 결정판. 이번 작품에는 특별히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여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말’도 포함하였다.

  • 너를 기다릴 시간에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질리언 투레키 (지은이), 조경실 (옮긴이) | 부키 | 2026년 3월 "관계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연인과의 다툼 끝에 습관적으로 "미안해"라는 말을 내뱉는다. 돌아오는 것은 "뭐가 미안한데?"라는 서늘한 질문이다. 당혹감에 침묵하게 되는 이유는 그 사과가 잘못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오로지 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 상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비굴한 항복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다 "나 요즘 좀 힘들어"라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돌아오는 건 공감 대신 "나는 더 힘들어"라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꺼내는 일 자체가 눈치 없는 짓처럼 느껴져,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된다. 관계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준 채 '나'를 지우고 상대에게만 맞추려 애쓰는 태도는 결국 독이 된다. 갈등이 두려워 나를 먼저 깎아내거나, 감정을 삼키는 것이 배려라 믿는 방식의 사랑은 상대를 만족시키지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도 못한 채 서로를 지치게 할 뿐이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모해 온 이들에게 이제 그만 '나'를 중심에 두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우리가 반복하는 잘못된 관계의 패턴이 결국 내면의 결핍과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단언한다. 상대를 바꾸거나 그를 설득해 사랑을 얻어내려 노력하기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자신을 돌보는 편이 관계를 회복하는 데 훨씬 빠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다. 늘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욕구는 뒷전이었던 사람들, 특히 사랑 앞에서 늘 자신을 마지막 순서에 두었던 이들에게 이 책은 스스로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해방감을 선사할 것이다.

  • 빨간 돌을 찾아 줘
    최지안 (지은이), 차야다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2월 "빨간 돌은 하나, 주인이 셋. 대체 누구의 돌?"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동화 읽기의 즐거움을 확실하게 알린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제1회 대상작 <해든 분식>, 제2회 대상작 <친절한 땅콩 호텔>에 이어 귀여운 괴물이 등장하는 유쾌한 동화 <빨간 돌을 찾아 줘>가 출간되었다. 대상작답게 저학년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와 서사로 단숨에 사로잡는다.

    놀이를 사랑하는 석구와 동오는 누군가 버린 아이스크림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두 아이는 놀이터 땅을 파다 우연히 빨간 돌을 발견한다. 석구가 그 돌을 챙겨 귀가하자, 잠시 후 정체 모를 괴물 셋이 불쑥 찾아온다. 문제는 돌은 하나인데, 모두가 자신의 돌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석구와 동오는 거짓말을 하는 괴물을 가려내기 위해 책에서 지혜를 얻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진짜 주인을 찾아 나선다.

    한때는 어디서나 놀이터와 그곳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놀이터는커녕 뛰노는 아이들을 발견하기조차 쉽지 않다. 막대기 하나, 돌 하나만으로도 즐겁게 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놀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건강한 놀이에 흠뻑 빠진 석구와 동오를 따라가며 돌의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여정에 함께하는 일은 설레고도 유쾌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다리는 반전은 뭉클한 순간까지 선사한다. 끝까지 읽어야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