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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022
  • 지리의 힘 2
    팀 마샬 (지은이), 김미선 (옮긴이) | 사이 | 2022년 4월 "<지리의 힘> 7년 만의 후속편"

    국제 관계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지리다. 지리를 통해 세계를 분석한 <지리의 힘>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팀 마샬이 7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왔다.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을 다루었던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그리스 등의 국가와 우주까지 다룬다. 여전한 지정학적 분쟁들에 더해, 미국-소련의 양강 구도가 무너진 이후 다극화 시대에서 소용돌이치는 힘의 균형 또한 지리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 보더라도, 지리는 여전히 세계를 요동치게 한다. 국제 관계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핵심적 통찰을 얻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 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은이) | 민음사 | 2022년 3월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하는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있던 '그것'이 내게 나는 너의 유령이라고 말할 때(<유령의 마음으로>), 인간을 해파리로 만들어버리는 변종 해파리가 해안가에 나타났다는 뉴스를 볼 때(<빛이 나지 않아요>), 퇴근 후, 내 방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나무가 되어 뿌리내린 걸 발견했을 때(<여름은 물빛처럼>).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나의 유령과 내가 한 빵집에서 일하고 있어 의자가 세 개 필요하다는 '나'의 말을 듣고 빵집 손님 김지원은 '반은 언니를 믿는데, 반은 언니가 미쳤다고 생각해'(23쪽)라고 대답하고, 나는 그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마음. "실망이 쌓이면 분노가 되고, 분노는 결국 체념이 되니까.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24쪽) 사람들의 마음을 첫 소설집을 엮은 소설가 임선우는 알고 있는 듯하다. 때론 괴로울 정도로 쑥스러워하는 사람들, 제일 자신있는 게 버티는 일인 사람들, 바닥에 꽂힌 빨대에 찔린 발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면 차라리 원죄를 믿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들. 믿지 않아도 믿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빛이 나지 않아요> 속 문장, "지선 씨는 미련을 버리는 대신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68쪽)를 읽으며 나는 임선우의 소설을 사랑하기를 선택했다. 장난 칠 기력도 없는 금요일 오후의 만우절, 나보다 정확하게 내 마음을 아는 유령이 나타나 내 대신 울어준다면, 어쩌면 이 환상을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 루호
    채은하 (지은이),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

    조선시대엔 호랑이가 정말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았냐하면 조직적으로 호랑이를 몰아내기 위해 군대를 개설했고 가죽에 비싼 값을 매겨 많은 농민들이 호랑이 도살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사회적 노력과 일제강점기의 호랑이 소탕 작전 후 한반도에선 호랑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인들은 호랑이를 사랑하고 호랑이를 보고 싶어 한다. 이 동화는 '전부 사라진 줄 알았던 호랑이가 사실은 인간으로 변신해 우리와 살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불가피하게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살게 된 호랑이와 그들을 쫓는 현대판 호랑이 사냥꾼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대상작인 <루호>는 호랑이, 토끼, 까치와 같은 동물들과 어른과 어린이의 묘한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의 선택이 만든 세계에 단단하게 발 딛는 법을 알려준다. 더불어 이질적인 존재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 롤랑의 노래
    김준한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22년 4월 "국내 최초의 중세 프랑스어 원전 완역본"

    최초의 프랑스어 문학, <롤랑의 노래>가 드디어 원전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중세 유럽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번역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그간 한국 독자들에게 일역본과 현대 프랑스어판으로만 소개되어왔다.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이 책은 <롤랑의 노래>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김준한 교수가 옥스퍼드 필사본을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인 것으로, 문헌학적, 언어학적 의의를 가진다. 원전 완역본의 출간을 고대해온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알라딘 북펀드 목표금액을 1069% 달성하며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4.52022
  • 오리 부리 이야기
    황선애 (지은이),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오리 부리는 "물에 빠지면 부리만 둥둥 뜨겠구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잠자는 시간을 빼놓곤 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몸에서 부리만 따로 분리되어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오리 부리가 되었을까. 이야기를 몹시 좋아하는 오리 부리의 큰 문제점은 거짓 소문도 여기저기 떠벌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게 숲속 마을 친구들을 포함해 들쥐, 겁쟁이 사냥꾼, 앞치마 요리사까지 여럿이다. 확실하지 않은 말을 퍼트리면서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재미를 위해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추측이 와전이 되어 기정사실이 되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소문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문과 진실이란 무거운 주제를 어린이 독자 시선에 맞춘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 10배의 법칙
    그랜트 카돈 (지은이), 최은아 (옮긴이) | 부키 | 2022년 3월 "‘보통’은 실패 공식이다!"

    우리는 엄청난 행동력을 타고났다. 아이들을 보라. 그들은 한시도 가만있지를 않는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가면서, 우리는 보통의 행동이 만들어 내는 보통의 삶에 익숙해진다. 물론 그런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 실제 열에 아홉, 이른바 중산층들은 그것이 '정상적인 삶'이라 여기며 좀처럼 추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이 늘 평탄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상황이 변하고 삶에 굴곡이 생길 때 그들은 너무 쉽게 위기에 처한다. 충분한 잠재력을 미리 끌어내지 못한 결과다. 그래서 저자는 보통 수준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 모두 현재의 수준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창의력을 지니고 있지 않냐고.

    우리는 탁월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 그 시작은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흔히들 목표가 크면 부담도 함께 커져서 포기하기 쉽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당한 목표는 적당한 성과를 낳을 뿐이다. 목표가 낮을수록 성취율도 낮다. 그저 평범할 뿐이라고 광고하는 제품을 누가 사려 하겠는가? 그것이 제품이 아니라 목표라면, 누가 악착같이 성취하려 하겠는가? 저자는 말한다. 성공은 앞선 모든 행동들의 결과라고. 10배 더 큰 목표를 향해 10배 더 많은 행동에 나선다면 '보통' 수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10배 넘는 값에 팔리던 이 책의 재출간이 반갑다. 10배 아니 그 이상의 독자들이 책의 강한 에너지를 받기를 기대해 본다.

  •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지은이), 김두완 (옮긴이) | 흐름출판 | 2022년 3월 "중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다음 중 당신이 중독된 대상을 고르시오. 술, sns, 담배, 인터넷 쇼핑, 디저트, 커피, 매운 음식, 일, 게임, 과자. 이 모두를 피해 갔다면,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항목들마다 덜컹덜컹 걸린 이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중독에 관한 책과 이 책들을 찾는 독자가 많아지고 있는 현상은 무시할 수 없는 시그널이니까.

    늘어나고 있는 중독에 관한 책들 중 이 책의 눈에 띄는 지점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우리 모두가 중독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세상을 더, 더 풍족하게 변화시켜온 인류는 현재 도파민 중독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중독 치료 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로맨스 소설 중독을 포함한 여러 환자들의 중독 사례를 소개하며, 뇌와 도파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중독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중독 탈출의 핵심 키는 고통과 쾌락의 적절한 활용에 있다. 고통과 쾌락은 인간의 뇌 속 같은 부위에서 처리된다. 이 책에 따르면, 너무 많은 쾌락에 노출되어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 이는 건강한 고통에 노출되어야 한다. 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을 찾아야 한다니, 의아해 보이지만 책은 과학을 바탕으로 명료한 설득을 해낸다. (스스로의 중독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쾌락을 위해 습관적으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줄 수도 있을 책이다.

  • 나보코프 단편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김윤하 (옮긴이) | 문학동네 | 2022년 3월 "나보코프 공식 완전판 단편 전집"

    러시아에서 태어난 나보코프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붕괴되자 서유럽으로 망명했고 영국, 독일,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이 시기는 작가 나보코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도 망명의 시기였다. 러시아어에서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에 정착했고, 시에서 희곡을 거쳐 소설에 정착했다. 러시아를 떠나 탄생한 68편의 단편은 나보코프가 여러 겹의 경계를 넘어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탐구해온 여정이다.

    <롤리타>의 성공 이후, 미국에서 나보코프는 그동안 쓴 단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꿈과 함께 대장정을 시작했다. 주제와 시대 등을 고려한 기준을 정해 직접 작품을 골라 배열했으며, 영어로 소개된 적 없는 소설은 아들 드미트리와 함께 번역하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부인 베라와 드미트리가 작업을 이어나갔고, 신문 등에 발표되었으나 격동의 시대 속에서 원고와 매체가 유실되었던 작품들까지 샅샅이 찾아냈다. 그렇게 68편의 단편을 총망라하여 ‘완전판 단편전집’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드미트리가 책을 편집하며 쓴 서문과, 각 단편마다 나보코프 본인과 드미트리가 붙인 주석이 함께 실려 있어 깊은 독서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

4.82022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 (지은이) | 문학동네 | 2022년 4월 "소설을 읽고 "오래오래 행복하다""

    2022년 봄, 젊은작가상이 올해의 수상자를 호명한다.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라는 이름.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가 대상을 수상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은 노동인 '초파리 돌보기'를 기억하는 이원영과 소설을 쓰는 딸 지유. 퇴사 후 원영이 겪는 건강 이상이 초파리 실험동에서 생긴 일 때문이리라 지유는 추측하지만, 원영은 그 추측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유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어둔다.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38쪽, <초파리 기르기>)

    팬데믹이라는 단절과 공포가 길게 이어진 나날, 그 이후의 빛을 젊은 소설들은 바라본다. '오래오래 행복하다"고 적은 임솔아처럼, <공원에서>의 김지연은 "나는 사는 게 좋았다."(173쪽, <공원에서>)고 적는다. 내가 겪은 모욕들은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강렬한 살의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이 강렬함은 곧 활력과 온기로 치환되기도 한다. '아주 사랑스러운, 개답고, 개 같은'(174쪽) 것. 삶이 이런 것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회복을 상상하는 일곱 편의 이야기. "여자와 여자가 맺는 관계가 감히 질서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먹고 소화하고 잠자고 깨어나 일하는"(83쪽) 김멜라의 소설을, "작지만 단단한 아이의 손이 먼저 미애의 손을 힘껏 움켜쥐"(219쪽)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하는 김혜진의 소설을, "인간에게 닭의 목소리가 부여될 수 있기를 바람"(290쪽)을 적는 서이제의 소설을 읽는다. 읽으며 생각한다. 이 소설들이 있어, 역시 "오래오래 행복하다."

  • 아무튼, 피아노
    김겨울 (지은이) | 제철소 | 2022년 3월 "김겨울의 언어로 펼쳐지는 피아노라는 세계"

    제법 단단한 독자층을 확보한 산문 시리즈 '아무튼'이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시리즈의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 마흔여덟 번째로 만나볼 작가는 김겨울이다. 그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물었고, 작가는 '피아노'라 답했다. 이 책은 피아노 단 한 가지에 관해 김겨울의 언어로 펼쳐지는 작은 세계의 기록이다.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하면 나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세계가 형성된다. 그 세계 안에서만큼은 모든 감각을 열 수 있고,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김겨울 작가는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고 고백하며, 처음 피아노를 접했던 어린 시절 이래로 피아노와 함께 울고 웃었던 날들, 피아노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삶의 경험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의 경험이 있다면,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 피아노의 세계, 김겨울의 언어로 그려지는 특별한 세계에 깊이 스며들게 될 것이다.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지은이) | 수오서재 | 2022년 4월 "손을 내밀어 보라 다친 새를 초대하듯이"

    "자신에게 / 상처에게" (10쪽, <초대>) 류시화가 10년 만에 발표한 시집은 이런 권유로 시작한다. "손을 내밀어 보라" 긴 겨울을 버티고 겨우 봄꽃을 만난 자기 자신에게 내미는 손.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14쪽,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지나 다시 봉오리를 여는 하나의 우주, 한 그루의 꽃나무들을 류시화가 축원한다.

    "존재가 깊이 상처 입어 / 날개가 부러지거나 / 심장에 금이 갈 때"(44쪽, <떨림>) 한 우주는 자신이 우주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고 류시화는 말한다. "금 간 곳 꿰매며 / 다시 삶에 놀라워하며" (같은 시) 긴 겨울 지나 맞은 새봄의 기운을 느껴본다. 우리는 두 번의 봄을 마스크와 함께 보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조심스러운 봄이 세 번째.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도 / 그 천 개의 조각마다에서 웃으라고"(56쪽, <달라이 라마와 노천 찻집을 열며>) 권하는 시인의 말과 함께 봄 기운을 깊이 들이마셔본다. "시대가 어떤 식으로 살벌하든 (...) 시를 읽으려는 인간 영혼의 경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니카와 슌타로가 추천했다.

  • 문해력 교과서 : 초등 국어 1~3학년 세트 - 전3권
    이도영, 이형래, 이천희, 전인숙, 권은주, 김희동, 박주현, 우철하, 이정우, 전준희 (지은이) | 창비교육 | 2022년 4월 "읽기 능력을 키우는 방법"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의 저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원격 수업은 3년 차에 접어들었으나 대면 수업의 질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뉴스에 따르면 금일을 금요일로 알거나 '고지식'이란 단어를 높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등 비교적 많이 쓰여지는 단어의 뜻도 알지 못해 교과서를 올바르게 읽지 못하고 시험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전체 글을 이해하는 기초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고의 확장도 한정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 교육 전문가 10인이 모여 <문해력 교과서>를 제작하였다. 학년에 맞추어 양질의 글을 읽도록 하고 생각거리를 주는 질문도 포함했다. 알짜배기 지문과 통찰력 있는 질문으로 문해력의 기초를 마련해 볼 좋은 기회이다.

4.122022
  •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우다영, 조예은, 문보영, 심너울, 박서련 (지은이) | 허블 | 2022년 4월 "도래할 세계, 초월의 시작"

    우다영, 조예은, 문보영, 심너울, 박서련이 초월을 시도한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등의 작품을 펴내며 한국의 젊은 세대가 사랑하는 이야기의 경계를 넓혀온 허블의 '초월'에 '젊은' 소설가가 합류했다. 김수영문학상,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그간 장르문학을 자주 발표하진 않았던 작가부터 디스토피아 좀비물로 큰 사랑을 받은 작가까지, 참여 작가 목록부터 '초월'적이다. 도래할 장편 소설의 프리퀄을 통해 기대감을 높이는 기획이 재미있다. '미래에만 존재했어야 할 세계가 시공을 초월에 현재에 도달한 것'(287쪽)이라는 편집자의 설명처럼, 시리즈의 시작부터 어쩐지 SF적이다.

    우다영의 소설 속 예지자는 '볼볼볼'게임을 반복하며 종말을 막으려 한다. 심너울의 소설 속 변이체는 "괴물들을 미워하고 혐오"(200쪽)하는 정상인들의 시선에 대항한다. 박서련의 소설 속 직장인 엄예란은 전우주투어 업무를 통해 만나게 된 외계인, 메란드가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4월에도 30도를 육박하는 날씨, 계절을 잘못 감지한 꽃이 한번에 피어나고 꿀벌이 사라지는 2022년의 우리에겐 낯설 수가 없는 이야기들이다. 공감하고 전율하며 젊은 상상들로 채운 전채요리를 맛본다. 김희선, 전하영, 강화길, 천선란 등의 작가도 '초월'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만월이 될 이야기의 만개를 기대해본다.

  • 읽기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지은이), 안준범 (옮긴이) | 리시올 | 2022년 4월 "아마도 세계를 구할 읽기"

    오늘날의 '읽기'는 사회적 성공으로 향하는 자기계발의 도구로 인식되지만(그마저도 큰 쓸모로 치부되진 않지만) 본격적 읽기는 사실상 지배층의 관점에서 불온한 일이 맞을 것이다. 스피박은 문학 읽기를 "정신의 습속을 바꾸"는 시도를 통해 사회 정의를 향한 의지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비장한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그가 보는 읽기의 쓸모는 사회 정의의 세부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런 준비 없이 지속되고 확산되는 정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그가 이 책에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서머타임> 등을 읽는 방식은 문학 텍스트 내를 산책하는 쪽보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들여다보고 집어내어 살펴보고 씹어보는 쪽에 가깝다. 스피박은 텍스트의 내밀한 지점까지 걸어 들어가 작품이 질문하고 욕망하는 것을 따라가길 권한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았을 때 그는 우리가 "텍스트에 담긴 최상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그 자신의 저작인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 비판> 과 <잘못을 바로잡기> 의 한계와 오해된 부분을 밝히며 다시, 정확히 읽히기를 요청한다.

    이 책은 스피박이 진행한 강연을 갈무리한 것이다. 다루는 텍스트, 스피박의 개념 등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이 책 또한 수월하게 읽히진 않지만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그의 관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는 확실히 도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읽기와 교육에 대한 그의 분명한 태도는 무저갱으로 향하는 현 세계의 정치 앞에서 굳이 곱씹어 봐야 할 가치다.

  • 파이어 FIRE
    강환국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2년 4월 "할 수 있다! 조기 은퇴"

    이제는 '파이어'라는 신조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뒤 당당히 조기 은퇴를 선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모두가 재테크에 열심인 요즘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사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꼭 그렇게 거창한 뜻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늘 막연하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렇게 조기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특별함이 있었기에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결론은 그들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며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 퀀트 투자 전도사로서 KOTRA를 그만두고 파이어족이 된 저자 강환국을 포함한 스무 명의 이야기는 아직 한국에 자수성가 부자가 많으며, 그들은 덜 쓰고, 더 벌고, 남는 돈을 잘 투자하여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거나 엄청난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
    로르 도트리슈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 프란츠 | 2022년 3월 "연주는 이미 항거의 시작이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인 기데온 클레인은 열아홉 살이던 1941년 12월 테레진 게토에 수용되었다. 아우슈비츠로 향하기 직전, 비교적 양호한 수용소를 연출하기 위해 '선전 진열장' 역할을 한 그곳에서 클레인은 고물 피아노 한 대를 수리해 연주를 했다. 관객의 일부가 아우슈비츠로 실려가고나면, 청중의 얼굴은 매주 바뀌었다. "정신적 양식을 취하는 그 두어 시간 동안, 수용자들은 굶주림과 비참을 잊을 수 있었다. 클레인에게 연주는 이미 체제에 대한 항거의 시작이었다."(234쪽) "파괴에 온통 둘러싸인 와중에도 인간으로 남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237쪽) 그는 작곡을 했다. 클레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은 살아남아 연주된다. "언젠가는 역사가 작품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그는 아마 알았으리라."(243쪽)라는 문장으로 저자 로르 도트리슈는 기데온 클레인을 기억한다.

    특색있는 출판사 프란츠에서 역사와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산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베토벤에게 헌정한 악보를 찢어버린 베토벤. 프리메이슨의 광휘를 묘사하기 위해 마술피리를 작곡한 모차르트의 이야기부터 언제든 스탈린에게 체포될 수 있기에 옷을 차려 입고 잠드는 버릇이 생긴 쇼스타코비치와 9.11 테러의 공포를 추모하기 위한 곡에 뉴욕의 평온한 날의 소음을 삽입한 존 애덤스의 이야기까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각 꼭지를 읽고 나면 듣는 귀가 깊어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이야기를 읽은 후 조수미가 우리말로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 https://www.youtube.com/watch?v=vQ3-tb7z0jw ) 들었다. 낙관이 필요한 시대, 음악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면서.

4.152022
  •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지은이), 장성주 (옮긴이) | 비채 | 2022년 4월 "옥타비아 버틀러,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미래"

    극심한 기후 변화와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미국. 이방인의 이주를 막기 위해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선 차별과 혐오가 들끓고 있다. 장벽 안의 사람들은 그저 모든 것에 안주한 채 각자의 생존을 위해 분투할 뿐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초공감증후군’을 앓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 로런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 세상은 크게 병들어 있다. 로런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장벽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다.

    충격적인 점은 이 소설이 1993년에 발표되었고, 소설의 시점이 2024년이라는 것이다. 30년 전에 상상된 디스토피아가 현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책이 속한 ‘우화’ 시리즈의 두번째 책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에는 극우주의 성향의 대통령이 등장하며 소수자 탄압이 더욱 심해진 2030년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근미래'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통의 시대를 감지했던 작가는 로런이 앓고 있는 초공감증후군을 해답으로 건네는 걸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감각, '공감'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준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꽤 많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거야. 세상은 늘 변하고 있어. 지금은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쉬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크게 성큼 뛰어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뿐이야.(99쪽)”

  • 만남이라는 모험
    샤를 페팽 (지은이), 한수민 (옮긴이)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만남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유례없는 단절을 겪는 2년 동안 우리 속은 얼마나 탁해졌을까. 나는 올해 들어 일로 만난 사람과 꽤 긴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다기보단 이상하리만치 개운해서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이 만남이 2020년 코로나 창궐 이후로 처음 가진 낯선 타인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만남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생각은 같은 곳을 맴돌다 오염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내가 나인 채로 고여서 상하지 않게 하는, 타인과의 만남이라는 마법에 대해 말한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 삶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핀다. 그리고 여러 예술가의 작품들이 어떤 만남을 통해 탄생한 것인지 그 흥미진진한 관계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저자가 이러한 진정한 만남을 보는 관점엔 일종의 신성함까지 배어있다. 타인에 대한 시니컬한 무관심이 익숙해져가는 시대에 저자의 진지한 태도는 잊고 살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기에 적절하다. 마침 날 좋은 봄날,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미지의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은이), 노진선 (옮긴이) | 푸른숲 | 2022년 4월 "고전 추리소설 팬들을 위한 오마주"

    보스턴의 추리소설 전문 서점에 FBI 요원이 들이닥친다. 당황한 서점 주인 맬컴 커쇼에게 요원은 질문을 던진다. "몇 년 전 당신이 이 서점 블로그에 썼던 리스트, 기억하세요?" 그 포스팅에서 커쇼는 지금까지 출간된 추리·스릴러 소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실패할 확률이 없는 "완벽한 살인"이 나오는 여덟 편의 소설을 소개했다. 서점의 전문성을 홍보하기 위해 유명한 고전과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골고루 안배하느라 꽤나 신경썼던 글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리스트 속 작품들을 모방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8편의 소설은 다음과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 A.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존 D. 맥도널드의 <익사자>. 소설을 지능적으로 응용하는 범인의 마수는 서점 단골 손님 뿐 아니라 커쇼의 주변인에게까지 뻗치고 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감행하는 것일까. 커쇼는 살인자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전설적인 작품들을 다시 펼쳐놓고 생사를 건 추리를 시작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악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가, 피터 스완슨이 보내는 고전 추리소설 팬들을 위한 오마주.

  • [세트]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하늘 + 바람 세트 - 전2권
    김억, 김창술, 김소월, 권환, 박세영, 한용운, 정지용, 안막, 김영랑, 임화, 백석, 이용악, 오장환, 김상용, 김광균, 유치환, 김기림, 박목월, 조지훈, 박남수, 이육사, 박두진, 윤동주 (지은이), 이남호 (엮은이) | 열린책들 | 2022년 3월 "다가올 100년을 기대하며 읽다"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가 2023년 출간 100년을 맞이한다. 한국시사 100년의 성취를 기념하고, 다가올 100년을 기대하며 한국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이 출간되었다. 파랗고 푸르른 색상이 책등을 장식한 '하늘' 세트에는 김소월, 백석, 한용운 시집 등이 실려 함께 실린 시의 푸름을 짐작케하고, 노랗고 붉은 색상이 책등을 장식한 '바람' 세트에는 윤동주, 이육사, 임화 등의 시가 묶여 이 시들의 뜨거움을 짐작케 한다. 10권의 시집이 실린 각 세트가 38,000원, 권당 3,8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시의 정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시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을 읽으며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를 맡으며 조는 평화로운 밤을, 임화의 <옛 책>을 읽으며 '패퇴의 매운 바람결이 내 마음의 엷은 피부를 찢'는 날카로움을 느낀다. 날로 푸르러지는 계절에 맞게 청록집을 손에 쥐고 '구름에 달 가듯이' 시와 함께 한 계절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언제고 이 책들을 펼치면 시심(詩心)의 거울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는 말로 시인 오은이 추천했다.

4.192022
  • 도시가스
    이수명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그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의 사람도 아니고"

    시집 <물류창고> 이후 4년이 흘렀다. 이수명의 여덟 번째 시집과 첫 산문집이 2022년 봄 동시에 출간되었다. 산문집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시선도 존재하지 않고, 나의 관념도 존재하지 않고..." (42쪽, <나는 칠성슈퍼를 보았다) 2018년 출간된 시론집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감추어진 것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감추어진 어떤 것을 찾는 것이 우리의 관념이다..." (41쪽, <표면의 시학>) 물류창고라는 동명의 시 열편이 수록되었던 2018년작 <물류창고>처럼, 2022년 출간된 <도시가스>에는 일련번호 없이 수록된 여섯 편의 <도시가스>가 있다. 시는 각각의 도시가스를 구분하지 않고 흐른다. '부드럽고 / 온화하고 / 은은하게 / 순조롭게' 우리에게 흘러들어오고 있는 가스처럼.

    2022년 시집 <도시가스>에 수록된 <물류창고>에서 그는 '창고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28쪽) 또 그는 <물류창고>에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늘 꽂혀 있기만' 한 것을 보고 '한 권을 꺼내 한 부분을 늘 읽'는다. (35쪽) 아무의 사람도 아닌 우리가 특정되지 않는 공간의 구획 사이를 '그냥 담당자처럼 걸어 다'닌다.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이게 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이수명다운 감각의 연쇄가 스스로가 놓인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 가라오케 가자!
    와야마 야마 (지은이), 현승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22년 4월 "와야마 야마 유니버스의 시작!"

    <빠졌어, 너에게>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 와야마 야마는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속을 잘 모르겠는, 그러나 어쩐지 매력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빠졌어, 너에게>는 국내 독자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았고, 두 번째 만화 <여학교의 별 1> 또한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펼치는 진지하고도 엉뚱한 케미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이번에 출간된 <가라오케 가자!>는 순서 상으로는 국내 세 번째 소개되는 와야마 야마의 책이지만 실제로는 이전 만화들보다 먼저 선보인, 작가의 초기 작품이다.

    조직의 두목이 여는 공포의 노래 대회 때문에 합창부 부장 사토미를 찾아간 야쿠자 쿄지. 변성기 슬럼프에 빠진 사토미와 매일 '가라오케 가자!'를 외치며 사토미의 특훈을 받는 쿄지. 두 사람의 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묘하게 흘러간다. 이미 장르가 된 작가, 와야마 야마가 그리는 매력적인 캐릭터 속으로 다시 한번 빠질 차례다!

  • 인종, 국민, 계급
    에티엔 발리바르,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은이), 김상운 (옮긴이) | 두번째테제 | 2022년 4월 "30주년 기념판, 한국어 첫 완역"

    1988년에 처음 출간되어 지금껏 유효하게 논의되고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고전적 저작이 한국어로 처음 완역되었다. 이 책은 2018년 출간 30주년 기념 판본을 옮긴 것이다. 책의 서두에는 30주년을 기념하며 진행한 저자 대담이 실렸는데, 이 책이 출간된 배경과 책의 의의와 한계 등을 직접 밝힌다.

    발리바르와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와 시장 논리가 널리 퍼질수록 왜 민족주의, 인종주의와 같은 공동체적 정체성이 더 창출되는가, 왜 이 같은 공동체적 정체성에 의한 갈등을 강화시키는가에 대한 의문을 중심에 두고 국민, 인종, 민족 등의 개념들을 주제별로 다루면서 현실을 분석한다. 두 저자는 어떤 지점에서는 공통점을, 또 다른 지점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개념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저자들이 책의 제안을 이어 받아 논의해 주길 요청한 만큼, 독자들은 매 장마다 새롭게 사유의 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더 나은 나를 위한 하루 감각 사용법
    러셀 존스 (지은이), 김동규 (옮긴이)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4월 "상황별 맞춤 감각환경 조성법"

    레몬은 빠른가 느린가? 빨간색과 노란색 중 어느 쪽이 무거운가? 바위는 단맛인가 신맛인가? 이 추상적인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답을 내놓는다. 이는 우리 인간이 가진 교차 감각의 세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공감각적이라는 소리다. 감각 과학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는 여러 가지 교차 감각이 우리의 행동과 지각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색상, 빛, 소리, 냄새 등을 조합한 '감각 처방'의 개념을 소개한다. 책은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 순으로, 우리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공감각적 경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높은 천장이 창의적인 작업에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두운 조명에 65데시벨의 배경 소음과 점토 장난감 냄새가 있으면 좋고 책상은 어지러운 편이 낫다. 벽이나 노트가 파란색이면 더 좋다. 역으로 정확성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는 빨간색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낸다. 퇴근 전 시간이 영 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느린 단조 음악, 라벤더향, 파란색 물건의 도움을 받자. 퇴근 후에는 그 반대다. 빠른 음악, 무취,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저녁 시간을 만끽하기에 좋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4.222022
  • 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북스피어 | 2022년 4월 "한 권의 책,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에 보이는 무수한 이름들. 책에도 그런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판권면에 기재되지 않지만 책의 탄생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위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일어나 새삼스레 책꽂이의 책들을 어루만져 본다. 책 읽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서점 MD라는 직업까지 흘러왔다. 그 마음 하나로 버티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내면의 소중한 무언가가 매일 사포로 갈려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한다. 좋은 책을 만나 순수한 희열을 느끼면 모든 슬픔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기도 한다.

    책을 만들고 책을 판매하는,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은 언제나 지친 마음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울고 웃으며 읽은 이 책에서도 큰 위로를 받았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져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그 여정 속에 있을까. 책의 뒤편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2019년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2021년 시카다상을 수상한 김혜순의 신작 시집. 이제니와 강성은과 황인찬과 백은선이 읽는 시인들의 시인, 그의 '시하는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1부를 가득 채운 것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사적 체험에 관한 절절함이다.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
    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도 한다. (33쪽, <체세포복제배아>)

    2부와 3부, 한 개인의 소멸에 대한 개인의 체험이 확장되는 시의 시간이 이어진다. 이 시를 소개하는 4월 22일은 지구의 날. '지구어머니의 큰 얼음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모르는 나도 이 시를 읽는다. "산호 때문에 울어보기는 처음이다. 엉엉엉 운다. 산호는 죽기 전에 병상의 엄마처럼 백화한다" (29쪽 <더러운 흼>)

    코로나19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겨울, 장례를 치르지 못해 5일장, 8일장을 해야 하는 이들의 가족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장례식장을 지켰다. "짐승들이 울부짖는다. 짐승들이 떤다. 짐승으로 죽는다." (95쪽 <죽음의 고아>)

    김혜순의 시가 묘사하는 몸은 시하는 몸이었다. 이제 몸을 잃고 사막을 떠도는 시의 말들. '우리 부모의 벗은 몸이 모래나신으로 무너지는 곳'에서, 죽음이 스친 자리에서 이렇게 세계를 비탄한다. "죽지 마 죽지 마"(<눈물의 해변>, 242쪽)

  • 잊었던 용기
    휘리 (지은이) | 창비 | 2022년 4월 “이 편지를 읽고 나면 다시 반갑게 인사하자.”

    우리는 같은 반 친구였고, 학교가 끝나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을 보내고 어쩐지 어색해서 인사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한번 놓친 인사는 시간이 갈수록 더 하기 어려웠고, 친구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기다려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봄꽃이 환하게 필 때까지도.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잊었던 용기>는 휘리 작가가 유년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를 그림책으로 구성해 펴낸 책이다. 담백한 이야기가 겨울을 지나 봄, 꽃잎이 흐드러진 봄에서 다시 푸르른 여름, 그리고 풍요로운 가을 풍경의 투명한 수채화 그림 속에 펼쳐진다. 서먹해진 친구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한없이 평화로운 방과 후 놀이터, 편지를 기다리는 아이의 오후, 다시 친구가 되어 함께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어린 시절로 잠시 되돌아간다. 그리운 순간들을 만난다.

  • 가장 외로운 선택
    김현수, 이현정, 장숙랑, 이기연, 주지영, 박건우 (지은이) | 북하우스 | 2022년 4월 "청년들이 죽음을 택하는 사회"

    MZ 세대에 대한 별별 분석들이 쏟아지지만, 와중에 신기하리만치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심각한 자살률이다. 2020년, 20대 사망자 둘 중 하나는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청년층의 자살률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중인데 특히 여성 청년층에서 그 수치는 두드러진다. 2020년에 응급실을 찾은 20대 여성 자살 시도자는 2019년에 비해 33.5%나 증가했다.

    더 이상 개인적 해결책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이 책은 구체적인 경종을 울린다. 정신건강의학자, 인류학자, 보건학자, 사회복지학자, 상담사, 사회역학자, 여섯 명의 전문가가 청년 자살을 둘러싼 원인, 사회적 배경, 예방 대책 등 다방면의 현실을 살핀다. 여성 청년들의 주요 자살 배경에 여성 혐오적 사회 구조가 자리 잡고 있음을, 고용관계의 불안정성이 청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여러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낸다.

    늘어난 자살자 뒤엔 더 늘어난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삶을 겨우 버티거나 결국 버티지 못한 청년들로 가득한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이 문제는 더 긴급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4.262022
  • 아무튼, 노래
    이슬아 (지은이) | 위고 | 2022년 4월 "이슬아 작가의 노래를 사랑하는 방식"

    '노래방적 사람'이든 '비(非) 노래방적 사람'이든 노래방에 얽힌 추억 한 가지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술자리 후 의레 따라붙는 노래방 코스, 다수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순간을 웬만하면 피해온 내게도 노래방에 얽힌 좋은 기억 하나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친구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내가 먼저 권했다. 어린 친구는 그 세대에 맞는 각종 노래를 선곡하여 신나게 불렀고, 나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와 같은 노래를 몇 곡 소심하게 불렀다. 친구는 그 후로도 내 선곡에 대해 깔깔 웃고 놀려댔는데, 언제건 언니를 놀려먹는 그가,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것이 지금도 좋다.

    아무튼 시리즈 마흔아홉 번째의 주인공 이슬아 작가는, 노래방에서 화려한 열창으로 기량을 뽐내는 '노래방적 사람'은 아니지만, 삶의 순간마다 노래와 함께하는 '노래적 사람'이다. 작가의 열 번째 책이기도 한 <아무튼, 노래>에서 노래, 노래방과 살아온 삶의 추억을 불러낸다. 이전 작품들에서 반짝이며 등장한 할머니 향자, 엄마 복희, 아빠 웅, 동생 찬희, 친구 하마가 정겹게 등장하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 노래 이야기가 애틋하게 이어진다. 특히, 장례식장 2층에서 친구에게 불러준 윤복희 <여러분>, 친구와 바다에 둥둥 떠 있을 때 마음속으로 부른 요조의 <안식 없는 평안>, 서른한 살에 새로 사랑하게 된 이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들었던 조휴일의 <I Like Watching You Go>. 그 순간의 풍경과 감정이 마음에 각인되어 책장을 덮고도 오래 남는다. 듣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한다는 말, 부르면 부를수록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는 말. 이슬아 작가가 노래를 사랑하는 방식은, 노래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다.

  • 어떤 선택의 재검토
    말콤 글래드웰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김영사 | 2022년 4월 "말콤 글래드웰 신작! 올바른 선택에 대하여"

    글로벌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 출간됐다. 첫 역사 논픽션인 이번 책에서 그는 1945년 미군의 '도쿄 대공습'에서 내려진 결단에 대해 찬찬히 살펴본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을 빠르게 종식시키고자 내린 선택은 어쩌다 민간인 대랑 학살이라는 전혀 다른 결말을 가져오게 되었는가.

    이 이야기는 두 지휘관의 서로 다른 의견으로부터 출발한다. 헤이우드 핸셀 장군은 최신 폭격기를 사용하여 공장, 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전술을 주장했으나 기상 악화 등의 원인으로 자꾸 실패한다. 마음이 급해진 미국 지휘관들은 핸셀 장군을 경질하고, 무차별 폭격을 주장하는 르메이를 선택한다. 전쟁을 더 오래 끌어 인명 피해를 늘리지 않으려면 단호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야간공습은 결국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다.

    전쟁은 승리했고 역사는 옳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글래드웰은 묻는다. "과연 그들의 선택은 옳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지나온 역사가 더 나은 선택을 포기한 결과일 수도 있음을 말한다. 올바른 선택에 대한 양심과 의지를 질문하는 책이다.

  •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지은이) | 더퀘스트 | 2022년 4월 "연차만큼 흔적도 쌓고 계신가요?"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까?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은 직장인들은 한 번쯤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며 성장하고 있기는 한 건지, 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이직을 하면 어떤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나아가 이 계통에서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같은 의문들 말이다. 나이를 먹는 만큼 연차가 쌓이고 직급도 오르고, 몇몇에게는 직책도 주어지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해 왔는지, 후배들에 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눈앞이 캄캄해지기 십상이다.

    저자는 연차를 먹어도 경력이 잘 찌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란다. 아마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직장인들이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고 실망하진 말자.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는 소수에 해당될 테니까. 이제 책에 담긴 사례와 솔루션을 참고하여 업무 전반을 점검할 시간이다. 저자는 아이디어, 실행, 협업, 커리어라는 키워드로 자신만의 흔적을 쌓아 가는 법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든 것은 일의 의미를 찾기 위함이겠다. "지금 이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이혜승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2022년에 나보코프처럼 러시아문학을 읽는 것"

    나보코프는 189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문학을 읽고 나비를 연구하던 그의 삶은 러시아혁명과 함께 뒤틀렸다. 혁명과 나치를 피해 망명자가 된 나보코프는 생계를 위해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다. (그는 <롤리타>의 성공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비로소 전업작가의 길을 택한다.) 2012년 출간 후 절판, 많은 독자가 기다린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 강의록이 2022년의 독자를 찾는다. "21세기의 러시아가 지금보다는 더 매혹적인 나라가 되어 있기를 기대한다"(12쪽)고 말한 나보코프의 말과 함께.

    나보코프는 투르게네프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는 읽기 편한 작가일 뿐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144쪽) 반면 체호프에 대해선 이렇게 평한다. "고리키는 교과서에 이름만 남아있겠지만 체호프는 자작나무 숲, 노을, 그리고 글쓰기를 향한 열정이 남아 있는 한 오랫동안 살아 있을 것이다."(455쪽) "소리가 주는 강력한 느낌을 들려주려고 수업 중에 톨스토이 작품을 러시아어로 직접 읽어"(17쪽)준 나보코프의 수업을 상상해본다.

    "왜 신은 그토록 선량한 천성과, 슬프고 착하고 따뜻한 눈동자를 이 사람들, 이렇게 나약하고 불쌍하고 불행한 인간들에게 주셨을까요? 근데 난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지요?"(456쪽) 체호프의 인물을 예를 들어 나보코프는 좋은 문학을 설명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넘어지는'(462쪽) 사람들. 이 사랑스러운 나약함의 귀함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문학을 읽는 것이라고.

4.292022
  •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 복복서가 | 2022년 5월 "김영하가 도달한 현재"

    "난 내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어." (83쪽)
    휴머노이드에게 발각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소년도 철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나는 인간이라는 것, 절대 기계가 아니라는 것, 뭔가 잘못됐다는 것...' (57쪽) 그 소년에게 돌아온 것은 참혹한 폭행이었다. 철이는 도주하고, 민과 선과 함께 다시 아빠를 만나 예전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활극을 벌인다. 휴머노이드 제조사 연구소에서 일하는 다정한 아버지와 함께 칸트와 갈릴레오와 데카르트, 세 마리의 고양이와 누리던 철이의 일상, 이전의 삶이 있다. 달리기의 기쁨을 알고 있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 존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가 김영하가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짧고 세련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휴머노이드 액션 활극이라는 익숙한 장르의 외피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김영하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철이가 인간일지, 인간이 아닐지에 대해 질문하고 반전을 숨겨두는 건 김영하의 방식이 아니다.

    2020년 모 플랫폼 구독자에게 공개되며 처음 독자를 만난 이 소설이 2022년까지 무르익는 동안, 우리는 팬데믹을 함께 경험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던 소설의 초고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야기로 나아갔다. (자신이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우리 역시 언젠가 삶과 작별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16쪽) <작별인사>의 첫 장을 다시 읽는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저 검은 공간 너머에 우리의 이유가, 김영하의 현재적인 질문이 있을 것이다.

  • 노이즈 :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올리비에 시보니, 캐스 R. 선스타인 (지은이), 장진영 (옮긴이), 안서원 (감수) | 김영사 | 2022년 4월 "판단에도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하다"

    우리가 내리는 많은 결론은 정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판단을 근거로 한다. 그 판단은 편향되기도 하고 잡음을 갖기도 하는데,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 책에 담긴 논의들의 출발점이다. 많은 주식 전문가들은 올해 주식시장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일시적 조정장을 예상했다. 그 낙폭과 차이 역시 크지 않았다. 반면 부동산은 상승론자와 하락론자의 갑론을박이 아직도 심하다. 급등세부터 소폭의 조정과 대폭락을 예상하는 이들까지 그 차이도 매우 크다. 여기서 주식의 예는 편향, 부동산의 예는 잡음이다. 모두 정확한 예측과는 거리가 있지만, '체계적으로 벗어난 판단(편향)'과 '서로 다른 판단(잡음)' 중에선 후자가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어차피 맞출 수 없는 예측의 문제가 아닌, 그 무엇보다 정확한 판단과 결정이 요구되는 일에서까지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같은 죄에 다른 형량이 내려지고, 같은 경력과 조건의 운전자의 보험료가 천차만별이고, 같은 사람을 두고 면접관마다 다른 평가를 내린다. 심지어 응원하던 스포츠팀이 패배하면 다음 날의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조직과 사회에 만연한 잡음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카너먼이 10년 만에 던지는 화두로, 어림짐작과 편향의 문제를 다룬 전작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한층 심화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택 설계자들>의 올리비에 시보니, <넛지>의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한다. 잡음 퇴치를 위한 드림팀이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은이),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긴이) | 다산초당 | 2022년 4월 "숲 속의 현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달은 것들"

    스물여섯 살, 다국적 기업의 임원으로 지명되며 사회적 성공을 이룬 저자는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이후 태국에서 승려의 삶을 택해 17년간의 수행을 마친 그는 고국인 스웨덴으로 돌아와 사람들 속에서 살던 중 루게릭병을 얻고,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다. 영화 같은 인생을 산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그의 삶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담은 책이다.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으로도 "왜?"와 "어떻게?", 두 개의 질문이 번갈아가며 입안을 맴돈다. 일단 그 호기심으로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린데블라드의 고요하고 강직한 에너지에 감화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정제된 생각을 담은 그의 말들은 물결처럼 밀려와 가슴속에서 잔잔하게 퍼진다. 주먹을 꽉 쥐고 사는 삶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오거와 고아들
    켈리 반힐 (지은이), 이민희 (옮긴이) | 양철북 | 2022년 4월 "뉴베리 수상 작가 켈리 반힐, 5년 만의 신작"

    한때 유서 깊은 도서관과 울창한 나무들로 유명했던 '협곡의 바위' 마을. 마을의 주민들은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토론을 나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물어보고 도와준다. 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고아원에는 생필품이 마를 날이 없는데 언제나 주변 이웃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가져다주고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서관이 불에 타 사라지고 마을에 넘쳐나던 온기도 사라진다.

    한편 마을 가장 끝에 터를 잡은 커다란 오거. 오거는 거인보다 작지만 인간보다 크고 용만큼 오래 사는 종족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흉악해 보이지만 아주아주 오래 사는 그는 삶의 길이만큼 마음이 깊은 존재다. 한순간에 메말라진 마을 사람들에게 묵묵히 친절을 나누어주는 오거는 비록 자신이 마을이 변하게 된 원흉으로 몰려도 베풀던 친절을 중단하지 않는다. 마을의 고아들은 동네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오거에게 위로받는다. 물론 오거가 마을 사람들로 받은 상처도 아이들이 치료해 준다.

    뉴베리 상을 수상한 전작 <달빛 마신 소녀>에서도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 켈리 반힐은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책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협곡의 바위' 마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린이들은 입장을 거부당하고 사회적 약자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도 묵묵히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가? 선의에 동참하는가? 오로지 내 자리만 지키기 위해 날카로워지진 않았는가? 희망이 숨어버린 차가운 세상을 두드리는 묵직한 우화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