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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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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마니에르 드 부아르 특별호 Maniere de voir 2022>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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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 페미니즘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절박한 이슈는 양성평등일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체제의 해묵은 질곡에서 여성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서구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여성은 최소한 법적으로 평등권을 인정받았고 정치 경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끝은 어디일까?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 결혼과 출산 등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거나 피했지만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발현하길 원한다. 말하자면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으며 일을 하면서도 여성의 특권인 출산을 통해 아이를 갖거나 가정을 이루는 등 여성으로서의 욕망도 충족하길 원한다. 대처 총리나 힐러리 클린턴 등의 여성 정치가들은 개인적으로는 남성들이 독점하던 영역에서 성공했지만, 그네들은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구조 속에서 남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지, 여성 특유의 자질을 발휘하거나 사회와 문화의 여성적인 면들을 부각시키진 못했다는 각성과 반성도 이어졌다. 남성 같은 여성이 돼야 성공하는 것은 인종 문제에 있어 백인의 옷을 입고 백인처럼 행동해야 그나마 성공의 길을 내디딜 수 있는 소수 흑인들의 삶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흑인들의 성공신화가 사회 전반의 편견을 없애지 못했고, 인종 간 평등구조를 만들지도 못했으며, 백인 중심의 사회구조 자체를 변화시키지도 못한 것처럼…. 여성성의 발현과 여성적 욕망의 충족이라는 이슈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성성을 강조할 경우에는 전통적인 사회질서에서 강요되는 여성의 자리는 어머니이고 아내이며, 여성은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본성이라는 등의 주장으로 모든 여성을 그와 같은 프레임에 가둘 수 있다. 과연 여성성과 여성의 욕망, 그것은 무엇일까? 그 실체를 알아야 논의를 진전 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프로이트는 30년을 연구해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실패의 이유는 아마도 여성의 욕망을 남성의 시각에서 읽어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스트 문학비평가인 쇼샤나 펠먼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답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여자’ 또는 ‘여성’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하여 펠먼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프로이트가 당연하게 여겼던 남성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남성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차용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가부장적인 관점, 남성 중심적인 관점을 비판하고 여성적 관점에서 사태를 뒤집어 볼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 여성적 시각이라는 것이 저 바깥 어딘가에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우리가 교육받고 자라온 역사적·문화적 환경은 가부장적 전통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우리의 비판적 시각 또한 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어서, 지금 가진 것 외에 미리 준비된 여성적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존의 시각을 버리고 대신 다른 것(여성적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비판적 시각으로 점검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행간을 읽어내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부단히 만들어 가야 한다. 펠먼이 제기한 이 같은 문제의식과 해결방식을 부단히 실천해 온 예를 우리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울프는 사실상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페미니즘의 대모로 일컬어진다(아이러니하게도 울프 자신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빅토리아조 말기에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급진적인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블룸즈베리 그룹의 핵심멤버로 비관습적인 삶을 영위했으며, 양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그녀는 영국 여성운동의 태동에서 결실까지를 두 눈으로 목격했던 세대에 속한다.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으로 불리는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역사적으로 남성이 누려온 교육과 권력과 경제적 특권에서 여성이 어떻게 소외됐는지를 세심하게 밝힌다. 교육받지 못하고 경제력도 갖지 못했던 여성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가사와 육아였다. 빅토리아 조 가부장제 사회는 “집안의 천사”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 남성 중심 권력구조에 봉사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여성은 가난하고 무지했으며, 경제 권력을 가진 남성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가 “13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며 돈도 번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울프는 외친다. 겉으로는 여성을 위하는 척 숭배하는 척하며 예술작품에서는 여성을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신과 같이 고귀하고 아름답게 그렸던 반면, 현실에서 여성은 무시당하고, 예속된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모순은 여성을 마치 “독수리 날개를 단 미천한 벌레(a worm winged like an eagle)”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울프는 놀라운 혜안으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온 데는 깊은 심리적 요인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즉, “여성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남성을 실제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해 보여주는 달콤한 마법을 가진 거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못난 남자도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보다 잘났다는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탐험에 나서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울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여성이 이러한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제국도 왕과 제왕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이 깨어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신문과 잡지 등에 에세이를 기고하던 열정적인 비평가였다. 저명한 문필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막내딸 버지니아를 역사가로 교육시켰고, 울프는 역사가의 안목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잊힌 여성들의 지난한 삶을 재현해 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왕도 정치가도 장군도 아니었고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 쓰려면 ‘사실’ 보다 ‘상상력’에 의존해야 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편지와 일기 등을 근거로 복원해 낸 삶의 단편은 예리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울프는 누구보다도 여성들의 억눌린 삶에 대해 분노하고 여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녀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대신 글로 투쟁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페니 버니 등 초창기 페미니스트 작가들뿐만 아니라 그 너머 셰익스피어 시대의 여성의 삶까지 현대로 불러내려 노력했다. 『자기만의 방』에 들어있는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상상의 여동생 쥬디스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삶의 이야기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만약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 태어났다면 과연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라는 상상의 끈을 좇아, 울프는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실제 여성이 살았을 법한 상황을 재현해 낸다. 오빠인 윌리엄이 근처의 문법학교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동안, 쥬디스는 토끼와 닭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고, 오빠의 책을 빌려 남몰래 공부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어느 날 이웃집 양모업자의 장남과 혼약이 정해져 버린다. 어느 여름날 새벽 몰래 집을 떠나 런던으로 가 극단을 기웃거려 보지만, 여자를 써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드라마를 쓰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쥬디스를 가엾이 여긴 어느 극단주의 배려로 허드렛일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추운 겨울 어느 날 임신한 몸으로 마차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울프는 만일 셰익스피어와 같은 재능을 가진 정신이 엘리자베스 시대에 여성의 몸에 깃들었다면, 그녀는 미치광이가 되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쥬디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백 마디의 이론적 논설보다 더 절실하게 여성이 처한 어려움을 전달해 준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이 대학에 갈 수 있고, 재산권과 참정권을 얻었지만,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울프는 단도직입적으로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아주 현실적인 주장을 펼친다.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과 일정한 수입은 사회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역설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여성들은(사실 여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분노가 가득 차서 수준 높은 창작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프는 여성의 사회적 해방을 넘어서 정신적 감성적인 전인적 해방을 추구했다. 기실 울프는 해방의 대상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았다. 당장은 여성이 그 대상이지만 그는 여성 속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함께 깃들어 있고, 남성 안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있다고 보았다. 하여 궁극적으로 이 두 면모가 조화로운 인간, 나아가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조화를 이루며 창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의 목표가 남성을 적대시하고 양성의 대결구조를 견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페미니즘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에 비해 부족한 존재,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지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 그리하여 남녀 양성이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아닐까? 울프는 이 같은 조화와 협력 사랑의 결합을 상징으로 두 남녀가 택시를 타고 함께 떠나는 모습으로 『자기만의 방』을 마무리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마련한 『페미니즘과 섹시즘』이라는 ‘택시’에 독자 여러분과 함께 올라, 지적 자극과 긴장감의 미로를 찾는 즐거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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