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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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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침엽수림에서>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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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시인의 새 시집은 시인 특유의 토속적 ‘입말(口語)’과 ‘몸말(肉聲)’이 한층 더 그윽하고 깊어져 이윽고 유현(幽玄)의 ‘그림자’를 거느린다. 그림자는 단순히 그림자를 덧댄다고 해서 더 두꺼워지거나 깊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따뜻한 무관심’이나 ‘싱싱한 불편’ 같은 그 ‘역설의 힘’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것이어서,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마치 한 몸인 듯 힘껏 껴안고 있는 ‘무심(無心)’ 혹은 ‘사무사(思無邪)’의 경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역설의 그림자’를 체득하는 일이야말로 시의 숙명이자 시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겠다. 시인은 전작에서부터 ‘입말’을 천착하듯 구사해 왔다. 시인에게서 특유하게 체화되고 발화된 ‘몸의 말’은 오로지 시인의 것이어서 더욱 힘이 세다. 생이라는 ‘실존(實存) 언어’의 살아 꿈틀대는 근육과 신경 혈관과 세포들이 하나의 ‘역동적 통일성’이라는 ‘몸의 시학’을 획득하는 데 수렴되는 진경(進境)을 이번 시집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싱크홀 포비아」 「흠집」 「목 없는 골목」 「봄비의 혼잣말」 「하지」 「소서」 「어디에 둘까요」 「나는 보호자입니다」 「다 팔아 뿌믄 나는 머 하는교」 「나는 누구입니까」 같은 가편들에서 그 ‘온몸의 역설’을 생생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2.
시인은 ‘아이의 아이로 태어나’ 한 생을 살아왔고 또 여실하게 ‘아이’로 살아가다가 죽을 것이다. 이 게송 같은 진술은, 시인 특유의 도저한 낭만성을 넘어 그것보다는 한층 더 구체적인 실존의 체험과 체득을 통해 ‘생’을 관통하는 본성적인 삶의 원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 음역이 낮지만 그윽하고 힘이 세다.
3.
박태진 시인은 순수하고 겸허한 본연의 마음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경륜을 더해 가면서 중인(衆人)은 세속 물정(物情)에 물들고 나서기가 십상이지만, 시인은 이미 그 너머 공허와 적막의 지점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언어는 삶에 대한 감동이나 새로운 발견의 감성을 깊이 녹여내면서도 더욱 범박하고 편안하고 단순해지고 있다. 이제 그의 시학은 무구(無垢)를 지켜내면서도 ‘비움’을 지향하고 있다.
4.
어느덧 고희(古稀)에 이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간 생애의 곡절과 파란의 무늬를 담담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시’의 전범 같은 평이한 언어와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를 담보하는 사유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인상 깊다. 그 범박한 듯 고상한 언어의 율격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거나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다채로우면서도 따스한 관조의 시선이 잘 어우러진 시적 정경의 면모는, 시인의 파킨슨 발병과 명예퇴직 이후의 전원생활과 또 이어진 서울 아파트의 육아(시인은 이걸 군 복무에 빗대 「만기 제대」로 표현했다) 생활 등을 두루 거쳐, 청년 고독사의 현장과 정치 양극화와 팬데믹의 세태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스펙트럼을 시인 특유의 ‘강의목눌(剛毅木訥)’ 어법으로 구수하게 익은 향기를 전해 준다. 시인의 이런 모습은 시인이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고 문인수 시인의 풍모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번 시집의 백미는 시인이 온몸으로 겪어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파킨슨’ 시편들이다. ‘파킨슨’은 그이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병(病)’의 단계를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그건 시인에게 삶의 비의와 지혜를 알려준 스승이자 도반이었고,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반자의 모습으로 그이의 삶을 견인하고 있다. 이번 시집의 「그림자」 같은 절창과 「짐을 들고」 「걸어가자, 바위야」 등의 가편들은 그리하여 더 유현하고 그윽한 빛을 발한다, 시업은 이제 그이에게 ‘지문이 다 닳도록(「부전자전」) 오래 매만져온 자연과 이웃, 사물들과 한 몸, 한 궤(軌)를 이루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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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옥의 시편들에는 오래 침묵하며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자의 무지근하고 골똘한 무게감이 있다. 자연스레 그 언어는 수화처럼 때로 적막한 듯하지만 오히려 이면과 행간이 깊고 넓다. ‘먼 남쪽으로 밥 지으러 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어머니는 ‘차고 맑은 우물 속에 뜬 고봉밥그릇’ 같은 만월로 말없이 떠오르기도 한다. 흔적이나, 주름, 혹은 그림자나 물 빠져나간 자리, 유산, 벽돌 한 장 같은 삶의 세목(細目)들을 통해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유에 바쳐지는 그 언어들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이거나 입술을 깨문 속울음처럼 응축된 마음의 저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녀의 시들이 밤하늘의 뭇별처럼 총총, 세상으로 터져 나와서는 죽음과 소멸이란 필연의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몸짓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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