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독자의 서평에서 책이 너무 길다는 불평을 본 적이 있다. 맞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책이다. 그리고 짧을 수도 없는 책이다. 장켈레비치가 죽음의 수수께끼를 값싼 방식으로 풀어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적 논증만큼이나 문학과 음악의 언어와 사유로 차고 넘친다. 그러니 길다는 것이 풍요로운 축복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교향곡을 들으며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만끽하는 일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긴 책에는 미로와 막다른 길, 후퇴와 우회들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죽음이라는 난문을 ‘문제’로 놓고 있는 책답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일이 우울한 주제를 탐구하며 어둠 속을 헤매는 일처럼 생각된다면, 조금은 오해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넘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생의 찬란함이기 때문이다. 장켈레비치의 이야기는 신비롭고 불가해한 수수께끼인 죽음에서 출발하지만, 삶의 절대적 가치에서 끝을 맺는다.
그는 죽음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진짜 신비임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싶어 한다.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인 죽음의 진짜 비밀은 ‘비밀이 없다는 비밀’이었고, 이는 영웅적 시련을 겪으며 찾아 들어간 캄캄한 동굴 속에 감춰진 비밀이 아니라, 일상의 거룩한 빛 아래에 친근한 시선과 가벼운 미소 속에 환히 드러나 있는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사유할 수 없다는 철학적 논증의 비관주의가,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철학 작품의 희귀한 낙관주의로 귀착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