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해 이에 관련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출간한 역서로는 『오월의 밤』, 『백색의 시학』 등이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자의 사회 문화적 연구에 매진 중이다.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문학으로 밥벌이를 해 살아가려고 결심한 게 20대 중반이었으니까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쌓이다 보니 그간 나름대로 인문학의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해온 것도 있고 적잖이 글도 쓰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어찌된 일인지 갈데없는 고슴도치 엄마가 보기에 큰딸은 꽤 생각도 깊고, 글재주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너무나 무모하게도 딸과 함께 세상의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걸 그냥 사라지게 놓아둘 게 아니라 일부라도 모아서 책을 꾸린다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딸이 나중에 책을 다시 펼쳐볼 때 엄마와의 옛 기억을 아련하고 정답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사로운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딸과 세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게 낯설지 않았던 경험도 이런 생각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의미만 가지고 덤비다니 경솔하고 섣부른 판단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인문학>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허긴, 쉬운 글쓰기가 어디 있겠는가?
일단 엄마와 딸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적합한 주제를 선택하는 것부터 적지 않은 고민이 필요했다. 고백과 자기반성을 하자면 대학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통하는 뭔가 심오해 보이는 지식에 대한 편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작업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 말로는 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절감되곤 했다. 정작 고등학생인 딸의 고민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적지 않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내가 생각했던 틀에서 훌쩍 벗어나 있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관한 장이 그랬다. 요 근래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혐오 정서’의 만연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여성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 치열하게 삶에 직면하다’, ‘이미지의 시대: 보이는 것의 중요성과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쓰면서 이런 놀람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아이의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아이의 일상이 훨씬 더 학업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이라면 나도 겪은 바 있으니까”하는 자만 속에서 경솔하게도 나는 딸이 지나고 있는 이 시기를 어쩌면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과 동급인 ‘쌍팔년도’적 일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이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고맙고 소중한 깨우침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노래에 열광하는 것일까?’는 나름 아이의 관심과 눈높이에 맞춰보려는 주제 선택이었다. 그러면서 생각지 못한 소득이 있었다. 문학 공부를 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로 시를 거의 방치하고 있는 개인적인 상황에서 아주 오랜만에 시와 노래를 이야기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기억 저편에 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설렜다.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대화’와 ‘톨레랑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며’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담은 주제이다. 사회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은 딸의 선택이기도 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할 말이 가장 많았던 문학과 문학가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전공을 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이 딸에게 비교적 낯설기도 했고, 한 장에 담아내기에는 이것저것 쓸데없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나 보다. 취사선택에 실패했다.
책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역시 딸과의 소통이었다. 한권의 책을 함께 엮어간 일년 반의 시간은 딸의 생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청하려고 나름 노력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고등학생인 딸과 엄마가 흔히 겪는 마찰이나 감정 소모를 거의 겪지 않고 지난 것 같아 고맙다. 끊이지 않는 시험과 수행의 부담 속에서도 엄마와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딸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다.
인문학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하다 보면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하나일 수도 셋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이다. 딸이 용감하게 세상에 직면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나누었던 이 보잘 것 없는 대화가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아이디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책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조언과 격려를 잊지 않은, 소중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애경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7년 11월
김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