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번역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얀 사슴 연못』 『초자연적 3D 프린팅』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모비 딕』 『바닷가에서』 『어둠의 심장』 『폭풍의 언덕』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현문학패,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번역은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에서부터 막히고 말았다. ‘darkness’야 당연히 ‘어둠’으로 옮기면 되겠지만 ‘heart’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심연’으로 옮기는 게 가장 무난하고 문학적이겠으나 ‘심연’의 ‘연(淵)’이 ‘연못’을 뜻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heart of darkness’는 작품의 주요 배경을 이루는 ‘콩고 내륙의 빽빽한 초목’을 가리키는 동시에 ‘인간의 광기’, 즉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을 모두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숲의 북소리는 ‘심장 소리’와 공명하면서 작품 내내 울려 퍼지고, 마지막에 가서는 “정복자 어둠의 심장박동”까지 언급된다. ‘heart’가 글자 그대로 ‘심장’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어둠의 심장》을 다 읽은 후 지금도 마음속에, 아니 귓가에 남아 있는 것은 한밤중에 쿵, 쿵 고동치며 들려오는 저 아프리카 숲의 어두운 심장 소리다. 나는 아프리카 숲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심장에 손을 가져간 뒤 눈을 감으면 자연히 그 북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heart’를 ‘심장’ 말고 다른 단어로 옮기기란 불가능해졌다. 사실 우리말로는 ‘심장’보다는 ‘심장부’가 좀 더 자연스러운 역어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책을 덮은 후에도 ‘어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둠의 심장부’보다는 ‘어둠의 심장’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이런 이유 말고도 ‘어둠의 심장부’는 너무 설명적으로 들리는 반면, ‘어둠의 심장’은 좀 더 시적으로 들렸다. 한국어를 모르는 콘래드도 이런 선택에 분명 흡족해하리라 확신하며, 콘래드 사후 100주기를 기념하며 출간된 이번 판본을 통해 “인간의 입술 없이 강의 무거운 밤공기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듯한 이 이야기가 불러온 희미한 불안감”을 만끽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