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뭔가를 함께 고민하거나 헤쳐 나온 사람들, 어느 한 시절을 같이한 사람들과 더불어 쓰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자취 공화국』은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사람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건만, 졸업 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건만, 그 시절 친구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조금 다른 캐릭터로 이 소설 속에서 되살아났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 어느 저녁, 집에 가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좁은 방 한 켠을 흔쾌히 내주고 맛있는 커피까지 대접해준 정화. 할아버지네 자취 집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정화 덕분이었다. 어느 가을밤, 방문을 비틀고 들어오는 도둑을 향해 누구야! 소리쳐서 쫓아버린 은주. 그때 은주와 한방을 쓰던 아이는 일찌감치 도둑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도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다. 우리가 할아버지네 자취 집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용감무쌍한 은주의 공이 컸다. 복지관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해주던 소향. 소설 속에서와는 달리 소향은 그날 「로망스」를 끝까지 다 들려주었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는 소향의 말만 믿고, 그럼 나도 한번! 도전했다가 손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그거 여러 번 생겼다가 터져야 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소향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추운 겨울밤,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고 2년 후 혹은 10년 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곤 했던 수연. 그때 우리 얼굴이 발그레했던 건 추위 때문이 아니라 설렘과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영, 미숙, 향이, 희숙……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