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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여행

이름:변종모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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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큰글자책] 여행자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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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com/maldive9

변종모

오래도록 여행자로 살다가 고양이에게 납치되어 떠나지 않는 여행자가 되었다. 작업실 안의 고양이 두 마리와 수시로 담을 넘나드는 불특정 다수의 길냥이들을 살피며 고양이 여행 중이다.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세상의 모든 골목』 외 여러 권의 여행에세이를 썼다. 유튜브 [여행자의 고양이] (https://www.youtube.com/@maldive9)를 통해 고양이와 함께 하는 그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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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큰글자책] 여행자와 고양이> - 2025년 7월  더보기

고양이가 말하고 사람이 받아 썼다 우리도 주소를 가졌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 선택되어지는 것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모든 것들. 세상에는 안간힘을 쓰거나, 그마저도 없이 그저 굴러가는 대로 이어지는 삶이 많다. 북인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안데스산맥의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힘든 날들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던 것은 실체 없는 마음뿐이었지만, 그 마음 하나 믿으며 걸었다. 안간힘으로. 모든 생명은 스스로 원해서 태어나는 일이 없다. 더러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풍요로운 삶을 보장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만만치 않다. 나라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은 주어지는데,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해지려는 욕망만큼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했던 사람마저도 원치 않은 이별을 남기고 가볍게 떠나버리는 일이 허다한 걸 보면, 우리는 최소한 한 번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락에 빠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때로는 더 잦을 때도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여행자로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스스로 거부한 첫 사건이었으나, 위태로웠지만 행복하다고 자부하며 낯선 길 위를 자주 오래도록 걸었다. 정착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를 남들은 여행자라 불렀다. 주소가 없는 사람처럼 살며 여러 대륙과 나라를 떠돌았다. 그러는 동안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마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슬펐지만, 동시에 그만큼 자유로워졌다. 인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킬 인연 하나 없이 정처 없는 마음으로 사는 것도 괜찮았다. 그러다 문득 세상이 주는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발이 묶였고 얇은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제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병이 생겼다. 떠나지 못하는 여행자이다 보니 마음의 병이 먼저 찾아왔다. 그렇게 쌓아둔 추억들만 곱씹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쩌면 새로운 여행의 시작인지도 몰랐다. 경남 밀양 외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도시에서의 날들을 추려내며 당분간 나를 위해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새로운 인연이 덜커덕 걸리고야 말았다. 내가 선택했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머물기를 거부하는 자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인연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지만 인연이 마음대로 되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필연이라 부른다. 이것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로지 고양이의 이야기이거나, 고양이를 핑계 삼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말들이다. 홀로 떠돌던 여행자가 그렇게 되어버린 이야기. 나는 살아 있는 생명과 함께할 거라고는 예상해 본 적 없던 여행자에 불과했다.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내가 뭘 키우고 기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주소 없이 살아가고 싶었던 나와 아기 고양이가 같은 주소를 가진 낡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여행자였으니, 아기 고양이 '살구'는 여행자의 고양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우리의 앞날을 모른다. 나는 여행자이고 살구는 여행자의 고양이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만나 같은 주소를 쓴다는 이유로 때로는 서로가 주인이라 우기며 살아간다. 밀양의 작은 시골 마을 하수구에서, 지금은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성북동에서, 그리고 밀양보다 더 낡은 북정마을의 빨간 지붕 아래에서 날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더 이상 여행자가 될 수 없지만 여행자보다 더 많은 여행을 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여행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쓸쓸하지 않게 날마다 이벤트를 벌이며 삶을 공유한다.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한 마리가 더 찾아왔다.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자꾸 생겨나던 어느 날, 창문을 두드리던 아기 길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졸지에 족쇄를 두 개나 차는 느낌이었지만, 따뜻했다. 그랬다고 기억하며, 그런 마음으로 지금은 셋이 동거 중이다. 살구도, 자두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처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처음인지도 모른 채 살다가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희망도 걸겠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마음.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를 고양이가 말하고 사람이 받아 썼다. 그러니까 우리 셋만 아는 이야기. 때로는 마음속에만 있던 말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고 할까. 그 말들을 고양이에게 던져 놓는다. 세상이 몰라도 될 이야기들을 유튜브 ?여행자의 고양이?를 통해 공유하면서, 댓글을 통해 동냥젖으로 키우듯 어설픈 육아일기를 써 내려간다. 비록 비인기 채널이지만 다행인 것은, 정말 따뜻한 격려와 세심한 조언이 오간다는 것이다. 낯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떠오른 말들을 혼잣말하듯 뱉어냈는데 불현듯 이해될 때가 있듯, 우리는 그렇게 소통할 때가 있다. 정확하지 않아도 정성스러운 마음의 말들. 우리는 여행자다. 언제나 여행자다. 내일을 모른 채,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지도를 그리며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닿겠지. 나와 고양이는 세상에는 없는 지도를 그리는 나아가고 있다. 너도 나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주소를 가졌다. 이 사실이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주소를 거부하며 살던 내가, 누군가에게 주소를 부여하며 같은 주소로 사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나는 너를 선택한 적 없고 너도 나를 선택한 적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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