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쓰던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린다. 지금의 내게 사연들은 희미하다. 다만 감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처음 이 소설을 시작하던 날의 느낌. 겨울이었고, 무척 추웠다. 새벽에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새로운 문서창을 띄운 후 제목을 적어내렸다. 몇 시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얼마나 망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상 아래 뻗은 발끝의 차가움과, 그 차가움이 녹아가던 느낌만은 아주 선연하다.
그리고, 멍하다.
(……)
이제 이 소설은 나를 빠져나갔다. 나는 이것에 대해 더 할 말이 없다. 입을 열면 어쩐지 변명이 될 것 같아서. 다만 이 소설이 어떤 계절을 거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최선이라고, 말할 순 없다. 최선 같은 것은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쓰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다. 무척 즐거웠지만, 때때로 겁을 먹었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쉬지 않고 썼다. 이 계절의 내 자랑거리는 그런 것이다. 뛰거나, 걷거나, 기어, 한 방향으로 왔다는 것. 그러니 책을 손에 든 사람들에게도, 이 계절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