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1월 속초 사진리에서 출생했다. 2000년에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드는 계간 『시평(詩評, SIPYUNG)』을 창간하면서 25년 동안 900여 편의 아시아 시를 한국에 소개했다.
1979년에 시 「장자(莊子)」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대청봉(大靑峯) 수박밭』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유리체를 통과하다』 장시 『리틀 보이』 장편 산문 『은빛 물고기』 ‘고형렬 에세이 장자’(전7권) 등을 출간했다.
등단 44년 만에 첫 시선집『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2023, 창비)를 출간하면서 소리 시집(https://play.google.com/store/audiobooks/details?id=AQAAAEAivi7-HM)’(내레이터: 김성천, 1시간 48분)을 동시에 출시했다. 최근에 세 번째 장시 『칠일이혼돈사(七日而渾沌死)』(달아실)를 상자했으며 두 번째 장시 『대붕조(大鵬鳥)』를 중국 베이웨문예출판사(北岳文藝出版社)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그 상수리나무’는 자신을 끝까지 찾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유쾌하지만도 않을 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 상수리나무 앞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 나그네였다. 아니 시간을 쓴 적이 없다. 어디 한곳 쓴 적 없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상수리나무가 아닐까.
무용은 세상 만물 중 그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한 번도 쓰지 않음 쪽으로 탈주하는 것이 만물과 인간을 찾는 길인지 모른다. 지리소(支離疏)도 쓴 적이 없는 그 무엇의 이름일 것이다.
유한한 존재의 숙명 앞에 던져진 선물은 무엇일까. 책무만 강화된 불행한 사회적 존재로부터의 과분한 내적 초월과 탁부득이를 확인하기 전에 어쨌든 나그네의 지체는 자신에게만 있다.
장자는 대목(大木)이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가 인간과 사회를 위한다고 말해도, 어느 나무가 새잎을 피운다고 말해도 무용만 못할 것 같다.
소통은 양적으로 줄어들고 불통은 질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너무 용이하고 과도하게 소통했기 때문에 지배되고 이용되어 왔다. 그것이 역사와 문명, 삶의 모습일지 모른다.
나그네가 찾아가는 장자는 쓸 수 없는 재목 같다. 그는 산목의 철인이었다. 역시 장자의 나그네에겐 그 어찌할 수 없는 불통과 모름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