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기자로 시작해 웹매거진 「매거진t」 「10 아시아」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종이 잡지, 웹진, 책, 라디오, 팟캐스트, IPTV, OTT에 이르는 온·오프라인 매체와 뉴미디어를 유연하게 오가는 영화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배우 연구에 관한 학문적 접근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18년 백은하 배우연구소를 열었다. 올레티비 〈무비스타소셜클럽〉, KBS 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팟캐스트 〈백은하· 진명현의 배우파〉, 왓챠〈배우연구소〉 등을 기획, 진행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외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 <톡파원 25시>, <차이나는 클라스>, 지니티비 <메뉴 읽어 주는 소장> 등의 방송 출연, 제작보고회, 관객과의 대화 등 다양한 영화 행사의 모더레이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뉴욕에서 보낸 지난 1년을 어떻게 환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말없이 방 한구석에 수북이 쌓인 영화 티켓들을 꺼내 보여줄 것이다. 한 장 한 장 티켓을 넘기다보면 그 영화를 보던 날의 풍경이 펼쳐지고, 줄거리와 배우들의 표정이 떠오르며, 심지어 그때 감기에 걸렸었지, 그때 극장 에어컨이 고장났었는데, 따위의 기억까지 튀어나온다.
그러니 지난 1년의 디테일을 기억하는데 이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리마인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떤 표들은 잃어버렸을 테니 몇 편의 영화를 보았는지 정확히 셀 수는 없겠지만, 자기 발로 도망가버린 기억들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해도 뉴욕에서 보낸 '영화와의 1년'은 기억할 것들로 넘쳐난다.
스파이크 리, 팀 버튼, 짐 자무시 등을 만났던 숨 막히는 '알현'의 날들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부터 연정을 품었던 에단 호크를 '몇 미터 앞에 두고' 바라보았던 박제해버리고 싶은 그 순간도, '마이 섬머 오브 러브'의 에밀리 브런트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클레어 데인즈 손에 직접 매니큐어를 해주며 도란도란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비현실적인 장면들도 지난 1년의 하이라이트지만, 역시 뉴욕의 영화광으로 살면서 누린 소박한 행복은 따로 있다.
맨해튼 곳곳에 숨어 있는 영화 속 장소들을 찾아다니던 '나 홀로 영화 순례', 멀티플렉스에 도시락까지 싸들고 가서 하루 종일 죽치고 놀던 '범죄성 영화 소풍', 아르바이트를 마친 저녁에 마지막 회 영화를 보고 미로 같은 웨스트빌리지를 걸으며 그날 본 영화를 맛있게 되새김질하던, 내일 또 무슨 영화를 볼까 배낭여행자처럼 계획하던 그 밤들을 과연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