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판을 누비며 심신을 단련하고 아버지의 개화적 성향과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유년시절, 위태로운 나라를 염려해 펼친 교육사업과 국채보상운동 등의 노력들, 영산에서의 치열한 전투와 단지동맹, 그리고 조국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 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한 인간으로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갈등하던 안중근 의사. 또한 무엇보다도 단지 조국의 독립만이 아닌, 세계의 평화를 진심으로 갈구했던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따라가던 어느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기억하던 흑백사진 속 인물들이 조금씩 자신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막 들어온 기차와 하얼빈 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자신들의 색을 찾았다. 기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내린 일본인 고위관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가 색을 찾았다. 내 머릿속에 흑백으로 존재하던 것들이 색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안중근 의사를 모두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 사진 속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찾아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