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틈틈이 어린이를 위해 외국의 좋은 작품을 골라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톨스토이의 『고백』과 스페인 감성동화 『수상한 궤짝』, 멜빈 버지스의 『벽 속의 유령』,『싱잉푸 시리즈』 등 다수가 있고, 지은 책으로는 『부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꼼당 선언}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다.
내용 소개는 생략하고, 다만 이 고전을 다시 책으로 펴낸 사정만 설명하고자 한다.
수십 년 전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자의 존재 자체가 반공법 위반이었으며, 외국어 판본조차 숨어서 읽던 시절, 우리는 [공산당 선언]을 ‘꼼당 선언’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때 외국어 실력과 역사적 지식 부족을 탓하며, ‘대단한 고전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생뚱맞은 경외심까지 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읽어도 왜 그리 어려울까? 나는 영어판과 독일어판을 놓고 검토하다가 다시 엮어 낼 이유를 찾아냈다. 문제는 지독하게 직역에 충실한 번역자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그것은 한 단어 한 단어를 훼손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성서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독자의 이해는 뒷전일 수밖에!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공산주의 운동사는 기독교의 역사만큼이나 정통성 논쟁으로 뒤덮여 있다. 훗날 마르크스가 정통성의 원조로 확정된 뒤로도 정통이냐 수정주의냐를 놓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었던가? 그러니 누가 이 정통성의 원조를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다음 [공산당 선언]의 원본은 독일어판이다. 이게 온갖 나랏말로 번역되었는데, 불행히도 각국 언어의 특성상 독일어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독일어에는 몇 개의 단어가 합쳐진 단어가 많다. 단어 조합을 쪼개지 않으면,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다. 어떤 복합명사의 뜻은 그 자체로 한 문장을 이루기도 한다. 독일 관념론을 지독하게 비판했던 마르크스도 독일인의 언어 습관까지 버리지 못하였는가 보다.
그래서 독일어판과 1888년 영어판을 원본으로 삼아 다시 번역해 보았다. 복합명사는 문장으로 풀어쓰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예를 들거나 설명을 첨가했다. 공산주의 고전에 훼손을 가한 점이 찔려 첨가한 부분은 글자색을 달리했다. 이 훼손이 불만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이 땅에 그럴 사람이 남아 있기나 할까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