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곡가. 미니멀리즘을 응용한 신음악의 작곡가이자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이다.
1937년, 미국 볼티모어의 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라디오 수리점과 레코드 가게를 같이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여러 음악을 접했으며, 여덟 살 때부터는 플루트를 배웠다. 열다섯 살에 시카고 대학에 조기 입학을 한 필립 글래스는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 다방면으로 풍성한 지적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한편으로, 버드 파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등 당시 시카고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도 심취했다. 그뿐만 아니라 베베른, 베르크 같은 이들의 현대음악과도 본격적으로 만났으며, 브루크너의 음악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여기에서 그는 윌리엄 버그스마와 빈센트 퍼시케티를 사사하는 가운데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작법에 필요한 바탕을 두루 다졌다. 그런 한편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뉴욕 다운타운 미술계와 공연계, 그리고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초월을 추구하는 비트 문학으로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는다.
줄리아드를 졸업한 후 1964년에 파리로 건너간 필립 글래스는,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리는 나디아 불랑제와 인도 음악의 거장인 라비 샹카르라는 두 스승을 사사함으로써 음악과 삶의 깊은 곳을 통찰하는 법을 배운다. 또한 베케트, 콕토, 누벨바그 영화, 아방가르드 댄스와 실험 연극 등 유럽 현대 예술의 최전선을 경험한다.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감행한 인도 여행 역시 그의 음악과 정신 세계를 이루어 갈 또 다른 주요 원천이 된다.
뉴욕으로 돌아와 전업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마흔이 넘도록 필립 글래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밑바닥 노동과 예술의 세계를 쉼 없이 오갔다. 낮에는 이삿짐센터, 공사판, 배관, 택시 운전 등의 일을 했고, 밤에는 리 브루어 등과 만든 실험 극단인 마부 마인스의 일과 자신의 음악 작업을 부지런히 이어 갔다.
1968년에 첫 연주 공연을 한 이래로 핵심적인 리듬과 선율의 반복과 변주를 특징으로 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확립해 가던 그는, 1976년에 초연한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성공하면서 그 결실을 보았다. 이후 「사티아그라하」, 「아크나톤」을 차례로 올리면서 ‘초상 오페라 삼부작’을 완성했다. 1990년대에는 장 콕토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 삼부작인 「오르페우스」, 「미녀와 야수」, 「무서운 아이들」을 선보였다. 그 밖에도 영화 「코야니스카시」, 「쿤둔」, 「디 아워스」, 「일루셔니스트」, 「스토커」 등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