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일본 영화의 1세대가 배출한 위대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는다. 1920년, 열 다섯의 어린 나이에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해 약 10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일한 후, 1930년 <찬바라 부부>를 만들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당대 일본 영화계의 수작들과 걸작들을 연이어 만들어내며 일본의 중요한 영화감독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일본 영화계의 두 번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는 1930년대와 1950년대가 나루세에 있어서도 전성기라고 이야기되는데, 1930년대에 그는 <아내여 장미처럼>(1935), <츠루하치 츠루지로>(1938) 등의 대표작을, 그리고 1950년대에는 <밥>(1951), <엄마>(1952), <번개>(1952), <만국>(1954),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흐르다>(1956) 등과 같은 대표작들을 발표했다.
나루세는 주로 서민극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즈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루세는 그만의 '부유하는 세계'에다가 지독한 염세주의를 불어넣어 나루세적이라고 할만한 독특한 영화 세계를 축조한 영화감독이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비평가 장 두셰는 나루세는 삶의 가장 미세한 움직임들과 떨림들에 극도의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현대적인 것'을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오즈는 생전에 자신이 결코 만들 수 없을 영화로 미조구치의 <기온의 자매>와 나루세의 <부운>을 꼽아 나루세라는 영화감독의 탁월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 서울시네마떼끄,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에서 -
나루세 미키오는 1905년 도쿄에서 태어나 1920년 15세의 나이에 쇼치쿠 카마다 촬영소에 취직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30년에 희극 <찬바라 부부>로 감독에 데뷔하였으며, 3년 후 1933년 "카마다의 여왕"이라 불린 쿠리시마 스키코가 주연을 맡은 <매일 밤 꾸는 꿈>과 <당신과 헤어져> 등 2편의 장편영화를 발표하며 센티멘탈리즘에 빠지지 않는 서정적인 작품으로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 해에 나루세 미키오는 유성영화의 새로운 제작사 P.C.L(후의 '도호')라는 회사로 이적을 하면서 그의 유작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품들을 이곳에서 발표한다. P.C.L 이적 후 그는 1935년 <처녀의 마음을 가진 새> 등 5편의 토키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나루세 미키오 영화 일생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부부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내여, 장미처럼>은 일본 개봉 2년 후인 1937년 미국에서 정식 개봉돼 일본영화 중 첫 해외 진출작으로 기록된다.
1937년 나루세 미키오는 그의 영화 여주인공으로 자주 출연했던 치바 사치코와 결혼하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3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등으로 영화 제작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면서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 활동 역시 침체기에 빠져든다. 하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꾸준히 작품 활동에 전념, <진심> <버스 차장 히데코> <초롱불의 노래>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쟁과 변화의 시대였던 1940년대를 지나 일본영화계에 황금기가 다시 찾아온 1950년대에 나루세 미키오는 <밥> <산의 소리>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부운>등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보다 성숙해진 작품으로 평단의 갈채를 받았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나루세 미키오는 서민생활을 그린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그 중 다카미네 히데코가 주연을 맡은 <번개>(1952)와 최고의 걸작 <부운>(1955) 등 하야시 후미코 원작의 작품들은 그의 전성기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변두리 기생집을 배경으로 한 코다 아야 원작의 <흐르다>(1956), 긴자의 밤거리에서 생활하는 여자의 삶을 다룬<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유작이 된 도호 35주년 기념 영화 <흐트러진 구름>(1967)에 이르기까지 애환으로 가득 찬 여성들의 삶을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그려냈다.
나루세 미키오 특유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1980년대 이후 일부 현대 비평가들에 의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나루세 미키오'라는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눈에 확연한 스타일이 드러나지 않는 나루세 작품의 특성 때문에 동시대의 감독 중 가장 늦게 발견되었지만, "빛의 사용에 통달한 거장 중의 거장"(장 피에르 리모쟁), "영화만이 가능한 한없이 풍요로운 단순함을 통한 미학의 실천가"(하스미 시게히코) 등 나루세 영화에 대한 격찬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일본의 4대 거장으로 불리워지며 수잔 손탁, 장 두셰 같은 저명한 평론가들에게 칭송을 받았던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허우 샤오시엔, 빔 벤더스, 에드워드 양, 오즈 야스지로 등 거장감독으로 추앙 받고 있는 유명 영화감독들이 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표하면서 시작되었다. 나루세 미키오를 사랑한 대표적인 감독으로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은 "나루세 미키오를 영화적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의 영화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이다"라고 말하며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존경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 외에도 오즈 야스지로 또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영화는 미조구치 겐지의 <기온의 자매들>과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이라며 나루세의 작품에 대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은 영화적 기교 없이도 놀라운 현실성과 현대성을 작품에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동시대의 감독뿐 아니라 후세의 감독들에게도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 받고 있다.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이나 서민층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로 다뤄 '여성영화의 장인' '멜로드라마의 천재' '서민극 감독'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이나 서민의 삶을 주제로 다루되,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화법을 구사해냈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가사일을 돌보는 여성들은 종일 집안일을 해도 끝이 없다. 매일 저녁이면 밥을 지어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에 행복을 느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느 섬세하고 예민한 여성의 감정이나 서민의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녹여낸다. 혹여 주인공들에게 위기상황이 닥쳐 그들의 행동이 극단적이거나 지나친 반응으로 흘러갈 때 조차도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 인물들은 현실의 틀 안에서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런 식의 극의 전개는 나루세 미키오 특유의 영화성격으로 간주되는데, 즉 멜로 장르의 전형적인 특징인 일련의 사건에 대한 극적 조장 없이도 리얼리즘에 기반한 모던하고 세련된 탄탄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 이를 통해 완성되는 나루세 미키오 스타일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미학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놀라운 순간을 선사한다.
1930년대 일본영화계의 젊은 감독들은 무성영화기 유럽 영화의 특징인 격렬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몽타주 등을 억제하고 시각적 효과보다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받아 토키적 수법의 확립을 지향했다. 이러한 일본 영화계의 움직임의 중심에 서있던 감독 중 하나가 바로 나루세 미키오. 무성영화 시절부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 유성영화의 시대를 맞이한 나루세는 탄탄히 짜여진 이야기 흐름을 기반으로 고정 화면 등의 절제된 카메라 기법을 통해 완벽한 시퀀스를 만들어 냈다. 무성영화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섬세한 화면 연출을 통한 캐릭터 감정변화의 고조를 표현해 낸 것. 즉 주고 받는 대사뿐 아니라 고정된 화면 안에서 세밀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극의 감정의 기복을 이끌어낸 것이다. 나루세의 앵글은 단조롭고 카메라의 동선은 크지 않다. 대신 카메라 앵글 속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동적 이미지, 그리고 배우들의 미세하고 섬세한 움직임(심지어는 머리를 들고 숙이는 작은 디테일까지)을 통해 풍부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나루세 특유의 영상미학은 어찌보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내러티브의 한계를 극복시켜주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호흡과 감성에도 리듬을 실어주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해내 '빛의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나루세 미키오다운 놀라운 영상의 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