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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벤 라이더 하우 (Ben Ryder H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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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마이 코리안 델리>

1. <마이 코리안 델리>가 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우선 <마이 코리안 델리>가 한국에서 출간되어 매우 기쁩니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처가 식구들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았기 때문에 한국이 매우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장모님댁 지하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한국에서 건너오는 처가 친척들을 수없이 만나왔고, 한국 음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 문화를 나름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늦은 밤, 마른 오징어를 씹으며 가게에서 벌어들인 돈을 세면서 <대장금>을 틀어둔 집 안에 앉아 있노라면, 정말 한국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답니다.

2. 장모님 K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그들이 한글판 <마이 코리안 델리>를 읽고 뭐라고 하던가요? 
델리를 그만둔 몇 년 후부터 책 집필을 시작했어요. 전 그 당시에도 처갓집 지하에서 살고 있었고요. (웃음) 시간이 좀 지난 후의 기억이라 애매한데다, 그들도 경험한 이야기였기에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확인하곤 했는데요. 솔직히, 델리를 운영하면서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책에도 썼듯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지만, 그 모든 과정을 다시 겪고 싶으냐고 한다면 '글쎄'랄까요. 그러다보니, 책을 탈고할 때쯤엔 식구들이 아주 진저리를 쳤어요. 한번만 더 복권기계니 판매세니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였답니다. (웃음) 하지만, 장모는 한글로 번역된 내 책을 읽으며 너무나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모든 것을 잊고 책에 푹 빠져들었다고, 사위의 책이 아니더라도 꼭 읽었을 책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날이 책 출간 이후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3. 책에서는 처갓집 지하에서 결국 탈출을 못하셨어요. 이후 아이도 태어났으니 탈출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지금도 처가살이 중이신가요? 
지금은 따로 나와 살고 있어요. 하지만, 처갓집 식구들과는 거의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장모님이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있기 때문이죠. 책을 쓰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게 모두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인데, 예를 들어 개브는 "당신 말이 맞아, 난 가끔 좀 극성일 때가 있어, 그지?"라고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녀의 그런 성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웃음) 저 또한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 벤은 좀 너무 예민해. 본인이 알고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하는 타인의 평가를 다 알면서도, 결과적으론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에요. 물론 장모 케이와 장인 에드워드도 똑같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이엔 늘 오해가 발생하고 옥신각신하게 되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냅니다.  

4. <마이 코리안 델리>가 아마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디어 인터뷰 등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PR 등 방송에 출연하고 뉴욕타임스 등 잡지 인터뷰를 하고 낭독회를 여는 등 책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책이 주목을 받아 생긴 행운들이었죠. 하지만 다시 언론 쪽의 일을 하려니 좀 힘들기도 했습니다. 델리를 하기 전 제 직업이었던 문예지 편집자, 자유기고가 시절의 경험을 기억해내려 노력했는데, 사실 그때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좋은 기회였기에 즐겁게 임했습니다.

5. 2년 동안 뉴욕 브루클린에서 델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책에도 실린 건데, 2003년 미 동부 전역이 정전되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올해 여름처럼 몹시도 더운 날이었는데, 에어컨 풀가동 때문인지 동부 전역이 정전이 되어버린 거죠. 당시 저는 혹여 정전이 며칠 계속되지 않을까, 또는 영화에서처럼 폭동이 일어나 약탈과 방화가 난무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가게를 닫고 집으로 가서 숨어 있고 싶었어요. 게다가 이런 비상사태 때 장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장모와 개브의 의지로 가게 문을 열었고, 저는 비로소 장사치들은 오히려 가게를 열고 있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냉장고가 가동되지 않아 수천 달러어치의 제품은 망가지고, 특히 가게를 열지 않은 탓에 고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었어요. 지하철이 마비되어 집까지 15킬로미터도 더 걸어야 하는데 당장 마실 것을 못 구할 뻔하다가 우리 가게를 만났을 때의 그 환희에 찬 손님들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6. 델리를 그만 두면서 시원섭섭하셨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델리 계산대 뒤에 서는 것은 어떤 의미였나요?
편의점 계산대에서 온종일 근무를 서다보면 일은 힘들고 사람들은 무례하니까, 문을 닫을 때쯤이면 '나쁜 점원이 되어버려도 어쩔 수 없다, 아니 당연하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러다 문득 유쾌하고 너그러운 고객을 만나면 좀 전까지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저한테 계산대 일은 나도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7. 책 속에서 한국 여자들을 평가한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이민자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나요?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이 고단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낯선 곳에서 적응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는 한편,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등 '삼중고'를 겪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한국계 이민자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모께서 종종 일러주듯, 애 쓰며 고생을 해도(우리 가게가 그랬듯이)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백만장자가 됐든, 아이들을 하버드에 보냈든 간에 상관없이 또는 가족을 위해서도, 미국 역사를 위해서도, 세계 앞에 나선 일종의 한국 홍보 사절단으로서도, 한국계 이민자들이 특별하고 놀라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점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마이 코리안 델리>의 영화 계획, 당신의 다음 책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마이 코리안 델리>는 몇 년 전에 이미 영화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사이 제작사 사정이나 시나리오 문제로 늦어지고 있는데, 아직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방송국과 얼마 전부터 시트콤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지금 미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문화를 컨셉으로 하는 시트콤인데, 아직 다문화 가정 얘기는 나온 적이 없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 무슨 책을 쓰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상하는 게 꽤 여럿 있긴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은 없습니다. 가끔 한국인 처가와의 육아 얘기를 쓸 생각이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 계획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만큼 재미있게 쓸 자신이 없거든요. (웃음) 
     
    

 (인터뷰 및 사진 제공 :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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