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주길.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작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대부분의 것에 흥미가 없지만 작고 숨겨지고 사라져 가는 것에는 좀 흥미가 있다. 그런 것을 쓰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고를 고쳐 쓰고 있던 어느 추운 겨울밤,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 밤 우리는 총을 든 군인들과 군인이 겨눈 총부리와 거리로 진격하는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을 보았다. 그 밤 잠들지 못하고 떨면서 보았다. 똑똑히 보았다.
그 밤 이후 지금도 나는 늦은 밤 이유 없이 가슴 두근거리며 뒤척이고 종종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그 밤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기에, 그 밤의 일이 다시 일어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내 고양이들이 자는 숨소리에 안도하며 나는 눈물을 닦고 잠을 청한다.
오랫동안 묻어 둔 원고를 다시 꺼내든 이유를 나는 알게 되었다. 폭력의 실체를 말하고 싶다거나 내게 폭력에 맞설 힘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흉포하고 잔인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며 살아남고자 연대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였다.
무섭고 슬플 때마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응원봉의 불빛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 렌과 위령, 나기도 함께 노래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고 보았고 들었다. (…)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고 쓰고 싶고 그치지 않고 쓸 것이다.
도서관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도서관은, 그 안의 책들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도서관, 작은 책방과 책방을 찾는 고양이들, 검푸른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노래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 작고 상냥한 세계에 귀 기울이는 총명하고 씩씩한 소녀들, 그들은 마음을 나누지만 각자 비밀 하나쯤은 간직하며 서로의 비밀을 존중한다. 어쩌면 그렇게 세상은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작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다정한 마음으로.
헤카테라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과 닮았다. 혹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일일 수도 있다. 헤카테는 지구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행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카이라는 명칭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 나오는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소년, 카이에서 따왔다. 일곱 겹 깔개를 깐 마루 밑, 일곱 겹의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갇혀 있던 아이의 이야기는 자카리아스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에 나온다. 둘 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동화다. 좋아하는 것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