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맛난 음식을 손수 해서 먹여 주시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려 그들에게 받아먹었던 모든 것들이 그립다. 10여 년 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돌아가셨을 때 이젠 어머니가 보내주던 밑반찬들을 하나도 맛볼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철마다 갈무리해 두었다가 보내주곤 했던 온갖 해산물이며 된장, 고추장 걱정을 하는 내게 여동생은 이런 철딱서니 없는 인간을 봤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안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걸. 어머니를 잃은 마당에 음식 타령이라니.
돈 주고 사 먹으면 되잖아.
뜸을 들인 후에 여동생이 꽥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대고 사 먹는 거랑 엄마 건 다르단 말이야, 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 새겨진, 오감이 기억하는 음식이 그립다. (…)
2020년 12월
가끔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이 나를 제외한 채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내가 없다고 시간이 제 멋대로 멈추거나 기다려주는 건 아니니까.
종종 관계의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사소한 밤들」을 발표할 때는 사회적인 존재와 근원적인 자아의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존재의 형식과 질서,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자아들은 과연 행복한가.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과거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가는 동안은 과거가 현재이고 미래이지 않을까. 그것이 세 개의 분절로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과연 오래된 미래와 도래하지 않을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불현듯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서 보면 경계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물코를 기워가듯 인류는 그렇게 코와 코가 맞물려 흘러왔다. 태양도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해 소멸한다는 가설을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는 더욱 오묘한 이야기가 되려나? 집착과 망상을 벗어난 우주적 삶과 죽음 가운데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8월의 어느 날에 만난 폭우를 떠올린다. 낮이 밤과 같이 어두웠던 11월의 어느 날 오후, 센서등 하나 없는 낡은 건물 속으로 들어서며 떠올렸던 8월의 폭우. 폭우가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한낮도 밤과 같이 어두웠음을 기억한다.
여기에 실린 단편 작업을 하고 발표하는 동안 몇 해가 지났다.
망설이며 먼저 보냈거나 과감하게 던져버리지 못한 관계들의 여정이다.
돌아보면 문득 내 안에 쌓인 나도 모르는 시간들이 두려워진다. 책을 엮어준 삶창에 감사드린다.
여덟 편의 작품을 묶는다. 시차를 두고 발표한 작품을 모아 놓고 보니, 내가 사로잡혀 있던 세계가 하나로 읽힌다. 각각의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내러티브에는 ‘죽음’의 서사가 깔려 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한쪽으로 기울 듯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죽음을 겪는 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니 결국은 삶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불쑥불쑥 울리는 부고 메시지를 접하는 일이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어느덧 청춘 시절은 지났다고 말하기가 아프지만, 순리를 거스를 순 없다. 우리는 늘 그와 같은 프로세스로 존재해 왔으니까.
유명한 책의 저자인 한 물리학자는 그의 저서에서 우주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면 원래 ‘죽어 있는 상태’가 정상이라고 했다. 사건은 ‘살아 있음’이라고. 죽은 세계에서 끊임없이 새 별이 탄생하는 과정이 우주의 질서라고. 측량할 길 없는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겪는 슬픔이나 고통은 커다란 사건일 수밖에 없어서 끊임없이 노래하는지도 모른다.
첫 책을 내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한 권씩 책을 낼 때마다 삶의 임계점 앞에 선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꽃다지의 노랫말처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지만, 바다가 얼마나 깊은 줄 모른 채 그 바다에 몸을 적셨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절에도 눈앞에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작은 걸음으로 ‘나’를 찾아가는 길이, 이 세계와 만나는 길이 나에게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감히 고백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위안해 본다. 그리고 모두에게 행복한 나날들을 만나시라고 빌고 싶다.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앞, 좁은 골목길은 여전히 어둡다.
이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걷는사람’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더불어 한 번도 「작가의 말」을 쓰면서 불러 본 적 없는 나의 가족에게 더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2025년 여름
‘무엇’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육안으로 감지되는 세계 너머 우리가 읽지 못하는 세계의 비애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지점까지 닿게 된다. 우주가 신비롭다 하고, 생명이 경이롭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까? 한 편의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바다에서 별이 된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야기 속에 직조된 두희의 엄마가 우리 모두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걸 우회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열망과 다시 잡지 못할 사랑의 이름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이지 않을까. 내 속엔 하나이지만 수천 개의 엄마가 살고 있다. 아버지라 불러도 좋고, 혹은 너라고 불러도 좋을 이름들! 가난하고 힘들고 아프고 배부를 때조차도 우리는 꼭 부르고 싶은 이름 하나를 끝까지 소망하는 구조적인 영혼을 지녔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건 없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말이다.
(…) 나에게 맛난 음식을 손수 해서 먹여 주시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려 그들에게 받아먹었던 모든 것들이 그립다. 10여 년 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돌아가셨을 때 이젠 어머니가 보내주던 밑반찬들을 하나도 맛볼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철마다 갈무리해 두었다가 보내주곤 했던 온갖 해산물이며 된장, 고추장 걱정을 하는 내게 여동생은 이런 철딱서니 없는 인간을 봤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안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걸. 어머니를 잃은 마당에 음식 타령이라니.
돈 주고 사 먹으면 되잖아.
뜸을 들인 후에 여동생이 꽥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대고 사 먹는 거랑 엄마 건 다르단 말이야, 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 새겨진, 오감이 기억하는 음식이 그립다. (…)
2020년 12월
첫 창작집을 묶습니다. 부족했던 첫 장편소설을 낸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책을 묶는다는 건 생각할수록 몸이 가려운 일입니다. 아니, 늘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듯한 초라한 영혼이 가려운 느낌이랄까요. 애초의 열정과 사랑, 열망이 제대로 녹아들었는지 의아스럽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옷을 벗습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을 쓰던 때의 시간들이 최소한 누군가에게는 가닿을 수 있으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어봅니다. 그마저도 없다면 고독하고, 상처투성이인 삶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어리석게도 소설이 나를 구원해 줄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것 역시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차피 삶이 가는 대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목젖이 보일 만큼 유쾌하게 써낼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면서요. 나를 넘어서는 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만나는 길은 바로 그 지점일 듯싶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시대에 항거했던 게 벌써 반백 년 전 일이다. 그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꼬마에 불과했던 나는 이제 반백 년 이상을 살아왔다. 시간은 참 요령부득의 ‘물건’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만질 수도, 색깔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물건.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보지도 만지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나의 부모님이 그렇고, 형제자매들도 그렇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던 이들 중의 누군가도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라는 물건은 애초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없는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철학적인 사유랄 것도 없이 존재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인 죽음이든 사회적인 타살이든 죽음이 깃들 수 있는 시간이란 물건은 한편으론 살아 있는 우리들에겐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놓치면 안 되는 어떤 것의 총체. 그 속에 내가, 혹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죽음들이 있고, 그 거대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태일 열사다. 「미조」
를 작업하면서 나는 줄곧 그 하나의 끈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오래된 시간의 파편을 꺼내 틀을 만들고 속을 채워 가는 동안 묵은 울음이 출렁거려 몸이 무거웠다. 미조가 영원히 우리 곁에 살고 있듯 전태일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