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벗어나고 싶다면 고통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일 텐데, 가령 이런 식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을 보되, 그 외양과 윤곽선을 보지 말고 그 속성을 본다. 꽃을 보되, 그 외양과 윤곽선을 보지 말고 그 속성을 본다. ‘나쁜’ 식물학자는 꽃의 외양을 본다면, ‘좋은’ 식물학자는 꽃의 구조와 속성, 물 자체를 본다. 그래서 ‘좋은’ 식물학자는 구름에서도 꽃을 보고, 파도에서도 꽃을 본다. 오브제의 내적 구조를 추출하는 순간, 만물은 그 모든 것이 ‘다른 같은 것’이 된다. 감각들(프랑스어로는 복 수의 sens)의 총화와 그 총화성 속의 자리바꿈, 또는 그에 따른 변형과 변신으로 어느 찰나적 순간 응축되는 것만이 의미(프랑스어로는 단수의 sens)다. 그래서 의미는 먼저 제시되는 법이 없다. 삶이 의미가 있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았기에 의미가 파생될 뿐이다.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궁극적인 정제이자 압축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그토록 놀랍게 ‘표상’되는지 모른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자신의 몸을, 물 자체를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읽고 나서 이젠 이해했다 하지 말고, 행하는 일로 반드시 넘어가기 바란다. 원인을 들여다봄으로써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극약 처방이 될 수 있으려면, 더 좋다 는 신약新藥을 찾아 떠날 것이 아니라, 자리 이동 하나 없이 눈앞의 똑같은 대상을, 똑같은 사실을, 똑같은 외양을 보면서 전혀 다르게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