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나침반으로 삼아 '바로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큰스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순간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늘 큰스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도 부족함이 많은 저는 실수도 자주 하고 아는 만큼 행하지도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큰스님의 삶과 말씀은 저에게 큰 빛이고 등불이었습니다.
숭산 큰스님이 만일 한국에 계셨더라면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일견 타당할지 몰라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숭산 큰스님이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은 우리가 부정하고 있는 '한국의 힘', '한국의 과거'입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나침반으로 삼아 '바로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큰스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순간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늘 큰스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도 부족함이 많은 저는 실수도 자주 하고 아는 만큼 행하지도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큰스님의 삶과 말씀은 저에게 큰 빛이고 등불이었습니다.
숭산 큰스님이 만일 한국에 계셨더라면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일견 타당할지 몰라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숭산 큰스님이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은 우리가 부정하고 있는 '한국의 힘', '한국의 과거'입니다.
이 시대 ‘삼성 정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건희 회장이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고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2년 전 월간 <신동아>에 ‘경제사상가 이건희’ 연재를 시작했다. 고인의 발자취를 파고들어 갈수록 무에서 유를 만든 리더십과 비전, 철학에 심취했다. 깊이 감동했다.
세계 1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경영진, 연구직, 생산직, 사무직 월급쟁이들의 도전과 헌신, 열정이 떠오르는 장면 장면마다 자주 숙연해졌다. 온 국민이 반도체의 ‘반’ 자도 모르던 시절에 오로지 미래만 생각하며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호암 이병철 회장의 혜안과 용기 그리고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불살랐던 이건희 회장의 비범하고 탁월한 의사 결정과 추진력에 집필 내내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나온 책 《경제사상가 이건희》가 고인의 삶과 철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책은 제목 그대로 반도체에 초점을 맞춰 썼다.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는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을 무모하게 밀어붙여 성공시킨 피 말리는 도전의 역사이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1위 자리를 30년간이나 지켜왔다. 글로벌 경제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업과 제품들이 수두룩한데 세계시장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압도적 지배력을 가진 제품을 대한민국 회사가 만든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삼성은 세 번 망할 뻔했던 회사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삼성이 반도체 사업으로 세 번 망할 뻔했다”고 했다.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오가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도체 전쟁을 이끌며 얼마나 피가 말랐을지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잘 가늠이되지 않는다.
호암과 이 회장은 언제 다시 호황이 올지 모르는 지옥 같은 터널을 지나면서도 공장을 짓고 인재를 모았다. 위암을 이겨냈던 호암은 다시 당신의 몸(폐)을 습격한 암세포와 투병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 기술 개발을 독려하며 공장 건설에 매진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강호들이 대전을 벌이던 메모리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이 유일하게 승리해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쯤 이건희 회장도 암진단을 받는다. 그야말로 초인적 의지로 신명을 바쳐 일했던 두 분이었다.
내년 2023년은 호암이 첨단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지 꼭 40년 되는 해이다. 또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지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호암과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교훈을 얻어보자는 데 있었다.
‘삼성 정신’ 없는 삼성을 보는 느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삼성의 DNA에 녹아 있는 강력한 오너십, 헌신적인 팔로워십, 초스피드 경영, 절묘한 타이밍 경영, 불황을 버티는 힘이 발견된다. 이는 현재 닥친 위기들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산업구조도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도 바뀐다. 그에 따라 각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내용도 바뀐다.
기업은 시대 변화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시대 삼성의 리더십은 호암이나 이 회장 때와는 당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삼성은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한 뒤 사흘 만에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4년간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인공지능·차세대 통신)에 45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가슴 뛰게 하는 원대한사업 구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삼성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많은 매체들이 장밋빛 계획에 박수를 치며 그 내용을 해설하는 데 보도의 초점을 맞췄지만 삼성이 발표한 원문을 보면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긴장감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미・중의 견제와 추격이 거세지고 있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상황… 삼성의 행보는 간단치 않을 전망…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 변화,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등등의 표현으로 고뇌와 위기의식이 강조되어 있다. 이어 결론 격으로 ‘앞으로 5년은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되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쇠락을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지금 삼성 내부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삼성반도체에 대한 걱정과 위기의식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최초·최고는 삼성’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도 망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삼성도 잘못하면 망할 수 있다”고 위기를 강조하며 ‘신경영 정신으로 진정한 구조개혁을 해달라”고 했다. 삼성의 역사는 끝없는 위기와 치열한 대응의 역사였다.
안타깝게도 지금 삼성에는 변화를 향한 뚜렷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투자와 기술 얘기들은 많이 하지만 경영진, 직원, 국민들을 설득하는 시대적 화두가 없다. ‘삼성 정신 없는 삼성’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작금의 삼성은 이 숙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 변화를 읽고 있는 세계의 현자들을 두루 만나 대화를 나눠서 통찰을 높이고 그 내용을 임직원들과 공유하는 ‘삼성 정신 정립’의 과정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집필을 위해 만났던 전직 CEO들은 호암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인재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말했다. ‘기술과 투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핵심 인재’ 영입에 최고 경영진이 총력을 경주해야 할 때라고 본다. 초격차 기업은 초격차 인재가 기본이다.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 인도, 베트남, 대만의 초일류 인재 영입에 혼신의 노력이 필요
할 듯싶다.
특단의 분위기 쇄신도 필요해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삼성맨들로부터 뭔가 주눅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오랜 기간 지속된 반기업, 반삼성 분위기를 의식한 심리적 위축감일 수도 있지만 1등에 안주하며 형성된 수직적, 관료적 문화에 대한 답답함으로도 느껴졌다.
요즘 젊은 직원들에게 과거 세대와 같은 사명감, 열정, 도전과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회사나 국가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성취가 우선시되는 시대이다. 시대가 바뀌고 젊은이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선대 회장들이 ‘질타와 독려, 도전’의 리더십이었다면 현재의 경영자는 ‘소통과 동기부여’의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폐쇄적이고 신비화된 리더십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다원적인 리더십 말이다.
50대 문송이 아줌마의 반도체 입문기
책을 쓰면서 반도체가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를 넘어 핵심 안보 자산이 되었음을 새삼 절감했다. 미국과 중국이 왜 반도체 기술 패권을 놓고 각축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지정학(地政學)과 더불어 기술이 중요해지는 ‘기정학(技政學)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대만의 안보도 군(軍)이 아니라 세계 최고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달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실리콘(반도체) 방패’가 안보로 직결되고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TSMC가 멎으면 미국 첨단 반도체 회사들도 멈추기 때문이다.
기술 중심으로 신냉전의 국제질서 판이 짜여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른바 ‘칩4 동맹’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반도체 분업 체제의 중심국가로 대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강대국에 휘둘리는 새우 신세가 아니다. 국제질서의 주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한 것이다. 건국 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다. 반도체 덕분이다.
전형적 ‘문송이(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 기술과 반도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당치 않은 도전이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지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기술을 설명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하드코어 MBA과정을 이수한 느낌이다.
이 책이 대한민국이 반도체 선도국가로 가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했으면 한다.
이건희 회장의 2주기(10월 25일)를 앞두고
2022년 10월
이 시대 ‘삼성 정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건희 회장이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고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2년 전 월간 <신동아>에 ‘경제사상가 이건희’ 연재를 시작했다. 고인의 발자취를 파고들어 갈수록 무에서 유를 만든 리더십과 비전, 철학에 심취했다. 깊이 감동했다.
세계 1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경영진, 연구직, 생산직, 사무직 월급쟁이들의 도전과 헌신, 열정이 떠오르는 장면 장면마다 자주 숙연해졌다. 온 국민이 반도체의 ‘반’ 자도 모르던 시절에 오로지 미래만 생각하며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호암 이병철 회장의 혜안과 용기 그리고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불살랐던 이건희 회장의 비범하고 탁월한 의사 결정과 추진력에 집필 내내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나온 책 《경제사상가 이건희》가 고인의 삶과 철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책은 제목 그대로 반도체에 초점을 맞춰 썼다.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는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을 무모하게 밀어붙여 성공시킨 피 말리는 도전의 역사이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1위 자리를 30년간이나 지켜왔다. 글로벌 경제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업과 제품들이 수두룩한데 세계시장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압도적 지배력을 가진 제품을 대한민국 회사가 만든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삼성은 세 번 망할 뻔했던 회사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삼성이 반도체 사업으로 세 번 망할 뻔했다”고 했다.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오가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도체 전쟁을 이끌며 얼마나 피가 말랐을지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잘 가늠이되지 않는다.
호암과 이 회장은 언제 다시 호황이 올지 모르는 지옥 같은 터널을 지나면서도 공장을 짓고 인재를 모았다. 위암을 이겨냈던 호암은 다시 당신의 몸(폐)을 습격한 암세포와 투병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 기술 개발을 독려하며 공장 건설에 매진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강호들이 대전을 벌이던 메모리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이 유일하게 승리해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쯤 이건희 회장도 암진단을 받는다. 그야말로 초인적 의지로 신명을 바쳐 일했던 두 분이었다.
내년 2023년은 호암이 첨단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지 꼭 40년 되는 해이다. 또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지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호암과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교훈을 얻어보자는 데 있었다.
‘삼성 정신’ 없는 삼성을 보는 느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삼성의 DNA에 녹아 있는 강력한 오너십, 헌신적인 팔로워십, 초스피드 경영, 절묘한 타이밍 경영, 불황을 버티는 힘이 발견된다. 이는 현재 닥친 위기들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산업구조도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도 바뀐다. 그에 따라 각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내용도 바뀐다.
기업은 시대 변화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시대 삼성의 리더십은 호암이나 이 회장 때와는 당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삼성은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한 뒤 사흘 만에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4년간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인공지능·차세대 통신)에 45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가슴 뛰게 하는 원대한사업 구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삼성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많은 매체들이 장밋빛 계획에 박수를 치며 그 내용을 해설하는 데 보도의 초점을 맞췄지만 삼성이 발표한 원문을 보면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긴장감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미・중의 견제와 추격이 거세지고 있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상황… 삼성의 행보는 간단치 않을 전망…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 변화,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등등의 표현으로 고뇌와 위기의식이 강조되어 있다. 이어 결론 격으로 ‘앞으로 5년은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되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쇠락을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지금 삼성 내부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삼성반도체에 대한 걱정과 위기의식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최초·최고는 삼성’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도 망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삼성도 잘못하면 망할 수 있다”고 위기를 강조하며 ‘신경영 정신으로 진정한 구조개혁을 해달라”고 했다. 삼성의 역사는 끝없는 위기와 치열한 대응의 역사였다.
안타깝게도 지금 삼성에는 변화를 향한 뚜렷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투자와 기술 얘기들은 많이 하지만 경영진, 직원, 국민들을 설득하는 시대적 화두가 없다. ‘삼성 정신 없는 삼성’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작금의 삼성은 이 숙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 변화를 읽고 있는 세계의 현자들을 두루 만나 대화를 나눠서 통찰을 높이고 그 내용을 임직원들과 공유하는 ‘삼성 정신 정립’의 과정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집필을 위해 만났던 전직 CEO들은 호암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인재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말했다. ‘기술과 투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핵심 인재’ 영입에 최고 경영진이 총력을 경주해야 할 때라고 본다. 초격차 기업은 초격차 인재가 기본이다. 미국, 일본, 유럽은 물론 인도, 베트남, 대만의 초일류 인재 영입에 혼신의 노력이 필요
할 듯싶다.
특단의 분위기 쇄신도 필요해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삼성맨들로부터 뭔가 주눅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오랜 기간 지속된 반기업, 반삼성 분위기를 의식한 심리적 위축감일 수도 있지만 1등에 안주하며 형성된 수직적, 관료적 문화에 대한 답답함으로도 느껴졌다.
요즘 젊은 직원들에게 과거 세대와 같은 사명감, 열정, 도전과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회사나 국가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성취가 우선시되는 시대이다. 시대가 바뀌고 젊은이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선대 회장들이 ‘질타와 독려, 도전’의 리더십이었다면 현재의 경영자는 ‘소통과 동기부여’의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폐쇄적이고 신비화된 리더십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다원적인 리더십 말이다.
50대 문송이 아줌마의 반도체 입문기
책을 쓰면서 반도체가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를 넘어 핵심 안보 자산이 되었음을 새삼 절감했다. 미국과 중국이 왜 반도체 기술 패권을 놓고 각축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지정학(地政學)과 더불어 기술이 중요해지는 ‘기정학(技政學)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대만의 안보도 군(軍)이 아니라 세계 최고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달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실리콘(반도체) 방패’가 안보로 직결되고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TSMC가 멎으면 미국 첨단 반도체 회사들도 멈추기 때문이다.
기술 중심으로 신냉전의 국제질서 판이 짜여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른바 ‘칩4 동맹’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반도체 분업 체제의 중심국가로 대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강대국에 휘둘리는 새우 신세가 아니다. 국제질서의 주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한 것이다. 건국 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다. 반도체 덕분이다.
전형적 ‘문송이(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 기술과 반도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당치 않은 도전이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지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기술을 설명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하드코어 MBA과정을 이수한 느낌이다.
이 책이 대한민국이 반도체 선도국가로 가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했으면 한다.
이건희 회장의 2주기(10월 25일)를 앞두고
2022년 10월 허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