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세 곳의 궁 앞과 고가도로 하나, 두 개의 터널을 지납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걸어서 집까지 갑니다. 나는 가끔 알고 싶습니다. 집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시를 쓰는 일은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 어디론가 가는 일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무얼 기다리는지 잊어버리는 일이며 혼자가 되는 일이나 건너편의 나를 우두커니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일이라고 믿습니다. 열두 해 동안 오가며 그렇게 시를 써왔습니다. 도중에 그만둘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시를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저의 자리는 박수를 치는 쪽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그래도 시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
하나 꼭 받는다면, <현대문학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문학상을 받아온 시인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면 누구나 그렇겠지요. 이제 다시 저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얻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수상소감
프롤로그(부분)
지금까지 거의 매일 아침 나는 출근 인사를 썼다. 한 주 두 주를 지나 한 달 두 달 이어져 한 해 두 해 쌓여갔다. 착각이 아니라면, 하나둘 나의 출근 인사에 화답을 해주었다. 물론 인사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이따금 이와 같은 글쓰기 차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매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대답해야겠다. 그러니까, 내 앞에 누가 있어 그가 똑똑 똑똑똑 노크를 하고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고. 그런 환대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글쓰기라고. 이뿐이라고.
당신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나는 출근을 사랑하게 되었다. 본말이 전도된 듯하지만, 결론은 다르지 않다. 사랑이다. 출근을 향한 나의 사랑은, 매일 아침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시작된다. 그날의 기온, 습도, 구름의 모양을 살피거나 버스정류장에 서서 보고 듣는 것을 세심하게 대하는 일도 사랑이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지는 모든 우연의 풍경은 어떠한가. 이 역시 나에겐 사랑이다. 귀에 꽂아놓은 이어폰으로 울리는 음악도, 잠시나마 동행이 된 승객들의 이모저모도, 느닷없이 찾아오는 기억의 편린도 출근의 일부이며 사랑이다. 서점에 도착해 전등을 밝히고 커피를 내리고 연필을 깎는 동안 나는 이 순간이 내가 살아 있음을 입증하며 도리 없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지나친 낙관이고 꾸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어찌 나라고 괴로운 아침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 역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출근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직전, 이른바 가능성이므로. 그러니 출근 인사는, 내 입장에서 사랑의 인사이기도 한 것이다.
―유희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