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하고 불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
인생은 덧없는 허무가 가슴 시리게 엄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를 걸고 글 쓰는 중노동을 그만두지 못한다.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되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다. 재미없는 진실은 소설이라고 말하기 어렵거니와 갈수록 독자를 잃어가는 시대에 더욱 그렇다.
선택적 정의라거나 공정, 상식과 진실에 대한 사회적 객관성의 타락, 가공할 자본주의의 지배, 지독한 이기주의에 대한 혐오, 가진 것 없는 자의 소외와 슬픔, 자기 시대에 책임을 지는 것은 작가의 사명이리라. 그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부당한 권력이 저지른 범죄와 어둠 속에 묻힌 진실을 밝히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들에 맞선 과감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비록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지만 남과 북의 피붙이들이 헤어진 현실은 분명히 불행한 민족의 하나이다. 그 통한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작가는 분단 민족에 반드시 기여해야 한다.
민족에 대한 사명과 애정,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인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호스피스 병동의 운명적인 비극, 인간이 떠난 자리에 생명이 꽃피는 사랑, 전 생애를 통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망향의 생애, 신비의 새(極樂鳥)를 찾아다니는 여류화가의 소시민적 환상, 생동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운명들, 세태를 흐리는 사악한 탐욕 속에 고요한 양심으로 차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화, 부당한 횡포에 죽음으로 맞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일기를 상재上梓한다. 독자들이 떠나는 문학의 고독을 이기기 위하여.
2022년 겨울
북한산방에서
사이버 공간은 분명히 드넓은 정보의 세계이지만 하나의 새장과 같은 곳이다. 양회벽과 마법의 상자에 갇혀 푸른 창공을 훨훨 날지 못하고 자연의 야성을 잃어버린 익명의 새들!
이 소설은 익명으로 얼굴 없는 유령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진부한 속성과 사람들 속에서 사람을 느끼지 못하고 처절한 고독이 불러오는 사랑의 갈망과 자신도 모르게 소중한 삶의 진정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