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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인숙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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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물속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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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를 안는다

'그래서 너를 안는다'는 제목은 당시 출판사와 합의해서 붙였던 제목입니다. 제목을 정하면서 오래 고심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제목이군요. 제목을 중얼거리고 있다 보면,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위안이 슬몃 다가옵니다. 오래 고치고, 후기를 쓰기까지도 오래 망설이다가 지금 또다시 혼자 제목을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서 너를 안는다…. 누군가가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나간 기억들이 얼마나 따듯해질지…. 느닷없이 10년 전에 내가 쓰던 엑스티 컴퓨터가 떠오릅니다. 툭하면 파일이 날아가버려 본체를 끌어안고 수리점을 들락날락해야 했던 그 형편없던 컴퓨터…. 그래도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썼던지. 무엇이든 송두리째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합니다. 10년 전의 엑스티 컴퓨터처럼 촌스러운 이 책을 그래서 머뭇머뭇, 그러나 소중하게 끌어안습니다.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내게 이 소설들은 시간이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 거기, 멈춰 있는 것. 조용한 문장을 쓰고 싶었으나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혼자 쓰는 글보다 혼자 하는 말이 더 많아졌다. 질문들. 부당한 것에 대해. 여기, 나, 사람들.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사소한 히어로. 세상을 구원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구원할 필요가 없는. 빈집의 쓸쓸한 사람. 찢어진 플래카드 아래에 서 있는 할머니. 기억이 찢겨나간 여자. 그 모든 것이 흔들리는 영원한 밤…… 그래도 그렇지, 더 재밌는 얘기도 있겠지 하며 내 책의 표지를 들여다보는 한 사람. 나의 이야기들이다. 첫 소설집의 소설을 쓰던 아주 오래전에, 시위 현장에 있었던 적이 있다. 구호를 선창하던 사람이 너무 절박한 나머지 자기 고향 사투리를 써서 구호를 외쳤었다. ‘……뭐땀새…… 그러는지…… 대답하라.’ 뭐땀새의 앞뒤는 다 잊어버렸다. 그 구호를 따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고요가 내려앉았던 시위 현장, 그리고 뒤늦게 터져나오던 웃음소리가 기억날 뿐이다. 땡볕이 내리쪼이던 한낮, 그 절박한 시위 현장의 조용한 웃음소리. 그러니까, 뭐땀새…… 왜…… 무엇 때문에…… 지난 시간들 속 나의 혼잣말들. 감사드린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그들도 모르게 문득 거리에 멈춰 서 있던 그 모든 분들께.

바다와 나비

올해는 내가 문단에 등단하고 스무 해를 넘기는 해다. 내가 처음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그때 나는 내게 20년 후가 있으리라고 믿을 수도 없던 스무 살이었다.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덜컥 이름부터 갖게 되었던 그때, 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 시절의 두려움이 지금도 악몽처럼, 생생하다. 그때에 나는, 내가 글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이 20년 동안 내가 미련하게 글만 쓴 최초의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쓸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안녕, 엘레나

집 안에 화분이 하나 있다. 몇년 전에 화분이 처음 집으로 올 때는 이름표가 꽂혀 있었다. 외우기 어려운 꽃이름이 아니라고 여겨 얼마 후 그 이름표를 빼내버렸는데, 쉽게 기억해 잊어버리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이름을 지금은 잊어버렸다. 내 허리에도 키가 미치지 않을 만큼 작은 나무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화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으니 무엇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 저것을 나무라 불러도 좋은지, 화초라 불러야 하는지, 턱없이도 꽃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몇년 동안 꽃을 피워본 적이 없으니, 꽃이라 부르면 안될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큰오빠의 거래처 중에 꽃과 나무를 파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오빠는 박스를 납품하는 날 크고 작은 화분들을 얻어와 베란다에 늘어놓고 동생들을 기다렸다. 동생들은 오빠의 집에 가서 오만가지 꽃들을 가져왔다. 주로 꽃잎이 활짝 핀 작은 꽃들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내 좁은 집 안이 꽃으로 활짝 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화초를 잘 가꾸는 내 어머니와는 달리, 그리고 역시 화초를 좋아하는 내 오빠와는 달리, 나는 그쪽으로 영 소질이 없었다. 물을 넉넉히 주면 늘어져 죽고, 물을 아껴 주면 말라 죽었다. 며칠이면 그냥 끝장이었다. 꽃을 받아올 때의 화사한 기쁨이 큰 만큼, 죽은 꽃을 내다버리는 기분도 만만치 않게 고약했다. 덜 죽은 꽃을 내다버리는 것이 죄라 여겨져, 꽃은 집 안에서 다 죽을 때까지 말라비틀어졌다. 살리려고 기를 쓰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내다버려도 죄스럽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화분, 뭐라 이름불러야 할지 모르는, 나무인지 무엇인지가 내 집 안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다. 놀랍게도 저것은 물을 안 줘도 살고, 물을 줘도 산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바라봐도 살아 있고,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에 깜짝 놀라 한 바가지 물을 쏟아부어줘도 물 먹기 전이나 달라지는 것도 없다. 기억이 맞다면, 집에 온 후로 자라지도 않았고 잎을 떨군 적도 없다. 그래서 가끔 툭툭 건드려본다. 너 살아 있는 건 맞니? 물어보는 심정이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자꾸 그 화분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미안해진다. 그것도 아주 많이 미안하다. 같은 집에서, 우리는 너무 무심하구나. “말이 길어지면 허접한 법이네”라고, 이 책에 실린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말했었다. “마음으로 안되면 다행히 말이란 게 있으니, 말로써 용서한다 해라”라고 또다른 주인공을 통해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편을 쓸 때는 알지 못했는데, 모아보니 보이는 것이 있다. 시간이다. 시간 속에서, 내가 놓지 못하고 있는 말들이다. 놓지 못하되 어째 허접스러운 것 같고, 미련이 남는 말들이다. 간결해지기를 바랐으나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가능한 소망이겠으나, 말은 사라지고 글만 남을 수 있기를 꿈꾸기도 했었다. 말도 사라지고 글도 사라지기를 바라지는 못했으니, 아직 도에 이르지는 못했거니와 도를 꿈꾸지도 못하는 것이다. 농담이다. 도라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 나무에게도 무심한 나는, 무엇에는 무심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절대로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다행인 것은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또 쓰는 모양이다. 혹은 또 중얼중얼 말하거나. 감사해야 할 사람은 많다. 감사해야 할 꽃과 나무, 흙과 물, 바람과 하늘, 그리고 기억 들도 많다. 그러나 줄여야겠다. 이것이 고작 나의 간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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