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마구를 아는 독자라면 그에게서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초기작’에도 사라마구의 인장은 확실하게 박혀 있어, 아니, 오히려 더 실험적이어서, 평소 그의 스타일이 입맛에 맞았던 독자에게는 이것이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면 알랭 드 보통의 관심은 언제나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이었다. 사랑 이야기도, 여행 이야기도 늘 일상에서 출발해서 일상으로 돌아오고, 철학이나 문학적인 사유를 할 때도 일상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 관계가 그의 사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 정영목(옮긴이)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고정된 틀과 규범에 가둘 수 없는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둘이 서로 내치는 동시에 삼키고 어우러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외피를 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 문명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고정된 의식과 생활의 얇은 막이 계속 찢기고 침범당하면서 어떤 원초적인 미지의 것과 섬뜩하게 만나는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 노년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자신에게 결정적인 화인을 남긴 현자을 다시 찾아간다는 설정은 여러 면에서 질퍽거릴 소지가 다분함에도, 설령 주인공은 질퍽거릴지언정 작가의 시선은 그야말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가혹하다. 그렇다고 뭔가를 넘어선 듯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토록 엄정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푸른빛이 감도는 강철의 잿빛 아름다움이 느겨진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바다 역시 결국 그런 빛깔 아니었던가ㅡ어쨌든 옮긴이의 머릿속에는 그런 빛깔로 남아 있다. - 정영목 (옮긴이)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도 반짝이는 것은 웃음과 눈물이 부딪히는 순간 번득이는 절묘한 빛이다. 특히 웃음은 이 작품을 빼어난 희비극으로 끌어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슬랩스틱에서부터 교묘한 말장난에 이르기까지 웃음의 온갖 요소들을 두루 만나며 방 안을 뒹굴 수 있으니, 특히 웃음을 잃은 지 오래된 이웃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게다가 이 웃음은 눈물과 등을 맞대고 있어 따뜻한 위로가 되기까지 하므로.
“손더스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읽고, 배우려 하고, 깨달음에 기뻐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존중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와 함께 소설 일곱 편을 읽다 보면, 무슨 목적으로 이 책을 펼쳤든 ‘읽기, 쓰기, 그리고 삶’이 결국 한 몸임을 깨달을 것이고, 바라건대, 책을 덮을 때는 펼칠 때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육십 년 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때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독일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증거의 하나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우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것, 우리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이 책에 등장하는 책도둑 리젤 메밍거, 그녀의 친구 루디 슈타이너, 그녀의 양부모 한스와 로바 후버만 부부 등은 다른 어떤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혹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을 창조해낸 것은 물론 작가 마커스 주삭의 뛰어난 역량이지만, 이 인물들의 삶이 우리와 연계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우리가 이들을 보며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일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주삭은 전통적인 내러티브로 이 인물들에 다가가지 않는다. 내레이터 자체가 뜻밖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논평까지 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고, 감각들을 자유자재로 뒤섞는 표현들을 구사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낯선 악기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뜻밖에도 가슴 속의 저음 현을 강하고 깊게 울리고 지나갈 때처럼. - 정영목 (옮긴이)
우리는 과연 육십 년 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때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독일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증거의 하나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우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것, 우리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이 책에 등장하는 책도둑 리젤 메밍거, 그녀의 친구 루디 슈타이너, 그녀의 양부모 한스와 로바 후버만 부부 등은 다른 어떤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혹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을 창조해낸 것은 물론 작가 마커스 주삭의 뛰어난 역량이지만, 이 인물들의 삶이 우리와 연계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우리가 이들을 보며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일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주삭은 전통적인 내러티브로 이 인물들에 다가가지 않는다. 내레이터 자체가 뜻밖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논평까지 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고, 감각들을 자유자재로 뒤섞는 표현들을 구사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낯선 악기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뜻밖에도 가슴 속의 저음 현을 강하고 깊게 울리고 지나갈 때처럼. - 정영목 (옮긴이)
마지막 작품인 <카인>이 나오기 1년 전인 2008년에 나온 <코끼리의 여행>은 사라마구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코끼리의 여행, 16세기에 포르투갈의 동 주앙 3세가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선물한 코끼리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라마구가 덧붙인 말에도 나오지만, 잘츠부르크 여행에서 우연히 본 조각품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왠지 좀 싱겁지 않은가? 사라마구인데! 그렇다, 물론 그게 다일 리가 없다. 수백 년 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쓴 것 자체는 뜻밖이지만, 그렇다고 사라마구가 역사소설을 쓸 리야 없지 않은가. 그 반대다. 사라마구는 기록된 역사적 사실 자체에서는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우화적인 소설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