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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김성동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7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보령 (전갈자리)

사망:2022년

최근작
2024년 9월 <미륵뫼를 찾아서>

눈물의 골짜기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을 소설가로 만들어준 사람은 우습게도 대천경찰서 대공과 사찰계 형사였으니, 1958년 찔레꽃머리였습니다. 그때 열두 살 난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소생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옛살라비 떠나 한밭이라는 대처로 부자리를 옮겼던 것인데, 그만 집을 잃어버렸던 것이었지요. 이사한 날 도청 곁 법원청사 앞에 아그려쥐고 앉아 하염없이 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그만 날이 저물었던 것이니,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다는 말인가?’ 길을 잃고 한참을 가리산지리산 하다가 집으로 갔는데, 철 늦은 가죽잠바 걸치고 완강한 어깨에 눈매 사나운 그 사내는 할아버지 잡고 일장훈시를 하던 것이었습니다. “왜 여기로 이사를 왔느냐?”고 물이 못 나게 종주먹을 대다가 누가 찾아오는지 한 달에 한 차례씩 경찰서 대공과에 반드시 자진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지요. 아니면 불고지죄(不告知罪)로 잡아가겠다는 으름장이었습니다. 송진구멍 숭숭 뚫린 송판쪼가리로 두른 울 밖까지 배웅 나간 어린아이를 삵의 눈으로 돌아보며 씹어뱉던 그 한마디 말 이 평생 화두話頭가 되었으니, “붉은씨앗이로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면서 입천장에 적이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끌려가신 채 상기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두남재(斗南才)였다는 말씀이었지요. 일송삼백(日誦三百)이니, 하루에 3백 자를 외워 사흘 만에 책 한 권을 떼어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생봉(鳳生鳳)이요, 용생용(龍生龍)이라구 헸넌듸……. 호부(虎父)에 긘자(犬子) 날 리 웂다던 옛으른 말씀두 증녕 허언(虛言)이더란 말인가…….” 봉황새는 봉황새를 낳고 용은 용을 낳게 마련이며, 범 같은 아비한테서 가히 같은 자식이 태어날 리 없다는 그 말씀이야 물론 원통하고 절통하게 땅보탬시킨 자식을 그리는 애잡짤한 마음이 녹아든 것이겠지만, 도둑처럼 8·15를 맞고 벼락처럼 6·25가 터지면서 생때같은 장차長次 두 자식을 생으로 잃은 그 늙은 유생(儒生)은 그렇게 허희탄식(??歎息)을 하며 빛바랜 창호지로 좀책을 매어주시던 것이었습니다. “문즉인(文則人)이라, 문즉인이요 문긔스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요 글씨는 곧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루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구 또 글씨를 쓸 수 있너니…….” 할아버지 성음(聲音)은 가느다랗게 떨려 나오던 것이었습니다. “애통쿠나, 하날은 그 재조를 투긔허야 츤재넌 일쯕 데려가시구……. 무지렝이덜만 남어서 시상을 더구나 난세루 맨드넌고녀.” “삼절오장이여.” 저저금 제 투쟁경력을 뽐내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이른바 문민정권이 들어서면서 ‘빵잽이’를 머리로 한 세상에서 말하는 바 ‘민주화인사’들이 모여 곡차일배(穀茶一杯) 하며 씩뚝깍뚝하던 ‘서울의 봄’ 때 이 중생이 한 말이었으니 ‘삼절(三節)’은 나라의 안녕과 인민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침략자와 맞서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그렇게 쪼개져 버린 선원(仙源) 중시조(中始祖) 할아버지와, 경술국치 때 곡기 끊고 자진(自盡)으로 왜제에 앙버티신 증조할아버지와, 왜제 고빗사위와 해방 공간에서 항왜·항미투쟁을 벌이다 꽃잎처럼 떨어져 버리신 아버지를 말하고, 오장(五長)은 모두가 일매지게 평등하고 자유로와서 행복한 삶을 살자던 ‘백일천하 인민의 나라’에서 이지가지 위원장을 맡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삼촌과 그리고 진보문인 동아리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소설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이 중생을 말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새 세상을 그리워하며 ‘민들레꽃반지’를 닦던 제 어머니 열반 에 향을 사뤄주신 어른들께 엎드려 큰절 올리나이다.> 어머니를 다비(茶毗) 저쑵던 불구덩이 속으로 반돈짜리 민들레꽃반지 던지며 불렀던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왕생극락하실 “어머니 아버지!”였습니다.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 삶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배고프고, 외롭고, 그리웠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고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보다 더구나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움을 찾아가는 배고프고 외로운 오솔길이 문학인 듯합니다.

만다라

나를 있게 만든 소설 『만다라』는 불교에 입문해 쓴 소설로 20대 젊은 날 방황하면서 겪었던 내 이야기를 담아 낸 것입니다. 물론 그 소설로 인해 불교계에서 쫓겨났지만 그 이야기는 불교가 아니라 방황의 끝을 갈구하는 내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20대 젊은 날의 방황, 그 잿빛 노트에 대한 이야기죠.

염불처럼 서러워서

역사를 생각하며 “삼절오장이여.” 저저금 제 투쟁경력을 뽐내는 자리에서였다. 이른바 문민정권 이 들어서면서 빵잽이를 머리로 한, 세상에서 말하는 바 ‘민주화 인사’들이 모여 한잔 꺾으며 씩둑깍둑하던 자리에서 이 중생이 한 말이었으니- 삼절三節은나라의 안녕과 인민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외적과 맞서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쪼개져 버린 선원仙原할아버지 와, 경술국치 때 자진自盡으로 왜제에 앙버틴 증조할아버지와, 왜제와 해방공간에서 항왜·항미 투쟁을 벌이다 꺾여진 아버지를 말하고, 오장五長은 모두가 똑고르게 행복한 삶을 살자던 인민의 나라에서 이지가지 위원장을 맡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삼촌과 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소설분과위 원장을 맡았던 이 중생을 말한다. 사사로운 집안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같지않게 무슨 조상뼉다귀 자랑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 중생은 시방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그리고 그대로 우리 겨레 가운데서도 양심과 양식을 지켜내고자 애태우던 반넘어 인민대중들이 겪어야만 하였고 겪고 있는 근현대사의 맨얼굴로 된다. (중략) 핏덩어리 앉혀놓고 글을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였다. 벼가 될 것이냐? 피가 될 것이냐? 책을 읽으면 논의 벼가 될 것이고, 책을 읽지 않으면 논의 피가 될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면서 들려주던 것이 역사 이야기였으니, 그때 들었던 것을 바탕삼아 써보았던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다. 할아버지는 당신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손자한테 다시 대물려 들려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또 당신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었고, 이 중생 또한 손자를 볼 나이에 이르렀으니, 역사는 그렇게 오늘부터 저 천년 앞 왕건쿠데타로 꺾여진 궁예황제 꿈까지 줄밑걷어 올라가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 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써보았던 글들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르침과 꾸짖음을 기다리며, 역사를 생각해 보는 마음 애잡짤하고녀. 관세으음보살. 2014년 8월 15일 비사란야非寺蘭若에서 김성동金聖東 손곧춤

염소

20여 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는 심회는 착잡하다. 야릇한 감회가 솟구쳐올라 명치 끝이 타는 것 같다. 여몽환포영이라던 옛사람의 말은 정녕 진언인 것인가. 붓 한 자루 꼬나쥐고 소설의 황야로 뛰어들었던 시퍼런 청춘이 아흐 돋보기 없이는 한 줄도 못 쓰는 초로의 언덕에 올라 서 있는 것이다. (...) 작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통렬하게 질문한 <염소>는 5.18 직후에 썼던 것이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철옹성 같던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10년이 되며 사람들의 살림살이 또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 속에서도 완강하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다. 탐욕스러운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개인주의가 그것인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멋진 신세계'를 강타한 저 '바벨탑시대'와 '아프가니스탄 참극'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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