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대대손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특히 진주는 두류산의 넓은 품이 내어준 풍부한 물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토지는 기름지고 인심은 후덕했다. 거기에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이 더해지면서 진주 사람들은 두류산처럼 품이 넓고 의로워 임진왜란 때는 가차 없이 왜적들에게 대항했고, 부패한 권력에는 스스럼없이 목숨까지 던지며 저항했다. 그러나 부패한 권력은 바뀌지 않았다.
역사이래 민초들의 외침을 들어 준 지도자는 없었다. 임금이 바뀌고 왕조가 사라져도 늘 그랬듯이 역사는 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민초들은 살아남아 다음 세대를 이어나갔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나는 이 끈질긴 민초들의 삶을 소설 <1862,>에 담고 싶었다.
나는 방송사의 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보험설계사 박정숙(가명) 살해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갠지스강 강가의 바라나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바라나시는 죽음으로 통하는 길목(인도사람들은 구원이라고 한다)이다. 고집스러운 염소들과 삐쩍 마른 소들이 도로를 점령하는 더러운 도시, 하루 한 끼도 못 먹어 가죽만 남은 걸인들이 득실거리는 도시, 어느 누구도 간섭하려 하지 않고 간섭받지도 않는다. 인도사람들은 성스러운 곳이라지만, 내가 본 바라나시는 범인들이 숨어 살기에 적합하고 은닉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까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수사관이라도 용의자를 쉽게 검거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금속활자 성분 조성을 조사하던 중, 고려와 조선의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구리의 함량이 고려의 활자보다 조선의 활자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면, 조선의 활자 주조 기술은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은 계미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 계미자(또는 정해자)는 세종 때 발명된 갑인자에서 구리의 함량이 고려의 활자에 더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금속 조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밤새 자료를 찾던 중, 갑인자는 무관 이천이 장영실 등과 발명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편소설 <신神의 몰락>은 한라산과 곶자왈을 배경으로,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아간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부일환과 부종수, 동우와 그 일가족의 비극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곧 수없이 많은 또 다른 ‘우리’였다. 이웃을 잃고, 가족을 잃고, 믿음을 잃고, 급기야 자신조차 잃어버린 이들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끝내 살아남았고, 또 일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폭력 앞에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단정 짓기는 위험하다. 필자는 이 소설을 통해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눠야 했던 그 슬픈 선택을, 그 속에서 끝내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애쓴 사람들을 간절히 그리고 싶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로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몫이라 믿었다.
장편소설 <중원의 바람>은 방호별감 김윤후가 백성들과 함께 몽골군을 물리친 충주성 전투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동명의 제목(필명 유리최)으로 네이버 웹소설 2024 문피아에 연재했다.
장군 김윤후는 고려 고종 재위 시, 여섯 차례(1231년~1259년) 몽골군 침략에서, 2차 처인성 전투(승려)와 5차 충주성 전투(섭랑장/방호별감)에서 백성들과 함께 몽골군을 돌려세운 유일한 고려 장수였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담보로 노비들을 해방해 함락 위기에 처한 충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노비들의 해방은 그들이 곧 자유인임을 의미한다. 자유, 노비들에게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장편소설 <중원의 바람>을 구상할 때부터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적어도 장편소설 <중원의 바람>에서는 먹고사는 일이라고. 또한 끼 거르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세 끼를 편하게 먹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행복하면 그것이 곧 자유다. 아무리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면, 세 끼는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조차 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분연히 일어나 침략자를 물리친 장군 김윤후의 업적이 희미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5차 몽골군 침략이 있었던 충주성 전투에서 성을 지키면서 겪은 시련과 외로움을, 함락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들의 단합을 끌어낸 통솔력을, 국가관을, 위기를 극복하려는 용기와 결단력을 장편소설 <중원의 바람>에 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