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는 축복이다. 나는 내 생의 아직 짧다 할 독서에서 그렇게 느꼈다. 인간만이 백지에 나열된 검은 글씨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인류는 활자로 무엇인가를 더 효율적이고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현세까지 자가 발전했다. 그 와중에 세상을 스쳐간 수많은 인류 중엔 글을 남겨야 하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느낀 것 중 가장 강렬한 감정을 골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형식의 글로 남겨놓았다. 그러다보니 글은 장르로 세분되었고, 없던 장르가 생겨났고, 그 자체가 장르인 글도 생겼다. 어떤 장르건 극한에 달한 천재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와 그가 적은 글을 기리며 기억했다. 그들은 범인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지점에서 떠올리기 어려운 문장을 적었다. 종국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쓰기의 천재들이 이름을 남겼고, 고전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영향을 받은 자는 다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책을 썼다. 결국 활자는 세상을 온전히 구축했다. 책에는 모든 아름답고 슬프고 웃기고 분노하는 감정과 과학적이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이고 철학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이 담기고야 말았다. 그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는 몇 번이나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고, 지금도 바꾸고 있는 중이다. 그 무한한 역사는 우리가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서점에 잔뜩 쌓인 책들이다. 그것들이 인간과 활자로 구성되는 축복에서 기인했음을 나는 반복된 독서에서 아련히 깨달았다.
나는 강박적으로 눈앞에 있는 활자를 읽는 버릇이 있다. 주로 문학을 읽고, 가끔 법전도, 종교서적도, 관광지의 안내판이나 가전제품 설명서도 읽으며, 당연히 의학서적도 읽는다. 그중 목적이 없는 글쓰기는 없다. 행간은 때로 경악스러울 정도로 몽매하거나 감탄스러울 정도로 예술적이다. 읽기의 능력에는 숨겨진 저자의 목표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실현하는 표현 능력이나 숨겨진 의미, 재미를 찾아내거나 텍스트를 객관화하는 능력까지 있다. 이 객관화가 완성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활자 중 버릴 것이 없다. 다만 힘이 부쳐 다 읽을 수가 없을 뿐이다.
일정 기간 동안 매일같이 읽어온 기록을 여기 한 권으로 남기게 되었다. 여기 책으로 엮인 원작을 심층부터 뜯어 전부 분석하자면, 그것도 거의 평생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수의 책을 다루기엔 깊이가 드러날까 부끄러워, 오히려 다수의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만큼 내가 아직 부족함을 안다. 허나 돌이켰을 때 같은 글을 읽고 다른 감정을 느낀 만큼 내가 변한 것이고, 같은 일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발전한 것이다. 훗날 나는 분명 지금의 얕은 생각이나 문장에 후회할 것이다. 갈 길이 아득하지만,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의 기록을 여기 남겨놓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을 부끄럽게도 여기 공개한다.
2017년 겨울
남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