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차림의 즐거움
매년 봄이 되면, 우리 대학에서 500명의 학생들이 듣는 교양강좌 ‘스무 살의 인문학’을 연다.
릴레이 강연으로 이루어지는 이 강좌는 개강 전에 이미 그 내용이 기획되고 강연할 교수가 섭외된다.
이렇게 기획-섭외하는 일을 할 때마다 즐겁다. 마치 기숙사 식당에서 학생들의 식사를 위한 먹거리 재료를 고르고 식단을 정하는 일처럼 말이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야 하고, 또 그들의 식성에 맞도록 ‘맛’도 신경 써야 하니 밥상 차림이 쉽지는 않으리라. 교양강좌의 준비도 그렇다. 밥상 차림에 비유하자면, 건강이란 학생들의 ‘교양 수준/깊이’이고, 맛이란 ‘흥미/재미’이며, 재료란 ‘강의내용/형식’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
스무 살 청춘을 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 하고, 또 누군가는 많이 배우고 경험하라 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개성을 펼치라 하고, 어디 한번 ‘제 맘대로=멋대로’ 살아보라고 권한다. 또 누군가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무엇이 되라고 하나 또 누군가는 ‘아니야, 아무나 되면 돼!’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정답은 없다. 정답을 얻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다.
아니 애당초 삶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 누가 ‘정답이다, 아니다’라고 판단-판정할 것인가. 그 판단-판정이 맞다는 확증은 또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없다!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이 바로 스스로에게 ‘답’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각자의 삶이 보여주는=말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그것이 그 생명 ‘다운’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답’이고, 그것의 ‘진리’이다.
이 책의 내용들도 각기 내용은 다른 듯하나, 기성-기존의 ‘왈曰-설說-썰-카더라’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길을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권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스스로의 삶으로서 답을 증명해 보여주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어떤 삶이든 모두 다 맞고[可], 그렇다[然]. 안 맞고=틀리고=안 돼![不可]라거나, 안 그래=그래서는 안 돼![不然]라는 것은 ‘없다’.
경험담, 조언, 삶의 내비게이션
‘나답게’ 산다는 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답게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연습이자 각오이다.
살다가 보면 가끔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다. 나아갈 방향을 못 잡고 ‘갈림길’에 서서 힘들어할 때가 있다. 멍해질 때, 쫄거나 방황할 때, 영 갈피를 못 잡고 정신적 경련[mental cramp]을 일으킬 때, 조용히 인생을 앞서간 사람들=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 가운데서 삶의 지침이 될 목소리=언어를 만난다면 행운이리라.
같은 인간이기에, 내가 겪을 시절들을 미리 겪었기에, 내게 도움이 될 ‘경험담’, ‘조언’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그 경험담, 조언은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이 될 수 있으리라.
인생을 앞서간 사람들=선배들의 글 속에서, 그들이 걸었던 발자국을 잘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아니 그런 눈을 가지면 좋겠다. 남들이 걸어간 길 위에서, 그들 발가락의 힘이 들어간 곳, 그런 근육을 움직였던 생각, 미끄러지거나 헛디뎠던 발의 방향을 발견하는 안목이 생긴다면 더 재미가 붙을 것이다.
물론 선배들의 말을 믿지 않고, 나 자신을 더 믿는다면 더 할 말은 없다. 사실 그것이 좋을 때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도전의식, 비판력, 배짱도 필요하다.
책의 구성 내용
이 책은 열한 분의 강의로 이루어졌다.
박홍규 / 청춘에게 고함
백승대 / 미래 사회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것들
박일우 / 교양의 의미
허재윤 / 청춘의 노랫가락
김훈호 / 중국인들의 농담과 웃음
남정섭 / 영화로 보는 미국의 미래
최문기 / 젊음, 건강을 챙기자
임병덕 / 일상에서 찾는 삶의 비전들
함성호 / 세상의 설계로서 건축
이 현 / 저 넓은 곳으로
박철홍 / 나답게 산다는 것
위에서 보듯이 내용은 인문예술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나 모두 스무 살 청춘들에게 ‘나답게’ 살아가는 조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의 근육을 기르고, 각기 걸어갈 길의 지도, 이정표를 생각해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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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강연을 해주시고 이 책이 결실되도록 흔쾌히 원고를 제공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러한 강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이 강좌진행을 도와준 영남대 철학과 대학원생 장귀용 군, 장성원 군, 그리고 학부생 서승완 군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기꺼이 원고를 받아 《스무 살, 나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좋은 책으로 다듬어주신 학이사 신중현 사장님과 편집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그동안 필자가 윤곽을 잡아왔던 한국문화에 대한 글을 엮은 것이다. 한국인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했던 것을 나는 ‘한국문화의 현상학’이라고 규정했다. 다시 이것을 ‘언덕의 시학’으로 덧붙인 것은, ‘언덕’을 사랑하는 무의식을 한국문화에 오버랩 시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학은 시학(詩學)이지만 시학(試學. 시도적인 학술)으로 오독해도 좋겠다.
이 시편들은 이제 모두 생각하고 느끼는 자의 것이다. 그렇다면 열 자는 더 이상 열 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풀어진 마음을 다잡고 때론 긴장된 마음을 느긋하게 풀며, 좋은 화두를 얻어 삶의 진지하고도 따스한 부분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