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런저런 장르를 집적거리는 바람둥이 같은 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게도 끝내 순정과 열정을 바치고 싶은 데가 있다. 아라발의 희곡을 처음 읽고 감전된 듯 떨었던 스물 살 초엽무렵부터 나는 극작을 선망했다. 그런데도 내 행로가 퍽 괴상했던 것은,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일찌감치 당선해 놓고서도, '60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리라!'며 극작을 밀쳐놓고, 미적거렸다는 사실이다.
책상에 앉으면 바로 마주 보게 되는 벽에 커다란 전지를 붙이고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제목을 써 놓았다. 희곡을 쓸 목적에서였다. 그뿐인가? 대구 타워레코드에서 사은품으로 준 검은 하드커버 노트에도 쓰다 만 희곡이 있다. 그런데 대체 저 타워레코드점이 문 닫은 지가 언제 적 얘기란 말인가? 이런 사실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가리켜 준다. 첫째, 희곡 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둘째, 나의 산만함과 게으름. (희곡 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말만은 끝내 하지 않는 이 뻔뻔스러움!)
십여 년 넘어, 두 번째 희곡집을 낸다. 소망하건대 세 번째는 좀더 일찍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60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리라!' 던 젊은 날의 결심이 좀더 일찍 이뤄지는 것이리라.
내가 이 소설을 쓰면서 의식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우익청년 탄생기(성장기)'를 써보겠다는 것이었다. 건전한 상식과 나름의 철학을 토대로 한 우파가 득세한 나라에서는 '우익청년 일대기'로 분류될 수 있는 소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정당성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부도덕한 우파가 득세한 나라에서는 '우익청년 일대기'가 나올 수 없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이 줄창 '좌익청년 일대기'만 쏟아냈던 까닭이 거기 있다. (…) 내가 가장 공들였던 인물인 은에게는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해도 좋다. 은에게는 다른 인물에게는 없는 자기개발의 특성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성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 은은 구 우익과 뉴라이트의 영향 아래 있지만,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되어갈 것이다.
'실내극', '어머니', '긴 여행'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3부작으로, 나는 지금도 그 작품을 쓰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3년에 걸쳐 1년에 한 편씩 씌어진 이 작품들은 희곡을 쓰는 즐거움과 함께, 극작의 어려움도 알게 해주었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동명의 장편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위의 3부작과 독립해 있으면서도 전작이 미처 조명하지 못한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 3부작이 원죄와 도주라는 주제를 은유적이고 실존적인 양태로 접근했다면,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사실적이고 사회적인 근거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1995년, 이 희곡집을 초각한 이후로 두 편의 장막 희곡을 썼다. 재간을 하면서 두 편을 여기에 보태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희곡을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생가가에서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시.소설 등 온갖 장르의 좌판을 벌여 놓긴 했지만, 작가 생활의 마무리는 희곡으로 끝맺고 싶다.
나는 내가 처음 생각한 책의 제목이 출판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ㅡ제목을 짓는 게 작가의 고유 권한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ㅡ아예 편집부에 맡겨 버리는 편이다. 이 작품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내가 지은 제목이 아니다. 그래서 늘 책을 생각하면 이물질을 대하는 느낌이지만, 이런 느낌도 괜찮다.
이 소설은 씌어질 당시, 젊은 작가의 초상과 새로운 소설의 환경을 그려보려고 한 작품이다. 나는 내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놀이'를 했는데, 평자들은 그 놀이를 '관념'이나 '사변' 일색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오해도 괜찮다.
한 10여년 만에 이 작품을 새로 읽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집요함에 진저리를 쳤다. 이 소설에서 끈지기게 묘사된 만화경적인 풍경은 '나의 전쟁터'였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 점에 크게 놀랄 것이다. 우선은 등장인물 개개인이 하나같이 별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별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기행들이 실제로는 조금도 별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익숙하고 진부한 것들이란 사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기호와 기의 사이의 불일치와 의미의 증식이란 포스트 모더니즘적 '산포(散布)놀이'를 충분히 즐겼다. 동생을 사랑하였으나 동생과 결혼하지 못하고 그 언니와 결혼하게 되는 주인공의 운명을 통해 기호와 기의의 어긋남이라는 탈현대의 아이러니를 형상화해 보고 싶었던 게 이 소설이다. 마침 운 좋게도 그때 나는 재즈에 막 입문하고 있었고, 재즈가 추구하는 즉흥과 불협화음의 미학으로부터 오늘의 세계를 발견했다.
나의 첫 소설 <아담이 눈뜰 때>의 주인공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등록급으로 타자기를 산다. 이 소설 <보트 하우스>는 소설가가 된 '아담'의 후일담이다.
이 작품이 '온통 하얗다'로 끝나게 된 것은, 내가 작가가 된 이후로 늘 불편하게 여겨왔던 살부의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때문이다. 내 글쓰기는 언제나 법과 질서로 정의되는 '아버지의 세계'를 조롱하고 상처 입히는 일과 동일시 됐고, 그걸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사랑하고 기쁨을 얻고 있는 문학, 그 자체를 파괴해야 했다. 내가 깃들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학을 공격하는, 이중의 작업은 나 자신을 범죄자로 느끼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독서일기란 매일 밥 먹듯 책을 읽는 사람이 쓰는 것으로, 그 일의 어려움이 이 지지부진한 권수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면 엄살일까? 도를 닦는 스님처럼 책읽기에 몰두한다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만, 무릇 책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
나의 첫 소설이자 등단작은 1988년 「세계의 문학」 봄 호에 발표한 '펠리컨'이다. 이 소설에서는 조금 시큼하고 뒤틀린 모습이긴 하지만, 민중이나 문학 본연에 대한 강박과 당위가 배면에 깔려 있다. 이런 태도는 이 작품집의 표제작은 물론이고 '실크 커튼은 말한다'나, '모기' 같은 그로테스크한 소품에 잘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7일' 같은 더더욱 그로테스크한 것에서만 나의 개성을 찾는 모양이다. 하지만 '제7일'은 무론이고 더 이상 독자들이 볼 수 없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작품에서마저, 더더욱 그로테스크한 것만이 나의 전모는 아니다.
글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이 범죄자라고 느껴야 한다. 원고지 앞에서 혹은 깜박거리는 컴퓨터의 커서를 보며 자신을 범죄자라고 느끼지 못하는 작가는 가망이 없다. 김수영의 말을 빌자면, 불온하지 않은 것은 상한 것이니 유독 불온한 것만이 문학이 될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쓴 작품들은 '나의 전쟁터'였다. 나는 가장 더럽고 누추한 전선만 찾아 다녔다. 새로운 전선을 찾아 나설 때마다, 나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생각했다. 야반도주란 뭔가? 이웃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밤에 몰래 보따리를 싸서 도망가는 것이 야반도주다. 그런데 숱한 야반도주 가운데는 '문학의 야반도주'도 있다.
작가란 제일 먼저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인간이 모이면 사회가 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범행을 저지를 장소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그 나라의 공인된 통용화폐를 발행하듯이, 사회 곳곳에는 공인된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중앙은행이 무수히 매복해 있다. 법원, 학교, 종교가 그런 것들이다.
작가는 통상적인 의미나 규범적인 가치가 아닌,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통용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당당한 위조지폐범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화폐질서와, 화폐질서만큼 공고한 체제의식을 조롱하고 전복하는 위조지폐범이 되고자 했다. 좋은 보직(補職)과 후방을 찾지 말자. 장교가 되지 말자. 범죄자는 범죄 장소로 늘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게 작가의 더러운 운명이다.
우리는 어려부터터 부모에게, 자라서는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항상 중용을 취해라'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마라'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배우고 그렇게 살도록 다짐받는다. 하지만 그 잘난 중용이나 균형이란 것을 잘못 취하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지지 마라'고 주의받던, 바로 그 극단에 가 있는 수가 있다.
10의 중간은 5의 언저리일 것이지만 100의 중간은 50의 언저리이며, 1000의 중간은 500의 언저리다. 이런 식으로 중용을 추구하다보면, 어느 사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위치에 서 있게 된다. 존경받던 어른들이 어쩌다 우리의 실망을 사는 경우는 바로 그 사안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용이 미덕인 우리 사회의 요구와 압력을 나 역시 오랫동안 내면화해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모난 사람, 기설을 주장하는 사람, 극단으로 기피하는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 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중략)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 책에 실린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안에 불과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감히 <장정일의 공부>라는 제목으로 내놓는 것은,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 하면 당신이 할 게 뭐 남아 있겠는가? 그래야 당신이 '조금하다' 지치면 내가 이어서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어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봐야지' 하고 발심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현재는 절판된 <상복을 입은 시집>(1987), <서울에서 보낸 3주일>(1988), <천국에 못 가는 이유>(1991)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여기 실린 시들이 내 시의 진면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 시집 가운데서도 일부러 가장 '내 것'다운 것을 빼고 평이한 형식과 친근한 주제를 가진 것들만 골랐다. 그만큼 '늙어, 힘이 빠졌다'는 뜻도 되지만, 현대시의 쇄말성과 난해함을 씻어보자는 뜻도 있다.
내가 아주 젊었을 때, '시귀(詩鬼)'가 잠시 머물렀다 갔다. 내가 쓴 시들은 대부분 22세에서 25세 사이에 씌어졌으며 나는 그 많은 시를 가지고 이리저리 시집을 편(編)했다. 너무 갑자기 시 쓰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던 젊은 날의 몇 해 동안 '시귀'가 나를 찾아 왔던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아니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해버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