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의 첫 번째 목표는 상담전문가의 심화교육의 사례로 쓴 글이었지만 같은 글로 손자 손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사용을 해 본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의 글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상담을 전공하시는 상담원들의 아동기 감정양식을 이해하는 사례집으로 이용을 해도 좋을 것 같고 또 다르게는 손자 손녀를 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한번 활용을 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꾸준히 연재하면서 손자 손녀들과 나눈 짤막한 이야기들이지만 나는 참 즐거웠다. 이 즐거움이 쌓여서 또 책 한 권으로 나올 수 있다니 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네팔에는 네왈족이 이룩한 말라 왕조의 찬란한 문화가 있습니다. 한 도시 전체를 묶어서 등재한 문화유적이 많습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하나가 전부 보물입니다. 네팔 우표 가운데 이런 문화유적 우표가 제일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네팔 문화에 깊은 식견을 갖고 있는 두 분(아눕 구룽, 므리날 라이)과 함께 네팔 문화유적 우표 에세이집을 내게 된 것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 8번의 감옥행을 하고 그 가운데 가장 길게 감옥 생활을 한 것이 6년이다. 전부를 합하면 10년은 족히 넘는다. 이런 그의 전력이니 동물원엔들 안 들어갔을려구. 동물원에 가게 된 것은 한번은 정부에 잡혀 감옥에 수용하려고 하니깐 라나 선생의 지지 군중들이 모여 데모를 벌였단다. 그를 체포하여 구금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데모를 일으키니까 정부에서는 그를 빼돌려 잠시 동물원에 가두어 놓고는 그를 잡아가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에피소드다. 군중들이 잠잠해지고 난 다음에야 형무소로 이감되어 갔다니 웃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감옥을 자기 집 드나들 듯했을까? 다이아몬드 라나 선생은 한마디로 자유 투사다. 네팔의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일생을 그가 희구한 자유로운 네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바로 감옥과 친하게 된 이유다. “소설을 쓰시는 분이 투사라니 어울리지 않는데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쓴 ‘화이트 타이거’란 소설은 네팔의 근대소설의 효시가 되었음은 물론 영어, 힌두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어 네팔 작품으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을 쓴 작가다.
이 작업을 함께하면서 하늬는 많은 과목 가운데 역사가 제일 싫었다고 했다. 왜 싫으냐고 물으니까 시험 치기 위해서 사람 이름을 외우고 연도를 외우는 등의 행위가 싫었다고 한다. 이 작업을 하면서 나는 하늬에게 역사는 지나간 스토리들인데 입시를 위해서 연도나 이름 외우기를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쌓인 우리 조상들의 이야깃거리가 역사라고 설명해 주었다. 차라리 연도는 몰라도 이러이러한 사실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역사는 그렇게 싫은 과목이 아닐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네팔 역사적 인물 우표 한 장 안에 들어 있는 역사적인 사실과 그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아 가면서 하늬가 조금이라도 역사의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내 소망대로 지금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니까 조금씩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