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옆집 기미코와 나는 정말 피리 소리로 서로를 불러냈습니다. 곡은 '닻을 올려라'였죠. 창가에서 그 곡을 불면 숲 너머에 있는 건넛집 창문에서 기미코가 얼굴을 쏙 내밀곤 했죠. 그 광경은 행복한 추억으로 지금도 내 눈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내 안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인데, 그림에 크게 힘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요시토모 씨의 그림을 언제나 열심히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같이 썼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라 씨는 내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히티란 섬은 속이 무척 깊어, 고작 일주일 머무는 동안에는 그 품의 일부조차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깊이만큼은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일주일 취재한 것 가지고 즉흥적인 소설을 쓸 수 있는 장소는 아니로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방식이 맞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맞지 않는 장소도 있으니까요. 타히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자연의 존재 양식이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찾아가 찬찬히 관찰한 후에 다른 각도에서 그려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느닷없는 질문이지만, 첫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그 사람과 내가 함께 걸을 수만 있어도 만사가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을. 그 청순한 에너지를.
이 소설에는 그런 시절의 세계관, 우주관이 담겨 있습니다. 담기에 아주 어려웠던 저 아름답고 동그란 특유의 풍경. 그리고 어린애가 처음 사랑을 할 때, 그 오만한 마음에 비로소 진짜 '자연'이 스미기 시작합니다. 산과 바다, 자기두 발로 걷는 아스팔트, 주위 사람들.
인생의 휴식 시간, 어둠의 시기에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마치 꿈을 꾸고서 그 부분만 유독 또렷하게 기억나는 인물이나 풍경처럼 색깔이 선명합니다.
불현듯 귀에 들리는 음악과,
밤에 창가를 찾아오는 친구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흔적,
밤풍경을 부각시키는 도시의 어둠에 묻혀,
정원수를 바라보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 모든 것에 눈뜨려 하지 않는 자신을 아는 것.
그런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지만, 다만 이 소설집에서는 그런 때 몽롱한 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강함과 약함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구원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집을 읽고 편지를 보내주신 무수한 잠자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깨어나리란 것을 믿고, 지금은 푹 자세요."
나는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나에게는 6년째 같이 살고 있는 연하의 남자친구가 있죠.
그는 자전거 수리공이예요.
또 나에게는 오랫동안 길러온 개가 두 마리 있는데 나는 그애들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나의 남자 친구는 나에게 그 개들과 같은 존재예요.
'개 같은' 존재로서의 남자친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