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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오규원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1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 (염소자리)

사망:2007년

최근작
2021년 11월 <탱자>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6년 만에 시집을 묶는다. '이곳'에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어디쯤인가. 내가 이곳까지 왔듯 그렇게 또 이곳을 떠나리라. 그러나 늘 떠나기는 했고, 과연 떠나고 있기는 한 것인가? -自序

날이미지와 시

80년대 후반부터 나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의 흔적은 그 무렵 쓴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본격화된 것은 90년대 초부터이다. 나는 나(주체) 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시적 수사도 은유적 언어체계를 주변부로 돌리고 환유적 언어체계를 중심부에 놓았다. 그리고 관념을 배제하고 언어가 존재의 현상 그 자체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현상 그 자체가 된 언어를, 즉 사변화되거나 개념화되기 전의 현상화된 언어를 '날이미지'라고 하고, 날이미지로 된 시를 '날이미지시'라고 이름 붙였다.

두두

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이우환 식으로 말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읽으라. 어떤 느낌을 주거나 사유케 하는 게 있다면 그곳의 존재가 참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현상이 참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의 세계다. 모든 존재가 참이 아니라면 그대도 나도 참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모든 시는 의미를 채운다. 의미는 가득 채울수록 좋다. 날이미지시는 의미를 비운다. 비울 수 있을 때까지 비운다. 그러나 걱정 마라 언어의 밑바닥은 무의미가 아니라 존재이다. 내가 찾는 의미는 그곳에 있다. 그러니까 바닥까지 다 비운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존재를 통해서 말한다. 원천적으로 주관의 개입 없는 시 쓰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관의 개입 없는 시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든 시에서의 주관은 어디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날이미지시에도 주관이 개입한다. 그러나 그 주관은 현상에 충실한 현상의 의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날이미지시의 주관은 현상화된 주관이며 날이미지시는 주관까지도 현상화하는 시다. 날이미지시를 읽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존재의 편에 서라. 그리고 시 속의 현상을 몽상하라. 날이미지의 시 세계는 돈오의 세계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환유로 시를 쓰고 있지 않다. 환유로 시를 쓰고 있지 않고 환유를 축으로 하는 언어 즉 환유적 언어 체계로 쓰고 있다. 환유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의 변두리에는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끝없이 투명해지고자 하는 어떤 욕망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것을 비우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음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두두시도 물물전진을 곁에 두고 있으랴.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시집을 낸다. 6년만이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이런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나의 기록이다.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시와 이미지: 나는 시에게 구원이나 해탈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리나 사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시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든 그와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에서 벗어난 세계였다. 궁극적으로 한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을 그 세계는, 물론, 언어 예술에서는 시의 언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가능성의 우주이다. 그러므로, 내가 시에게 절박하게 요구한 것도 인간이 문화라는 명목으로 덧칠해 놓은 지배적 관념이나 허구를 벗기고, 세계의 실체인 ‘頭頭物物’의 말(현상적 사실)을 날 것, 즉 ‘날[生]이미지’ 그대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구조와 형식: ‘두두’며 ‘물물’은 관념으로 살거나 종속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도 전체와 부분 또는 상하의 수직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다. 세계는 개체와 딥합 또는 상호 수평적 연관 관계의 구조라고 말해야 한다. 숲에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그 나무는 숲의 부분이거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리며 실체인 완전한 개체이다. 시의 세계 또는 작품과 작품의 세계도 그러하며, 그러므로 그것들은 현상적 사실과 상호 연관 관계의 언어인 ‘개방적 구조’로써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의 시 또한 그러한 개방적 이미지와 구조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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