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험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실험은 없어 보인다. 건전한 직관 말고는 필요한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장비를 다루는 한편, 때로 말을 듣지 않는 대상과 함께 해야 하는 전형적인 실험실 실험, 그리고 그 품질이 균질하지 않을지 모르는 대규모의 데이터를 활용해야만 하는 자연 실험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생각을 기록할 종이, 그리고 필기구만 있다면, 아마도 사고실험은 모든 질문을 다룰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고실험 역시 쉬운 작업은 아니다. 아무 생각이나 좋은 사고실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공상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공상이 어떤 학술적 맥락, 그리고 실질적인 실천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럴 때, 역사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40가지(박스 글로 처리된 것까지 하면 좀 더 많다) 사고실험은 긴 세월 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자유 낙하하는 갈릴레이의 공, 튜링 테스트, 죄수의 딜레마는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사고실험들은 저마다의 논쟁사를 품고 있는 하나의 작은 분과 학문과도 같다. 이 책이 하나의 지하철 노선이라면, 각각의 절들은 이런 풍성한 논의로 갈아탈 수 있는 환승역처럼 보인다. 나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고의 범위를 하나의 도시에 빗대어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도 『사고실험』은 이 도시를 탐사하는 꽤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사고실험 가운데, 특히 심리 철학(2장)과 윤리학(3장)의 사고실험은 대부분 20세기 후반 들어 철학계에서 제시된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사고실험이 철학의 주요 방법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일 것이다. 이런 방향이 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실험이 활용하는 주된 도구인 철학자들의 직관은 여러 방향에서 편향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 대한 사고실험에 인간의 직관이 알맞은 것인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윤리적 쟁점을 다루는 사고실험이라 하더라도, 철학계의 주류는 백인 고학력자들인 만큼 이들의 직관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철학계는 다양한 실천적 분야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실제로 실천적 분야들이 품고 있는 의문과 이들 사고실험이 얼마나 조응하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철학자들은 이제 안락의자에 앉아 사고하는 것으로 자신의 연구 방법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과학의 성과를 비롯해 세계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는 콰인의 제안을 어떻게 사고실험 중심의 철학적 활동과 결합시켜야 하는지는 여전히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고실험은 강력한 도구다. 실험실 실험을 통한 그 어떤 조작보다도, 그리고 자연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떠한 데이터보다도, 사고실험은 묻고자 하는 질문과 무관한 요소를 간단하고 완전하게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실험 제안자의) 부주의와 (주변 학자들의) 오독 덕분에 논의가 공전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사고실험은 실험 일반이 추구하는 목표를, 다시 말해 단순히 주변 현상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결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 내는 강력한 수단처럼 보인다.
40개의 사고실험들이 이런 이상화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삶 속에서 품게 되었을 많은 의문들 역시 이처럼 이상화되어 풀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될 수 있을지, 레비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들 질문에 답하며 사유의 훈련을 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으면 역자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