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작가의 말’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은 한 시대를 흔적 없이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한 방식이다.”
지금도 그 마음은 유효하다.
1903년,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도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우연히 찾아왔다. 하와이 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졸업 필수과목 중 하나로 소수 민족사를 수강해야 했는데, 나는 이덕희 선생님의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사’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대강 아는 내용일 거라 짐작했고, 조금 쉽게 학점을 받겠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거라는 상상도, 계획도 없었을 때였으나 나는 매번 강의 내용에 마음을 빼앗겼다. 언제부턴가 그 시절 그 땅에서 분명히 ‘존재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모두 빛나는 조연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살았다. 한국에서 대학원 첫 학기를 마친 어느 여름날,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썼다. 한국어 문장이, 그것도 소설을 쓴다는 게 어색하고 많이 서툴 때였다. 내가 어떻게 미친 듯 그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 ‘겁 없이’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민 대선배’들의 삶을 소설로 쓰면서 비로소 나의 자리를 되돌아본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게 소설이란 염원하면서도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 어떤 이중성에 대한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는 자신의 일부이거나 전부인 이야기를 쓴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말에 나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인다. 삼 년 전 첫 책을 내고 비로소 소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쓰며 사는 삶에 대해서도. 아마도 이 소설은 그 시간들에 대한 내 고뇌와 그리움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움직인 것은 폭력이 휩쓸고 간 뒤 남겨진 사람들이 보여준 성숙한 ‘행동’이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의 희생자는 서른두 명이었는데, 추모석과 꽃과 검은 리본은 모두 서른세 개로 꾸며진 추모식이 열렸다. 희생자 가족들과 친구들은 스물세 살 그 청년을 ‘폭력’과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동등한 ‘희생자’로 품은 것이다. 그들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분노보다 슬픔을 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어쩌면 분노보다 슬픔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오래 그 마음에 고개 숙였다.
하루의 마지막 빛을 끌어모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작은 빛이라도 마음에 품고 오늘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