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압도적인 환경에서 진정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좀먹지 않으며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이야기뿐인 것 같습니다. 삶을 굳세게 창조해 간 누군가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그것은 인심이 넉넉해서 집안사람이 아니라도 함께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힌트를 얻어 황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참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잠을 참고, 운동하거나 놀고 싶은 것도 참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참으라고 들었죠. 게다가 예뻐지려면 먹을 것도 참아야 하더군요. 그렇게 참고 참아서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다이어트도 해 봤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확신하게 되었죠. 진짜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요. 바빠도 화장실에 가야 하듯이, 아무리 심각해도 물을 마셔야 하듯이, 사람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무시하면 생존할 수 없죠. 그러니 기본적인 것을 참으라고 하는 말은 일단 의심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적당히 운동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 조건이야말로 행복의 기본 아닐까요?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지만, 이런저런 계산에 의해 쉽사리 외면할 수도 있는 마음입니다. 신념 없이는 지킬 수 없는 마음이죠.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핑곗거리가 많을수록 모른 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저는 있는 것이라곤 측은지심밖에 없는 수리가 어떻게 젊음이 되는지, 어떻게 젊음을 전염시키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열일곱에 젊음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요. - ‘작가의 말’에서
평생 의례에는 ‘당신은 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의식을 치르는 주인공은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소중한 존재가 되지요.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의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을 축하해 주는 가족이나 이웃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우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평생 의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펼쳐 보면서 우리 조상들이 평생 의례를 통해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되새겨 보도록 해요. - 글쓴이의 말 중에서
이야기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던 나는 묵묵히 세상을 걸어야만 했다. 살아가는 일은 흐물흐물한 세포막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었고, 숨을 쉬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야기가 필요했다. 유일한 야망은 내가 스며 있던 방의 어둠이 실은 다채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다. 발바닥은 아팠고 단단해지는 세포막은 쓰라렸다.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 지 10여 년이 흘러도 세상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어 하나 익히는 것도 수월치 않았으니 이야기는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때, 당선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혼잣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다.
나의 삶이 달라질까? 좀 더 어린 시절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글보다 삶이 귀하다고 믿게 되었고, 지금가지처럼 단어의 의미를 생생하게 밟아 갈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져 상처받을지언정 자신의 발로 땅을 밟지 않는 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어 본다. 나는 원생생물의 세포막을 가지고 빛을 쓰는 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을 때는 이미 밀레니엄, '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상식처럼 들리던 때였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 시기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게 유일한 소통이 글쓰기였기에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소설가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고, 소설가로서도 매번 고통과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