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사랑은 설움을 들쓰되, 끝내 강고합니다. 세상이 믿지 않는 믿음을 품고, 실현되지 못할 꿈을 붙들고 꿋꿋이 걸어갑니다. 온 마음을 쏟아, 쏟아…….
이 큰 사랑의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니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한 김명순, 언니의 ‘첫’ 소설집! 언니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조금 더 큰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겠지요, 문학을 지속하게 되겠지요. 문득 「돌아다볼 때」 속 소련의 방 머리맡에 족자로 걸려 있다는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 시에는 허공에 쏘아올린 화살도, 허공을 향해 부른 노래도 땅에 떨어져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아주 오랜 뒤 한 그루 참나무 속에서/나는 그 화살을 찾았네, 여전히 부서지지 않은 채로/그리고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한 친구의 마음속에서 다시 찾았네.” 언니의 지극한 사랑은 언니를 아끼는 독자들께, 친구들께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가닿으리라 믿습니다.
결국 저는 사랑이라는 막강한 힘을 지닌 채 자신의 세계를 굳건히 지탱해내는 한 사람의 숭고한 내면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몇 년에 걸쳐 김명순의 작품을 읽는 동안 저는 열렬히 바랐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끝내 사랑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신실한 인간일 수 있기를……. 그런 바람으로 계속해서 김명순을 읽고 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책을 집어 든 분들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하며 모종의 온기를 느낍니다. 함께, 김명순의 독자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김명순이라는 귀한 “돌 틈에서” 맺어진 “파초 열매”(「만일에」)라 해도 좋겠지요.
올해는 김명순이 국내 여성 작가 최초로 작품집 『생명의 과실』을 낸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더 중하게 여겨집니다. 『생명의 과실』에 수록된 에세이 「봄 네거리에 서서」의 한 대목으로 끝인사를 대신합니다. 조금 간지럽대도 받아주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무리 안 하려고 해도 그래집니다.”
2025년 여름, 큰 사랑 가운데
소란 배배
생각해 보면 무얼 할 수 있는지. 쓰는 일이 아니라면, 시간의 가혹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시라는 게 다른 무엇보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태로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쓰고 매만졌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라는 생각을 잊었습니다. 없는 도시에서는 시도 저 자신도 없었고, 그런 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시」에는 그런 흔들림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바랍니다. 이 시가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 기록으로 남아주기를.
‘아름답다’를 대신할 말이 없었다.
‘울음’이나 ‘웃음’과 같이,
‘나’는 지우려 해도 자꾸만 되살아났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 거듭 ‘문’을 열었고
그 사실을 끝내 들키고 싶었다.
문을 열면, 닫힌 문을 열면
거기 누군가 ‘있다’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
201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