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증후군'이라 할 마감에 시달리면서 불치에 이른 이명을 다스리고자, 난 동물성 언어를 버리고 식물성 언어에 귀 기울이면서 청력을 회복해 나가기로 작심한다. 분노보다는 온유와, 조소보다는 긍정과, 다변보다는 침묵과, 스타카토보다는 안단테나 아다지오의 박자로 세상의 소리를 변환해서 듣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충분히 야위어갔고, 세상을 보는 시력을 조금씩 회복해갔다.
서정을 위하여
스무 살이 내건 대자보 쓰듯 외치고 싶은 게지요
또박또박 난필로 겁 없이 분노하는 거룩
담채화 닮은 시를 그리고 싶은 게지요
희미하게 가려놓은 절규와 농담 속에 벼려놓은 직설
논자와 평자와 사가 몰래 슬쩍 개울에 흘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게지요 겨울나무에 겨우 걸려 있다 당신 강가에 오는 날 안개로 풀리는 눈물이고 싶은 게지요
그런 날은 더운밥 한 양푼
작은 저녁이고 싶은 게지요
당신 부르튼 발을 씻기는
놋대야고 싶은 게지요
2023년 여름,
시업(詩業) 30년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