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동대구로 초입의 히말라야시다 가로수다. 청년시절을 그 동네에서 보냈고 서울살이를 접고서 우선 자리잡은 곳도 거기여서 부근은 자주 나의 산책 코스였다. 그때의 성하던 히말라야시다들 지금은 의족 같은 철제 버팀목에 의지해 누더기 그늘만 간신히 지키고 있다. 뭉텅뭉텅 기형적으로 가지가 잘려나간 그들을 보면서 조금씩 이유 없이 초조해지던 날, 지워진 그늘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정작 저 미덥지 못한 히말라야시다를 아주는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힘이 무엇인가를 알 것 같았다.
히말라야시다의 그것처럼 바람에 쉽게 기울어지고 뽑혀나가는 천근성(淺根性)의 뿌리는 내 부박한 영혼이거나 현실이다. 겨울 아침 침엽의 가지 사이로 떨어져 내리던 햇살과 눈가루, 자잘한 소음과 질주하는 자동차의 불빛, 인근 동대구역을 지나는 기차의 신호음 같은 것들. 잃어버린 그늘이 껴안고 있는 그것들이 있어 그나마 내 안의 숲은 눈 덮인 푸른 지붕처럼 원뿔의 탑처럼 오늘도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그 숲에 사는 새의 이름은 기억이며 몽상이며 매혹이다. 내게 과욕이 허락된다면, 이제야말로 크바시르의 피로 만든 시의 밀주 한방울 훔쳐 맛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