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 그 이후
산업화 시대는 끝났다. 기계혁명은 지난 170여 년간 눈부시게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넘겨야 할 때다. 기계공정은 전에 없이 엄청난 성장세에 있다. 허나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대세가 바뀌고 있다.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됐다. 원자(atom)를 따지던 시대는 지났다. 대화의 화제는 전자 비트(bit)다. 산업화 그 이후의 시대가 도래했다.
대부분 제품에 소프트웨어가 탑재되고 있다. 가스레인지 오븐에도 컴퓨터 칩이 내장되고, 각종 전자제품은 조명과 통풍,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택배 상자를 받을 때는 더 이상 종이에 수령 확인 서명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소형 컴퓨터로 이뤄진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내장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사업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뻔한 회사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천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업 운영과 관리, 기획 및 영업의 모든 측면에서 상업적 용도의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시스템 덕분에 큰 회사들이 굴러가는 셈이다. 채용과 인사 관리, 투자 및 재정 거래, 물류 체인 관리, 판매 시점, 운영, 의사결정 등 기업의 핵심 경영은 오로지 소프트웨어 역량에 달려 있다.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것은 인터넷이다. 소프트웨어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실제 직원이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판매자, 구매자, 거래처, 직원 등 모든 의사소통은 소프트웨어가 마련해 준 통로에서 이뤄진다.
과거의 기업 구조와 운영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기계공정을 주로 하던 시대에는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나 산업화 이후의 현 시대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물리적인 원자를 가공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활용할 수 있는 원자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를 상품으로 디자인하고 가공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원자가 아닌 비트를 재료로 삼는다. 비트는 절대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어서, 가공하고 전송하고 복사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거의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과거 직원들과 다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조립, 생산 라인의 직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태도와 적성, 교육과 언어, 사용하는 도구 및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개발자를 효과적으로 관리 및 지도하고, 업무 결과를 파악하는 일도 확연히 달라졌다. 기계화 시대의 노동자 계층 직원의 관리법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개발자가 기업 입장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산업화 시대에는 결코 알 수 없던 방법이다.
산업화의 핵심은 제조 비용을 줄이는 데 있었다. 과거에는 제품을 제작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는 것만이 현명한 해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의 시대에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 않다. 재료와 제조 및 조립, 운송 비용이 모든 기업에 유사하게 적용된다. 관건은 자동화와 훌륭한 기획, 현명한 비즈니스 역량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모두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위젯을 제작하기 위해 단돈 1달러를 절약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제작하면 수백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한번 성공적으로 제작하고 나면, 이 제품을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없다. 처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것 또한 의미가 없다. 보통 소프트웨어 제작의 비용 절감은 제품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의 사업 모델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소프트웨어 효과를 최대화하고 인터랙션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현명한 셈이다. 대부분의 재무 관리 시스템은 제조 비용을 파악하고 측정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소프트웨어 중심 비즈니스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 기회를 낭비하게 마련이다.
많은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일과 씨름하고 있다. 훌륭한 임원진의 멋진 아이디어는 컨셉 단계에서 출시까지 흘러가는 동안 어딘가 바뀌고 변형되기 쉽다. 빈틈없이 보이던 좋은 계획도 부적절한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제 산업화 시대의 구식 관리 방법론은 버려야 할 때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주요 도구로 인터랙션 디자인을 도입해야 한다.
1995년 『퍼소나로 완성하는 인터랙션 디자인 About Face』가 처음 출간된 이후, 인터랙션 디자인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왔다. 일단 시도해보고 실패하면 고치는 시행착오 방식의 방법론만 판을 치던 세계에 인터랙션 디자인이 등장한 것이다. 인터랙션 디자인과 유사한 방법론이나 변형된 접근법도 많았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성공적인 제품의 행동을 결정짓는 명확하고 효과적인 도구로 발전해왔다. 퍼소나(persona)는 인터랙션을 디자인하는 훌륭한 설계도와 같다. 퍼소나와 더불어 목표 지향 디자인 방법론은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의 인터랙션을 설계하는 방향을 제시해왔다. 이는 올바론 방법론을 도입한 어느 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단지 제품 설계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경영하는 관리 도구의 역할도 한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소프트웨어가 완성된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청사진을 제공하는 셈이다. 개발자가 무엇을 구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관리자에게는 개발자의 진행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마케팅 도구로서도 강력하다. 누가, 왜 제품을 사용하게 되는지 정확하고 명쾌하게 그려낸다. 사용자의 동기를 속속들이 파헤치는 능력은 마케팅 팀에게는 천상의 음식과도 같다. 목표 지향 디자인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정량적 리서치와 분석 결과는 효과적인 마케팅 방향을 제시한다.
웹 혁명은 주목할 만했다. 평범한 컨텐트를 웹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웹 전문가는 사용자를 이해하는 일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알 만한 사람들도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요!"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사용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대한 변명일 뿐이다. 수많은 클라이언트가 쿠퍼 디자인에 여러 프로젝트를 의뢰해온다. 재정 관리, 헬스케어, 조제학, 인사 관리, 프로그래밍 도구, 미술관, 소비자 신뢰도 등 분야도 매우 다양하다. 쿠퍼 디자인의 팀원들이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어떤 분야는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몇 주 만에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서 클라이언트를 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언제나 사용자 중심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계 중심의 접근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사용자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인터랙션 디자인이라는 무기를 갖추면 성공적인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 강력한 디지털 비트로 무장한 제품을 탄생시키는 셈이다. 더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 나은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충성도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적당히 기능만 갖춘 채 성급히 시장에 출시된 제품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못 가 올바른 인터랙션을 갖춘 다른 제품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제품의 행동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실패할 디자인은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까?
기반이 잘 다져진 제품의 성공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공적인 소프트웨어는 결코 무르지(soft) 않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실용적인 애플리케이션은 견고한 원칙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다. 꼼꼼한 사용자 리서치와 상세한 디자인 기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산업화 이후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의 인터랙션을 발전시키고자 꿈꾸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믿는다. 훌륭한 디자인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퍼소나로 완성하는 인터랙션 디자인 About Face 3』의 세계로 초대한다.
나는 20년 전 이 책의 초판 작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나는, 한걸음 진보해 사용자가 사랑할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다 좌절한 실무자에게 제시하는 과제인 선언문을 작성했다. 당시에는 사용할 때 골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소프트웨어는 극히 드물었고, 그렇게 만드는 디자이너도 거의 없었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
오늘날은 기술의 지평이 사뭇 다르다. 결과적으로 이 개정4판도 매우 다른 책이다. 1994년 당시 최상의 개인용 소프트웨어는 주소록이나 스프레드시트였다. 오늘날 모든 미디어 형식의 디지털화는 기술이 넘쳐나 소비자의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차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강력한 휴대용 앱들이 이제 아마추어와 비 기술자 사용자들 손에서 활용된다. 여기에는 음악 감상과 제작 앱, 사진, 동영상, 뉴스, 커뮤니케이션 앱, 가정용 보안, 환경 제어 앱, 의료, 피트니스, 개인상태 추적 앱, 게임, 교육 앱, 쇼핑 앱 등을 들 수 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호주머니에 꽤 발전된 성능의 컴퓨터를 넣어 다니며 수백만 개의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에 접근한다. 이처럼 사용자와 대면하는 제품을 잘 이해해서 사용하기 더 쉽게 만들 때의 가치는 분명하다. 우리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은 이제 각 사무실에서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성공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디지털 제품을 제작하는 팀의 일원으로서 잘 자리 잡았다.
인터랙션 디자인 실무의 첫 20년 동안 주요 과제는 성공에 필요한 프로세스와 도구, 규칙,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었다. 이를 성공적으로 입증해낸 오늘날에는, 조직 내 다른 실무자와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이 업무 스킬을 더 깊숙이 팀에 통합하면서, 이와 같은 모범 사례들도 새로이 진화하고 있다. 특히 디자이너들은 사업인력이나 개발자와 함께 더 효과적으로 작업해야 한다.
20년 전에는, 개발자도 이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 그리고 관련성을 얻기 위해 싸워야 했다. 기업의 계층구조에 굳건히 내재화되기는 했지만, 신뢰성과 권위가 부족했다. 소비자의 디지털화가 심화되면서, 사용자의 난처함을 대변하듯 개발자의 불만도 늘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애자일(agile) 운동과 더 최근의 린(lean) 사례들의 성장은 자신들의 미래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디지털 인터랙션의 유감스러운 상황에 대해 디자이너만큼이나 좌절한 개발자들은 더 나은 개선을 원했다. 그들은 소프트웨어 구축 프로세스가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에 어울리지 않는 산업의 원형을 모델링했음을 깨달았다.
일부 용감한 개발자들이 단계를 잘게 나눠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면서 클라이언트와 좀 더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비정통적인 방법의 실험을 개시했다. 사용자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정이 늘어지는 개발 기간, 즉 '죽음의 행진'을 피하고자 했다. 신뢰할 만한 개선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프로세스를 찾아내겠다는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방법론이 바뀔 때마다 추종자와 반대자가 생겨났지만, 이 새로운 접근법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은 대대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기존의 방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견은 오늘날 대다수가 인식하고 있으며, 모두들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개발 커뮤니티의 이와 같은 새로운 자기 인식은 인터랙션 디자이너에게 엄청난 기회다. 이전에 개발자들은 디자이너들이 많지 않은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개발자들의 생각이 바뀌어,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이 유용한 조력자로서 개발자들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스킬, 경험, 관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경쟁 대신 협력을 시작했기에, 나란히 앉아 작업함으로써 그 힘이 배가됨을 발견했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개발자 등 모든 실무자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결과물을 개선하기 위해 두 집단 모두 전체 개발 프로세스를 재고하고, 더 나은 도구와 안내, 접근 방식을 요구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개발자와 인터랙션 디자이너는 별개의 사일로(silo)에서 작용하는 도구와 프로세스를 개발하며 개별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두 분야의 관행은 여러 면에서 꽤 다르고, 둘 중 무엇도 다른 하나에 종속된 채 작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서로 도우며 함께 효과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일할 수는 있는 방법을 익히는 데 있다.
선견지명이 높은 대다수 회사에서는 이미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서로 나란히 앉아 협동, 협업으로 일한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여러 실무자가 전적으로 협업할 때, 그 결과는 우리가 실험해본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다. 일을 해내는 속도도 훨씬 빠르고, 최종 제품의 품질도 더 우수하다. 그리고 사용자도 더 즐겁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임원진은 인터랙션 디자인의 역할을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진정 이해하는 곳은 스타트업뿐인 듯도 하다. 더 큰 회사에는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여럿 있을지는 모르나, 끊임없이 관리자는 시기를 한참 놓치며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전문성을 프로세스에 통합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디자인 스킬과 프로세스는 기업의 문화가 인터랙션 디자인과 그 목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전까지는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자사 직원의 디자인 스킬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그리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전제적 군주로 군림했던) 리더인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의 동력을 끊임없이 옹호했기 때문이었기에, 애플의 성공 사례는 사용자 경험의 전형은 아니었다.
잡스만큼 담대한 리더를 둔 회사는 거의 없다. 소규모 스타트업은 특히 더 그러하다. 디자인 협업의 가치를 사업 인력에게 납득시키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든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매년 더 많은 성공담을 목격할 테고, 그만큼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치에 대한 증거도 늘어날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도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품은 작은 스타트업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오늘날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직면한 두 가지 기회는 사업 측면에서 지지자를 찾거나 만들기, 그리고 새로이 공감하게 된 개발 커뮤니티와의 협업 방식 익히기다.
인터랙션 디자인의 놀라운 힘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즉 사용자들이 테크놀로지 제품을 가지고 일하고, 놀며, 소통하는 동안, 그들에게 기억에 남고 효과적이며 쉽고도 보람 있는 경험을 안겨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