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진은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슬 한 방울이 무연하게 꽃봉오리에 떨어졌습니다.
이슬이 앉은 꽃봉오리와 꽃봉오리를 만난 이슬은
그 이전의 이슬과 꽃봉오리일까요?
이슬 한 방울로 하여 꽃이 피어납니다.
꽃을 만나 이슬은 향기로운 보석이 됩니다.
거기에 햇살이 다가와 비로소 활짝 한 우주가 완성되는군요.
사진과 시, 이 우연한 조합에서
꽃과 이슬의 화학반응을 기대해봅니다.
기적을 완성하기에는 햇살과 같은 맑은 눈빛이 필요하겠지요.
그 눈빛 맑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군요.
덕분에 제 누추한 삶을 시로 추스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쩌다 열 번째 시집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이 일에 더 야무지게 어리석어볼 요량입니다.
크고 화려한 꽃만이 꽃이랴.
작은 풀꽃들도 제 나름의 빛깔과 향기가 있다.
때론 돌 틈에 핀 봄맞이꽃 하나가 봄을 불러오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 내 안에 피었다가 지는 사유의 작은 풀꽃들을 모아놓았다.
잡초가 적지 않을 것이다.
모두 1행에서부터 10행 이내의 조그만 시편들이다.
높고 크고 화려하고 힘센 것들 앞에
조브장해진 내 어깨를 닮았다.
혀짤배기소리에도 귀를 빌려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2017년 범실에서
다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를 모르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만약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시작했더라면 아마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럴진대 15년 전은 오죽했으랴. 네 번째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을 펴낸 지 15년이 되었다. 잠깐 세상에 나왔다가 이내 기억에서 잊혀져 간 시집이다. 돌아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못난 대로 그 시절 내 고뇌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음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내 족적이다. 이번에 <달아실 시선>에서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고 한다. 못나고 부족한 시편들도 어여삐 보아주시는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내 시는 그나마 이렇게 목숨을 부지해왔다. 그분들께 그리고 달아실출판사와 박제영 시인께 감사한다.
꽃핌의 저 고요로운 파열음이
실상은 신의 중얼거림일진대
그것을 번역하여
명리에 허천난 넋에
번개의 언어 은장도 하나 찔러 넣어주지 못하고
흙탕물에 찌든 육신의 아랫도리에
연꽃다운 화두 하나 걸쳐주지 못한다면
골라 골라 골라아 골라
시장에서 외치는 소리와 다를 게 무에 있다드냐
더군다나
골라 골라 외치는 그 소리까지를
신에게 꽃 피어가는 그 파열음으로
통역하지 못한다면야
시는 개뿔이라 해야 옳다
아, 아직은 개뿔일 뿐인 나의 시여.
어디 별뿐만이겠느냐. 바로 옆에 있는 꽃에게로 가기 위해서도 죽음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내가 어찌 나인 채로 꽃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꽃의 중심에 가 닿기 위해서는 죽어서 꽃이 되어야 하리라. 그래 일생에 죽음이 어찌 한번뿐이랴. 저 나무 한 그루에 다가가기 위해서도 일생이 걸린다. 나의 시는 다생(多生)의 내 죽음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시의 기차를 타고 너에게로 간다. 나에게로 간다. 별에게로 간다.
오늘이 내일의 밑불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붙인 제목 ‘밑불이란 말이 있다’ 그 밑에 ‘범실잡록’이라는 부제를 붙여보았습니다. ‘범실’은 40 후반에 집을 짓고 정착한 마을 이름. 호랑이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호곡(虎谷)의 순우리말 이름입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로 이곳에 살면서 쓴 글을 모아서 그렇게 제목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범실’을 동음어 한자로 ‘범실(凡失)’이라 쓰면 주로 야구에서 쓰는 말로 ‘실수를 범하다’가 되지요. 어떤 시인은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팔 할이 실수였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실린 글은 수많은 실수의 기록입니다. 서툰 삶의 기록이라고나 할까요?
여기 조각글들은 ‘그저 그렇단 얘기’입니다. 배움이 깊지 못하여 생각은 짧고 그나마 독서도 넓거나 깊지 못하여 앎을 내세우거나 빛나는 지혜를 담을 재주가 없었습니다. 맑은 말씀이나 깨달음을 담기에도 내 삶은 한참이나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인지라 몇 조각이나마 그 편린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보자 하였습니다. 미사여구는 잘 알지 못하여 그냥 소박하게 쓴 일기와 같은 글입니다.
산문과 함께 관련된 몇 편의 시를 실었습니다. 산문이라 해서 본격적인 수필도 아니고 어설픈 조각글입니다. 그래서 ‘잡록(雜錄)’이 된 것입니다. 짜임새 있는 사유나 예술성보다는 기록의 의미가 커서 ‘록(錄)’이라 한 것이지요. 몇 꼭지는 오래전에 썼거나 발표한 것을 부분적으로 손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때로 편집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겪었던 경험과 꼭 일치하는지도 자신 없습니다.
자식으로, 아비로, 지아비로, 선생으로, 시인으로 목숨 걸고 살아보지 않은 자의, 그래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은, 그래서 수줍은 자기변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좀 값을 쳐줘서 말한다면 이 글 조각들을 ‘사랑의 흔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실수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동시대인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서툰 사랑의 기록이라고요.
내가 한 일이, 내가 쓴 글이 범실이었음을 깨달을 때마다 내가 이르러야 할 맑고 투명하고 밝은 지점이 더욱 오롯해지고 간절해집니다. 그것이 이 잡록을 묶을 용기를 내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잡록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밑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시집 사이에서 가려 뽑아 시선집을 낸 적이 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다. 2006년이다. 그걸 새로이 찍기로 하였다. 몇 편을 더 보태고 몇 편은 고쳤다.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시랍시고 내가 이런 시를 썼나 싶으면 바짝 땀이 날 때도 없지 않다. 시도 삶도 부끄러움을 먹고 자란다. 부질없다 할지라도 나는 나를 넘어서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부끄럽기로 한다.
2024년 3월
아무래도 시는 울면서 웃는 방식이다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했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채
야멸차게 떨치고 돌아설 재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몇 걸음에 도달할 거리를 돌아보니 30년,
300년을 걸어도 닿지 못할 것임을 알 즈음이다.
어느 누가 너처럼 한결같으랴.
어쩔 수 없다.
가는 데까지 가자.
2021년 가을
지리산 아래 범실에서
시의 촉수를 자극하는 장면을 만나면 사진에 담았다.
거기에 담긴 기억과 느낌을 소환하여 시를 썼다.
시와 사진의 혈맥이 섞여 한 몸이 되는 방식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며
세상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발견과 깨달음의 작은 기쁨들이 함께하였다.
2020년 연두빛에 싸여 범실에서